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늘려온 은행권의 부메랑…17년 만의 고환율에 건전성 '위태'

정지수 기자 (jsindex@dailian.co.kr)

입력 2026.04.02 07:02  수정 2026.04.02 07:02

가계대출 막히자 기업으로 향했지만

환율 급등에 CET1 비율 사수 비상

상생이냐 리스크 관리냐 '딜레마'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시민이 환전하고 있다.ⓒ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하루만에 30원 가까이 오르내리는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유례없는 고환율이 이어지면서 그간 가계대출 규제의 돌파구로 기업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려온 은행권에 비상등이 켜졌다.


수입 단가 상승과 이자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속출하면서, 은행의 수익원이었던 기업대출이 자산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28.8원 내린 1501.3원에 마감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장중 한때 1536.5원까지 치솟으며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약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1530원 선을 돌파한 지 하루 만에 중동 전쟁의 종전 기대감 영향으로 30원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이같은 극심한 환율 변동성에 시중은행들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은행들은 가계대출에 대한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규제와 가계부채 관리 압박에 직면해 왔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은행들이 선택한 전략은 기업금융 강화였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우량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금리 감면 혜택을 제공하며 대출 잔액을 경쟁적으로 늘려왔다.


실제로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859조7737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4조4500억원 가량 늘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14조원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적인 외형 성장은 환율 급등에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환율이 급등하면 외화 부채를 보유한 기업의 상환 부담이 커질 뿐만 아니라,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하는 제조 기업들의 비용 구조가 급격히 악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중간재 제조 업체와 유통사들을 중심으로 영업 악화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장부상으로는 매출이 발생하고 영업이익이 찍히더라도, 환율 상승으로 인한 환차손과 급증한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실제 현금 흐름이 막히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저금리 시절에 빌려둔 시설 자금 대출 이자까지 오르면서 사실상 회사를 운영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단순히 개별 기업의 위기를 넘어 해당 기업에 자금을 빌려준 은행의 여신 건전성 악화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외화 표시 자산의 원화 환산 가치가 커지면서 위험가중자산(RWA)이 급증하게 된다.


이는 은행의 핵심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통상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은행의 CET1 비율은 0.01~0.0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전성 지표를 방어해야 하는 은행들로서는 신규 대출을 억제하거나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 조건을 까다롭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시중 유동성을 더욱 위축시키고 기업들의 자금난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이 현재처럼 20원 이상을 오르내리는 것은 이전에도 없었다"며 "변동성이 상상 이상으로 큰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유망 중소기업이 환율 변동성 때문에 쓰러지지 않도록 정교한 여신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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