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차, '같지만 다른 형제들'

박영국 기자

입력 2013.09.19 11:35  수정 2013.10.30 12:51

서스펜션 튜닝, 계기 조명 등 디테일 차별화…라인업도 일부 달라

현대·기아차 양재사옥. 푸른색의 현대차 로고와 붉은색의 기아차 로고가 선명하다. 사진 아래는 현대차의 준중형 세단인 아반떼와 기아차의 동급 차종 K3.ⓒ현대자동차그룹

그랜저-K7, 쏘나타-K5, 아반떼-K3, 엑센트-프라이드, 베라크루즈-모하비, 싼테페-쏘렌토, 투싼ix-스포티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보유한 차급별 ‘쌍둥이 모델’ 들이다. 엔진과 플랫폼을 공유해 제원상 성능이 동일하다는 점 때문에 ‘껍질만 다른 모델’로도 불린다.

이들 차량을 만드는 두 회사는 현대자동차그룹이라는 지붕 아래 함께 있다는 이유로 현대·기아차로 묶여 불리기도 한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아우디-폭스바겐, 토요타-렉서스, 닛산-인피니티와 같이 대중-럭셔리 브랜드로 구분지어진 것도 아니고, 재규어(럭셔리 스포츠 세단)-랜드로버(SUV)와 같이 특정 차종에 특화돼 있지도 않다.

둘 다 대중 브랜드로, 거의 모든 차급을 아우르고 있으며, 라인업도 비슷하다. 이 때문에 굳이 두 개의 브랜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현대·기아차의 이같은 유사성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현대차그룹 내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나름대로 제품이나 마케팅 및 브랜드 전략에서 두 회사의 차별성을 기하는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다.

디자인 : 곡선의 현대, 직선의 기아

현대차와 기아차 영업소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차이는 두 회사 모델들의 디자인이다.

‘알맹이’를 공유한 상태에서 디자인적 차별성은 두 회사의 공존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차의 경우 유려한 곡선과 강인한 캐릭터 라인을 특징으로 하는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디자인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는 반면, 기아차는 간결한 ‘직선의 미학’이 디자인 철학이다.

쉽게 말해 현대차는 디자인 과정에서 잔손질이 많이 가해진 게 느껴지는 곡선이고, 기아차는 일필휘지로 내려 그은 듯한 직선이다.

지난해 4월 K9 출시를 계기로 당시 기아차 디자인 책임자였던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현 현대·기아차 디자인총괄 사장)은 ‘디테일과의 타협’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기아차의 디자인은 직선적 요소가 많이 가미돼 현대차와 차별화를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의 플래그십 세단 에쿠스(왼쪽)와 기아차의 경차 모닝.ⓒ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라인업 : 경차 없는 현대차, 사장님차 없는 기아차

자, 이제 영업사원이 건네준 브로슈어를 펼쳐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차와 기아차는 거의 모든 차급을 아우르는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차급에서 형제임과 동시에 경쟁 관계인 모델이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라인업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에만 있는 차급도 있고, 기아차에만 있는 차급도 있다.

경차가 대표적이다. 기아차는 모닝과 레이 등 2종의 경차를 국내외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현대차는 i10이라는 경차를 보유하고도 해외에서만 팔고 국내 시장에는 내놓지 않고 있다.

반면, 대형 세단에서는 기아차가 현대차의 에쿠스급에 해당하는 모델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기아차의 플래그십 세단 K9은 현대차의 제네시스와 에쿠스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차급이다.

K9은 디자인상으로도 에쿠스와 같이 오너가 뒷좌석에 앉는 일명 ‘사장님차’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 스포티한 스타일이다.

이는 두 회사의 브랜드 차별화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소형에서 준대형까지는 차급별 시장을 공유하더라도, 경차와 플래그십 세단에서는 진입 장벽을 두고 현대차는 고급 브랜드의 느낌을, 기아차는 젊은 브랜드의 느낌을 준다는 게 두 회사의 차별화 전략이다.

