성나연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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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를 앞두고 단체 줄넘기 연습이 한창이다. 체육부장 하나(이현정 분)는 승리를 위해 연습을 독단적으로 이끌고, 반장 다영(안루아 분)은 그 과정에서 유독 자주 지적을 받는다. 하나의 말투와 태도는 거칠고, 다영에게만 더 날이 선 것처럼 느껴진다. 친구들은 하나가 반장 선거에 나갔었다는 이유로 다영에게 유독 날이 선 것 만 같다며 수근거린다. 이에 다영에게 단체 줄넘기는 점점 스트레스의 대상이 된다.
어느 날, 연습에 쓰이던 줄넘기가 사물함 앞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을 본 다영은 쌓여 있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줄넘기를 발로 차 사물함 밑 깊숙이 밀어 넣어 버린다.
줄넘기가 사라지자 다영은 당황한 채 사물함을 뒤져보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연습은 잠시 중단되고, 하나는 담임 교사에게 줄넘기가 없어졌다고 보고한다. 담임은 사건의 경위를 묻는 대신,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소리를 지르거나 밀치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되묻는다. 하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그런 일은 없다고 답한 뒤, 남는 줄넘기를 찾으러 창고로 향한다. 그리고 이 모든 대화를 다영이 듣고 있다.
창고에서 하나는 엉켜버린 줄을 홀로 풀며 눈물을 훔친다. 그 모습을 본 다영은 조용히 들어가 함께 줄을 푼다. 둘은 2인 줄넘기를 연습하며 조금씩 호흡을 맞춘다.
다영과 가까워졌다고 느낀 하나는 그동안 소리를 질렀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 순간 다영의 심장은 줄을 넘을 때보다 더 빠르게 뛴다. 그리고 결국 다영은 줄넘기를 치워버린 사람이 자신이라고 털어놓는다. 하나는 화가 나 그대로 창고를 나가버린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단체 줄넘기 연습 시간. 하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연습을 이끈다. 다영의 차례가 오고, 줄은 멈추지 않는다. 계속 돌아간다.
영화에서 줄넘기는 단순한 체육 도구가 아니라 관계의 은유로 기능한다. 처음 등장하는 단체 줄넘기는 타인의 박자에 맞추지 못하면 곧바로 걸려 넘어지는 압박의 장치로 작동한다. 그러나 창고에서의 2인 줄넘기는 전혀 다른 의미를 띤다. 그곳에서 줄은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매개가 된다. 속도를 조율하고 타이밍을 살피며 둘만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줄넘기는 압박에서 공감으로 변모한다.
특히 꼬인 줄을 함께 푸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엉킨 줄을 천천히 풀어내는 행위는 꼬여 있던 두 사람의 감정을 정리하려는 시도를 상징하며, 말보다 행동이 먼저 관계를 회복의 방향으로 이끈다.
감독은 다영의 고백과 하나의 분노를 통해 인간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충돌을 보여준다. 다영이 줄넘기를 숨긴 행위는 분명 선을 넘은 잘못이지만, 그 사건은 동시에 하나의 내면을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감독은 관계의 성숙이 매끄럽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상처를 주고 다시 사과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영화는 감정이 서툰 사춘기 소녀들을 통해 이 과정을 내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직접적인 화해의 대사 대신 계속 돌아가는 줄이 답이 된다.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두 사람이 이제 서로의 박자를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사춘기의 서툰 감정과 책임감, 미묘한 우정의 결이 담백한 연출로 잘 그려졌다. 러닝타임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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