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원가 쇼크에 실물 경제 도미노 타격 [중동발 유(油)의사항②]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6.03.04 09:25  수정 2026.03.04 09:25

‘3高’ 현상에 제조업 채산성 악화로 경영 비상

비용 인플레이션 확산에 하반기 경제 운용 암초

원달러 환율 1450원선 돌파하며 수입 물가 직격탄

중동발 유가 급등 여파로 가동률이 낮아진 국내 석유화학 단지 전경. 원가 부담이 커지며 산업 현장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챗지피티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제 유가 상승을 넘어 고환율과 고물가를 동반하는 ‘3고(高)’ 현상을 고착화하면서 한국 실물 경제 전반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소비 위축을 부르는 비용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의 공포가 산업 현장을 덮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중동발 공급망 쇼크는 단순한 비용 상승을 넘어 산업계 전체의 ‘셧다운’ 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제조업 채산성 붕괴와 기간산업 전반의 가동률 저하


대한민국 경제의 대들보인 제조업은 에너지 가격 변동에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와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10% 상승할 때 국내 제조업 전체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2%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원유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석유화학 업계의 타격이 극심하다.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틸렌 스프레드(제품 가격에서 원료비를 뺀 값)는 손익분기점인 t당 250달러를 밑돌며 200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이는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 단지의 가동률이 평시 대비 70% 수준으로 급감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항공 및 해운업계 역시 유류비 부담에 신음하고 있다. 항공사의 경우 전체 운영 비용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상회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는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때마다 약 3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고유가 여파로 유류비 부담이 커진 가운데, 항공기가 급유를 마치고 이륙을 준비하는 모습. 에너지 가격 상승이 항공업계 수익성에 직접적인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챗지피티

위기는 건설과 운송 현장으로도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유가 상승에 따른 건설기계 운용 비용 증가와 아스팔트, 시멘트 등 석유 기반 자재비 폭등은 전국 건설 현장의 약 15%가 공기 지연이나 공사 중단 압박을 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육상 운송업계 또한 경유 가격 급등으로 화물차 운전자들의 실질 소득이 급감하며 물류 대란의 전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계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 단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이 70%를 넘어섰다.


대기업보다 자금 동원력이 약한 중소 제조업체들은 고금리와 원가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견디지 못하고 ‘한계 기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안산 반월공단의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대출 이자는 치솟는데 원자재 수입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어 사실상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고환율 고착화에 따른 수입 물가 폭등과 가계 구매력 약화


유가 급등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글로벌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다. 3일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82.41원을 기록했다. 이날 장중 최고 1500.94원까지 오를 정도로 중동 정세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중동 사태가 터진 지난달 28일 1432.90원으로 안정세였다. 불과 사흘 만에 1400원대 후반까지 치솟은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업들의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선 수치다. 중동 분쟁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으면서 원화 가치가 단기간에 급격히 하락한 결과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수입 물가 지수는 최근 원화 약세와 맞물려 가파른 수직 상승을 기록 중이다. 이는 조만간 국내 소비자 물가에 치명적인 전이가 예상된다.


특히 에너지와 원자재를 전량 수입해 가공·수출하는 우리 경제 구조에서 1450원을 상회하는 환율은 수출 경쟁력 확보라는 순기능보다 ‘원가 쇼크’라는 역풍이 훨씬 거센 상황이다.


중동 지정학 리스크 확산 속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며 수입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는 흐름을 시각화한 인포그래픽 이미지. ⓒ챗지피티

이러한 비용 상승은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유가 국면 이후 가계 지출 중 광열·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 대비 12% 상승했다.


필수 지출인 에너지 비용이 늘어나면서 외식이나 문화생활 등 선택적 소비가 위축되는 전형적인 경기 침체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겹치며 서민들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내수 시장의 장기 침체를 예고하는 위험 신호다.


시장에서는 한미 금리 격차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맞물려 환율 고착화가 심화될 경우 외환보유액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약 4100억 달러 수준으로 대외 충격을 흡수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다만 시장 변동성이 극도로 커질 경우 선제적인 구두 개입 이상의 실질적인 방어 기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4100억 달러 수준으로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환율 변동성이 통제 범위를 넘어선 만큼 실효성 있는 시장 안정화 조치와 긴급 유동성 공급 대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진단했다.


스태그플레이션 현실화…글로벌 IB의 냉정한 전망


물가는 치솟는데 경기는 침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며 방어막을 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는 고유가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정책적 수단이 고갈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기획재정부의 하반기 물가 안정 목표치인 2%대 진입 역시 사실상 불투명해진 상태다. 또 공공요금 인상 압박도 임계치에 도달했다.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면서 요금 현실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소비자 물가를 자극할 수 있어 정부의 고민은 깊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한국 경제 전망 역시 어둡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최근 중동 리스크의 장기화를 반영해 한국의 하반기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대비 0.2~0.3%p 하향 조정했다.


에너지·생활 필수품 가격 상승이 가계 지출 구조를 압박하며 실질 구매력을 잠식하는 흐름을 대비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챗지피티

반면 소비자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대 초반으로 상향하며 비용 인플레이션이 한국 경제의 최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 전방위적인 물가 인상을 촉발하고, 이로 인해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상수로 둔 상태에서 우리 산업 체질을 저에너지·고효율 구조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공급망 안정성을 위해 원자재 수입선을 중동 외 지역으로 분산하고,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등 ‘공급망 회복 탄력성(Resilience)’ 확보가 시급하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과거 오일 쇼크와 달리 현재는 환율과 금리가 동시에 요동치는 복합 위기 상황”이라며 “정부는 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한 선제적인 금융 안전망을 구축하고, 기업들은 원가 절감을 위한 기술 혁신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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