현대차 영업사원이나 대리점 딜러들 사이에서는 현대차가 엔트리 차종(생애 첫 차)으로 선호도가 높은 경차 라인업을 갖추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생애 첫 차를 현대차 브랜드로 사는 이들이 많아야 상위 차종으로 갈아탈 때도 고객 확보에 유리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대차가 국내에서 경차를 판매하지 않는 배경 중 하나로 기아차에 대한 일종의 배려가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기아차에 수익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많은 물량을 보장해주는 경차 시장을 내준 셈이다.

또,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1t 트럭 중 4륜구동 모델은 기아차(봉고 트럭)에만 있었다. 현대차는 1t 트럭 포터를 2륜구동 모델로만 판매하다 올 7월 들어서야 4륜구동 모델을 추가했다.

봉고 트럭과 포터가 부품을 공유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터 4륜구동 모델을 개발하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테고, 결국 과거 4륜구동 모델을 판매하지 않은 것도 기아차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인승 미니밴의 타깃도 다소 차이가 있다. 기아차 카니발의 경우 가족용 차량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현대차 스타렉스는 탑승인원과 화물적재를 극대화한 승합차 개념이다. 차종 분류에 있어서도 기아차는 카니발을 RV로 분류하고, 현대차는 스타렉스를 상용차로 분류한다.

그밖에 현대차 벨로스터, i30, i40, 기아차 카렌스, 쏘울 등 특정 소비층에 특화한 차량들도 서로 겹치지 않는 각 사의 고유 모델들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현대차 상품 구성의 특징은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무난함을 바탕으로 상위 세그먼트로 갈수록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며, “반면 기아차는 디자인적 요소를 최우선적으로 살리고 있으며, 현대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동성, 스포티함을 특징적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명 : K시리즈 전환 기아차, 그랜저·아반떼 못 버리는 현대차

브로슈어에 나열된 자동차 이름을 살펴보면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일련의 규칙을 가지고 차명을 정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기아차는 ‘K 시리즈’가 차량 명칭의 핵심이다. 지난 2009년 11월 준대형 세단 K7을 출시한 이후, 중형 K5, 대형 K9, 준중형 K3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K시리즈를 완성했다.

BMW의 3, 5, 7시리즈나, 아우디의 4, 6, 8시리즈를 모방한 작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게 자동차 업계의 트렌드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해외 시장의 경우는 새로운 이름을 내걸고 다시 마케팅에 나서기에는 무리가 있는 관계로, 그동안 꽤 많은 돈을 들여 인지도를 높인 포르테(K3), 옵티마(K5), 카덴자(K7)를 차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의 경우 국내에서도 에쿠스, 제네시스,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 등 수십 년씩 사용해온 차명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는 현대차 주력 모델들의 네임벨류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판단에 따른 선택이다.

특히,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 등은 이름값만으로도 전체 판매실적의 절반은 보장해준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가치가 높은 이름인지라 기아차처럼 ‘H 시리즈’로 묶어버리기에는 부담이 크다.

현대차는 대신, 차급 진출 역사가 길지 않은 해치백과 왜건 등 2박스 모델의 경우 i10(경차), i20(소형), i30(준중형), i40(중형) 등 ‘i 시리즈’로 차명을 묶어 놓았다.

현대차 아반떼 내부(왼쪽)와 기아차 K3 내부 모습. 계기조명과 디스플레이, 조작 버튼 등에 사용된 조명·글자의 색상이 현대차는 푸른색, 기아차는 붉은색 일색이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상징색 : 계기 조명도 ‘현대 블루’, ‘기아 레드’

두 회사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일단 두 회사 영업소를 돌며 동급 차종을 차례로 타보는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차량 내부에 앉아 계기반과 센터페시아를 유심히 살펴보면 두 회사의 차별화가 확연히 느껴지는 재미있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계기반과 센터페시아의 디스플레이 및 조작 버튼에 사용된 조명·글자의 색상이다. 이 부분이 각 회사의 상징색으로 통일돼 한 눈에 어느 회사 차량인지 알아볼 수 있다.

에쿠스나 K9 같은 고급 차량을 제외하고는 현대차의 경우 대부분의 차량 계기 조명이 블루톤으로, 기아차는 레드톤으로 통일돼 있다.

