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불안에 정부 대응 카드 확대
구윤철 부총리 “유가 대응 총동원 차원 검토”
전문가들 “가격 통제는 미봉책…시장 왜곡 우려”
미국의 대이란 공습 이후 급등하던 국내 기름값이 상승세를 멈추고 하락세로 전환했다. 11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3.4원 내린 ℓ당 1943원, 경유 가격은 10.3원 떨어진 ℓ당 1956.8원으로 집계됐다. 이날 오후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가격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검토에 나섰다. 가격 통제 정책이 논의되는 것은 지난 1997년 석유 가격 자유화 이후 약 30년 만이다.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경우 약 30년 만에 가격 통제 카드가 다시 등장하는 셈이다.
중동 지역 정세 불안으로 국제 에너지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유가 상승이 국내 물가로 빠르게 전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정책 대응 수단 검토 범위를 넓히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유가 대응과 관련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포함한 정책 대응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대응 카드가 확대될 가능성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상황 악화 시 정책수단 총동원”…정부 유가 대응 검토
구윤철 부총리는 11일 유가 대응 정책과 관련해 “상황이 악화될 경우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필요한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최근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유가의 대표 지표인 브렌트유 가격은 최근 배럴당 8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며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확대될 경우 공급 차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가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다. 때문에 국제유가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원유 수입의 약 70% 이상이 중동 지역에서 들어온다.
유가 상승은 물류비와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지며 소비자 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석유류는 변동성이 큰 항목 가운데 하나로, 국제유가 상승 시 전체 물가 상승률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하고 있다. ⓒ뉴시스
외환위기 이후 바뀐 석유 가격 체계
정부가 가격 통제 정책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국내 에너지 시장 구조 변화도 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에너지 시장 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석유 가격 자유화를 단행했다.
그 이전까지는 정부가 정유사 공급 가격과 소비자 판매 가격을 일정 부분 관리하는 체계였다. 그러나 가격 자유화 이후에는 국제유가와 환율, 세금 구조 등에 따라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체제로 전환됐다.
이후 국내 석유 가격은 국제유가 흐름에 따라 변동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정부의 유가 대응 정책 역시 유류세 인하나 보조금 지원 등 간접적인 방식이 중심이 됐다.
현재도 휘발유와 경유에 대한 유류세는 법정세율 대비 약 25% 인하된 수준이 적용되고 있다. 다만 국제유가 상승 압력이 확대될 경우 세제 조정만으로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석유 최고가격제와 같은 직접적인 시장 개입 정책까지 정책 옵션으로 거론되고 있는 배경이다.
‘1800원 구간’ 물가 변수…정책 대응 분기점
국내 석유 가격 논의에서 ℓ당 1800원대는 소비자 체감 물가 부담이 확대되는 가격 구간으로 인식된다. 국제유가 상승기마다 국내 휘발유 가격이 이 수준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어설 경우 물류비와 생산비 상승 압력이 동시에 커지는 흐름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구 부총리는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될 경우)2주 단위로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운영하겠다”며 “국제 석유시장에서 평균적으로 오르는 가격 수준인 1800원대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언급했다.
또 "정유사 공급가격을 기준으로 조정하려고 한다"며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가격 상한이 설정될 경우 정유사와 유통업체의 공급 유인이 약화되면서 시장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미나이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최근 1700원대 후반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다만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서는 일부 주유소 가격이 ℓ당 2000원을 넘는 곳도 나타나면서 소비자 체감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유가 상승은 단순한 연료비 증가에 그치지 않고 물류비와 제조 원가 상승을 통해 소비자 가격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운송비와 에너지 비용이 생산비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유가 상승이 이어질 경우 식료품과 공산품 가격 상승 압력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1800원대에 접근할 경우 정부의 정책 대응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간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다만 정부가 특정 가격을 정책 목표로 설정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정부의 강력한 정책 카드에도 불구하고 시장 반응은 우려가 높다. 가격 통제 정책이 실제로 시행될 경우 시장 가격 형성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석유 가격은 국제유가와 환율, 세금 구조 등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다. 가격 상한이 설정되면 정유사와 유통업체의 공급 유인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가격이 인위적으로 제한되면 공급 축소나 유통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시장 가격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유가 상승이라는 외부 요인을 행정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도 정책 한계로 지적된다. 국제 원유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국내 판매 가격만 인위적으로 제한할 경우 정유사의 수익 구조나 유통 시장에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올라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시장의 기본 원리인데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면 자원이 왜곡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석유 최고가격제는 결국 정부 보조금을 통해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시장 왜곡으로 인한 부작용이 물가 상승보다 더 클 수 있다”며 “극단적인 경우 공급 축소나 암시장 같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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