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필이 지켜낸 문화유산 ‘한 눈에’
한국 전통미술의 정수, 간송 컬렉션
명품 대신 콘텐츠…현대백화점의 실험
미술관 전경 ⓒ대구간송미술관
여행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콘텐츠’다. 같은 도시라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기억의 밀도와 여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풍경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경험의 깊이를 문화와 예술, 공간이 완성시켜준다.
기자는 자연과 휴식을 경험한 뒤, 다음 날인 8일 전통 예술을 만나는 대구간송미술관으로 향했다. 2024년 9월 개관한 이곳 미술관은 건축 자체도 아름답게 지어서 외관부터 인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사진찍기 좋은 명소로 알려져 대구여행코스로 많이 방문한다.
미술관은 단순한 관람 공간이 아니라 역사와 이야기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장소다. 작품을 통해 시대와 문화, 인간의 감정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지적 만족감이 생긴다. 작품의 크기, 질감, 붓 터치, 색의 깊이 같은 요소는 현장에서만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특히나 대구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 지켜온 우리 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가치가 있다.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한국 전통 미술의 정수를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찾을 이유가 충분했다.
5전시실 실감 영상실 ⓒ임유정 기자
미술관은 크게 6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다. 1전시실에는 서화와 도자를 중심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의 소장품이 전시돼 있었다. 벽면에는 서화 작품이, 중앙에는 도자 유물이 배치돼 공간 구성이 비교적 명확하다. 미술관은 연간 세 차례 전시를 통해 소장품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이날 전시에서는 국보 제135호로 지정된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도 일부 만나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총 30장면으로 구성된 화첩으로, 보존을 위해 순환 전시 방식으로 일부만 선보인다. 이날은 그 가운데 4개 장면이 공개돼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2전시실에서는 조선 말기의 화가 오원 장승업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장승업은 영화 ‘취화선’의 주인공으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 말기 대표적인 화가로, 산수와 인물·화조 등 다양한 장르를 자유로운 필치로 그려 당대 ‘천재 화가’로 평가받았다.
전시장 안쪽에서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삼인문년’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삼인문년은 소동파가 지은 ‘동파지림(東坡志林)’에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소재로, 세 신선 노인이 서로 나이를 자랑한다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3전시실에서는 DGIST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재해석한 이미지와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화풍으로 재창조한 ‘미인도’와, 신윤복의 필치로 변환된 서양 회화 작품들이 전시돼 색다른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외국의 유명 화가들이 ‘미인도’를 그렸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전시로, 각 작가의 화풍이 한국 전통 회화와 결합된 모습이 흥미롭다. 현재는 AI 기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오는 7월부터는 신윤복의 ‘미인도’ 실물이 공개될 예정이어서 다시 찾을 이유를 만든다.
4전시실은 현재 공사 중이다. 5전시실은 전시실 5층에서는 실감 영상 전시를 볼 수 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회화 작품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해석한 영상을 반원형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현재 상영 중인 작품은 '흐름'과 '감응' 두 개로 각 8분 정도 길이다.
‘간송의 방’ 맞은편에는 보이는 수리복원실이 마련돼 있다. 이곳은 손상된 지류와 회화 작품을 안정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조사·분석과 수리 복원 작업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수리 복원 과정을 관람객에게 공개해 각 공정의 목적과 의미를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더현대 대구 외관ⓒ더현대 대구
◇ 명품 대신 콘텐츠…‘머무는 백화점’ 으로 변신한 더현대 대구
미술관 관람을 마친 뒤 여정은 더현대 대구로 이어졌다. 대구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된다면 더현대 대구는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공간이다. 동성로 중심 상권과 맞닿아 있어 접근성이 좋고, 쇼핑과 전시·체험·미식 콘텐츠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나오는 백화점이라기보다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가깝다. 9층 복합문화공간 ‘더 포럼(The Forum)’에서는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이 열리고, 지하 공간에서는 트렌디한 팝업과 맛집을 만날 수 있어 하루 코스를 채우기에 충분하다.
백화점을 찍고 동성로와 근대 골목까지 걸음을 옮기면 대구 도심 여행 동선이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인근 계산성당은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촬영지로도 알려지며 방문객이 늘고 있다. 조금 더 이동하면 대구 대표 전통시장인 서문시장까지 여행의 밀도를 높이기 좋다.
더현대 대구는 2022년 12월 전면 리뉴얼을 통해 문화·예술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웠다. 백화점의 ‘심장’이라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는 빠졌지만, 그 자리를 팝업과 문화 공간으로 채워 쇼핑을 넘어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핵심 공간은 9층에 조성된 약 4565㎡ 규모의 복합문화예술광장 ‘더 포럼’이다. 세계적인 아티스트이자 산업디자이너인 하이메 아욘과 협업해 조성된 공간으로, 백화점 한 층 전체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민 사례는 업계에서도 이례적이다.
실제로 이날 둘러본 더현대 대구 9층에서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분위기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곳곳에 마련된 공간에서는 젊은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빵과 커피를 즐기며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백화점 곳곳에는 방문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만들기 체험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고, 포토네컷 부스 앞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공간을 넘어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체험형 콘텐츠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9층 복합문화예술광장 ‘더 포럼(The Forum)’. ⓒ더현대 대구
지하 2층 역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젊은 고객을 겨냥한 MZ 전문관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가 조성돼 있었고, 공간 곳곳에는 개성 있는 팝업이 예정돼 있었다. 서울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화제의 팝업스토어를 적극 유치하며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모습이었다.
유창훈 더현대 대구 판매기획 팀장은 “더현대 대구는 팝업 외에도 지역 브랜드를 발굴해 소개하는 ‘지역 상생’ 전략을 함께 이어오고 있다”며 “지역 신규 업체를 발굴해 고객에게 선보이고, 이들이 전국구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맛집도 가득했다. 지하 1층은 식품관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테이스티 대구(Tasty Daegu)’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다. 대구 지역의 인기 맛집을 중심으로 팝업을 진행하고,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화제가 된 브랜드도 유치해 팝업이나 정규 입점 형태로 선보인다.
이날 기자는 소라빵으로 유명한 ‘피에스베이커리’를 만났다. 동성로 본점 외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곳인데 현재 더현대 대구에서 팝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감자크림치아바타로 알려진 ‘오퐁드부아’ 역시 대구 외곽의 본점과 더현대 대구 매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갖춘 더현대 대구는 올해 이러한 강점을 전국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린다는 계획이다. 쇼핑과 문화·미식 콘텐츠를 결합한 백화점의 매력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대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도심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유 팀장은 “더현대 대구는 백화점 내의 다채로운 팝업스토어와 공연 콘텐츠는 물론, 대구의 전통과 트렌드가 공존하는 인근 동성로 관광특구를 연계해 대구를 방문한 관광객 분들에게 대구 만의 독특한 매력을 선사하고, 즐거운 추억을 제공하고자 이번 패키지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구를 방문하는 고객들이 더현대 대구와 인근 동성로 관광특구를 넘나들며 대구만이 가진 독보적인 매력을 충분히 경험하시길 바란다”며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는 곳을 넘어, 대구의 트렌드와 문화를 향유하고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관광 명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웃어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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