현대차-블루, 기아차-레드는 이미 두 회사의 로고를 통해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조합이다.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쌍둥이 빌딩에는 각각 푸른색 현대차 로고와 붉은색 기아차 로고가 달려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현대차의 상징색 블루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 높은 하늘과 넓은 바다를 향해 가는 진취적인 기상을 의미하며, 기아차의 상징색 레드는 열정, 창의, 도전 등의 의미와 함께 기아차의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상징한다”며, “두 회사 차량 계기조명에 각각 블루와 레드를 적용한 것도 회사의 상징색을 강조하기 위한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조작·승차감 : 말랑말랑 현대차, 꽉 조인 기아차

운전석에 앉은 김에 시동을 켜고 한번 몰아보자.

현대차와 기아차가 플랫폼을 비롯한 주요 부품을 공유한다고는 하지만, 두 회사의 동급 차종을 차례로 몰아보면 조작감과 승차감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같은 부품을 사용하고도 이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서스펜션 튜닝 때문이다.

서스펜션 튜닝에 있어 조작감과 승차감은 양날의 칼이다. 서스펜션을 단단하게 조이면 운전 재미는 좋아지지만 노면의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떨어져 승차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서스펜션을 무르게 튜닝하면 승차감은 좋아지지만, 코너링시 출렁이는 느낌을 받게 된다.

두 회사 모두 조작감과 승차감 어느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지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현대차의 경우 서스펜션이 좀 더 푹신하고, 기아차는 좀 더 단단한 편이다. 세단이나 SUV를 막론하고 두 회사의 모든 동급 차종에서 나타나는 차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현대차는 편안함을 강조하기 위해 서스펜션 튜닝시 승차감에 좀 더 무게를 두고, 기아차는 역동성과 스포티함을 강조하기 위해 핸들링에 중점을 두고 튜닝하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공식 후원하는 미국 PGA 시즌 개막전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무대인 하와이 마우이섬 카팔루아 리조트의 플랜테이션 코스에 현대차 에쿠스가 전시된 모습(왼쪽)과 기아차가 공식 후원하는 ‘기아 세계 익스티림 게임 2013’이 지난 6월 9일 중국 상하이 지앙완 경기장에서 진행되는 모습.ⓒ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스포츠마케팅 : ‘럭셔리 골프’ 현대차, ‘신세대 익스트림 게임’ 기아차

마케팅 전략에 있어서도 두 회사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축구 마케팅에 적극적이지만, 현대차는 그 외의 스포츠 종목 중 유난히 골프 마케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의 스포츠 마케팅은 유난히 골프에 집중돼 있다.

유러피언 투어인 발렌타인 마스터즈 대회 후원, 미국 PGA 개막전 공식 후원 등이 대표적 사례다.

반면, 기아차는 축구 이에 테니스, 농구, 익스트림 게임 등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다양한 종목을 스포츠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를 지속적으로 후원하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NBA 대표 스타인 블레이크 그리핀을 홍보대사로 임명하고 올해 1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후원계약을 맺는 등 총 13개 NBA팀을 후원하고 있다.

또, 올해 3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기아 세계 익스트림 게임’ 후원 3년 연장 조인식을 갖는 등 신세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익스트림 게임도 지속 후원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현대차는 브랜드에 고급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고급 스포츠인 골프를 스포츠마케팅의 중점에 두고 있고, 기아차의 경우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는 종목에 대한 후원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력 시장 : 현대차-중국·미국, 기아차-유럽·미국

현대차와 기아차는 엄연히 별도의 회사인 만큼 해외 시장 진출도 개별로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두 회사의 주력 시장도 다소 차이가 있다.

현대차의 경우 중국과 미국이 주력 시장이다. 선진국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을 제외하면, 현대차는 2012년 글로벌 판매 중 19.4%를 중국에서 판매했고, 2013년 상반기에는 21.4%로 늘어나는 등 중국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급감과 안락함을 강조한 현대차는 대형, 고급차 선호하는 중국와 미국 지역에서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기아차 역시 선진국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신흥국 최대 시장인 중국 비중이 높지만, 서유럽 지역에서의 판매 비중이 현대차 대비 상대적으로 높다는 게 차이다.

2012년 기아차 글로벌 판매 중 12.4%가 유럽시장에서 판매됐고, 2013년 상반기도 12.1%로, 같은 기간 9%대를 기록한 현대차보다 비중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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