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희소성 가치, FA대박 예고
유동훈 KIA 마무리로 재부상 전망
야구계의 속어 중 ‘FA 로이드’란 FA 자격을 얻게 될 선수가 마치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처럼 갑자기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FA로이드’의 대표적인 선수는 역시 메이저리그의 애드리안 벨트레(33·텍사스). 박찬호의 과거 팀 동료이기도 했던 벨트레는 LA 다저스 입단 후 6년간 연평균 타율 0.262 16.5홈런 64.8타점의 그저 그런 타자였다. 하지만 FA를 1년 앞둔 2004년, 타율 0.334 48홈런 121타점을 기록하며 이듬해 시애틀과 5년간 6400만 달러의 잭팟을 터뜨렸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벨트레처럼 희대의 ‘FA로이드’ 등장은 없었지만, 많은 선수들이 FA 대박을 위해 시즌 내내 강한 집중력을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 부상까지 숨긴 채 기록 향상을 노리다 정작 FA계약 후 드러눕는 일도 종종 벌어지곤 했다.
올 시즌 후 FA 시장에 나올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홍성흔, 이진영, 정성훈(이상 재자격), 김주찬, 정현욱, 이현곤 등이 대어급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선수가 있다. 바로 언더핸드 투수라는 희소성을 지닌 KIA 유동훈(35)이다.
언더핸드 투수들은 구질이 간파당할 경우 쉽사리 장타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냉혹한 프로무대에서의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았다. 따라서 1999년 FA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잠수함 투수의 FA 계약은 고작 5명에 불과했다. 이런 의미에서 FA 자격을 얻었다는 것은 1군 무대에서 확실한 검증 절차를 받았다는 뜻이며, 실제로 이들 5명의 잠수함 투수들 역시 FA 대박을 터뜨렸다.
2000년 삼성과 3년간 8억원에 입단 계약을 맺은 이강철은 FA 사상 첫 이적 선수로 기억된다. 당시 억대 연봉자가 30명도 채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강철은 FA 직전인 1999년, 부상으로 인해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 오히려 몸값에서 손해를 본 경우다. 하지만 1989년 입단이후 98시즌까지 10년 연속 두 자리 수 승수와 세 자리 수 탈삼진을 기록한 명성은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두 번째 잠수함 FA는 2004년 원소속팀 SK와 4년간 17억 5000만원에 계약한 조웅천이다. 조웅천은 2001년 현대에서 SK로 현금 트레이드되자 충격으로 인해 데뷔 후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FA를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은 그는 2003년 6승 5패 2홀드 30세이브 평균자책점 1.97이라는 놀라운 성적과 함께 구원왕 타이틀을 따냈다. FA 대박은 당연한 결과였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조웅천의 선수생활 20년 중 1점대 평균자책점 시즌은 단 두 차례로 FA시즌을 맞았던 2003년과 2007년이다.
이듬해 FA 시장에는 2승 4패 36세이브 평균자책점 2.01을 기록, 5년 만에 구원왕 자리에 복귀한 임창용이 매물로 나왔다. 당시 임창용은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와 소프트뱅크 등이 영입을 타진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지만 결국 잔류를 결심했다.
계약기간은 2년에 불과했지만 총액 18억원에 이르는 대형 계약이 성사됐다. 순수 연봉 역시 5억원으로 당시 심정수-정민태에 이은 전체 3위. 하지만 FA 계약 후 임창용은 혹사 후유증이 찾아오며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팀 전력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맛봤다.
지난해에는 정대현과 임경완이 FA 자격을 얻었다. 메이저리그 진출까지 모색했던 정대현은 계약 성사 직전 롯데로 선회, 4년간 36억원이라는 역대 불펜투수 최고액을 얻어냈다. 정대현은 지난해 53경기에 나와 3승 3패 11홀드 16세이브 평균자책점 1.48을 기록, SK의 여왕벌다운 활약을 펼쳤다.
롯데의 핵심불펜 임경완도 언더핸드라는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FA 수혜를 입은 선수다. 위기 상황에 약하다는 점과 적지 않은 나이가 걸림돌이었지만, SK는 정대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임경완에게 3년 11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따라서 유동훈에게도 FA 대박의 길은 활짝 열려있는 셈이다. 유동훈은 지난 2009시즌 도중 마무리 보직을 맡아 6승 2패 10홀드 22세이브로 KIA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떠올랐다. 특히 0.53이라는 엽기적인 평균자책점과 제로였던 후반기 블론세이브는 유동훈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물론 지난해까지 2년간 자주 난타 당하는 모습을 보여 노쇠화에 대한 불안감은 있다. 하지만 잠수함투수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 1년 선배 임경완의 존재는 유동훈에게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동열 감독도 유동훈에게 날개를 달아줄 전망이다. 당초 KIA는 한기주와 김진우를 마무리 후보로 올려놓았지만 각각 팔꿈치와 어깨 통증으로 인해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이에 선동열 감독의 선택은 베테랑 유동훈 카드.
유동훈은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보폭을 줄이는 등 투구폼 변화를 택했고, 결과는 주 무기인 싱커가 더욱 예리하게 떨어지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번 스프링캠프에서의 성적은 5경기에 등판해 2세이브 평균자책점 1.80으로 합격점이다.
특히 지난 2년간 의기소침했던 얼굴도 점차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 선동열 감독은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는 유동훈이 살아난 것이 희소식”이라며 “부임 후 불펜을 보니 투수들의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어 칭찬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좋아진 분위기 속에는 베테랑 유동훈이 이끌고 있다”며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팀 내 마무리 제1옵션으로 급부상한 유동훈이 커리어하이였던 지난 2009년의 ‘0점대 피칭’ 기억을 되살려 FA 대박을 향한 핵어뢰를 쏘아 올릴지 관심이 모아진다.[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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