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미치다⑦-라트비아 리가>피지배의 처참한 역사에서 핀 유럽 문화의 꽃
라트비아 리가로 가는 실야라인의 선데크에서 맞이하는 백야의 일몰은 여느 일몰과는 전혀 다른 신비로움이 있다. ⓒ이석원
스웨덴과 러시아, 그리고 같은 발트 3국 멤버인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에 둘러싸인 라트비아 (구글 맵)
리가 구시가 역사지구 (구글 맵)
배가 리가에 도착할 무렵 항구 주변은 고요하다. 이미 일과가 시작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또 리가가 국제적인 무역항임에도 불구하고 잿빛 하늘처럼 리가항은 그저 평화롭다. ⓒ이석원
리가 시내는 대중교통이 발달한 편이다. 트램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이 많은데, 리가 시내 지리에 익숙하다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더 좋다. 최근 리가의 버스는 완전 공짜다. 새로운 리가 시장이 시내 버스 완전 무료에 성공한 것이다. ⓒ이석원
리가 구시가 입구에 보무도 당당히 다우가바강을 바라보며 리가를 호위하는 듯한 소총수의 상. ⓒ이석원
리가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시청 앞 블랙헤드 길드의 전당. 원형을 복원했다고는 하지만 지금 볼 수 있는 모습은 2001년 재건된 것이다. 독일과 러시아가 처참히 짓밟은 뼈아픈 역사의 상처이기도 하다. ⓒ이석원
블랙헤드 길드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흑인을 수호성인으로 해서 그런지 전당의 안팎에는 흑인의 얼굴을 새긴 장식이 유난히 많다. ⓒ이석원
블랙헤드 전당의 천문시계도 프라하의 천문시계와 비슷한 15세기에 만들어졌다. 섬세한 면이나 크기에서는 프라하의 천문시계가 더 뛰어나다고 평가되지만 미적인 면에서는 이곳의 천문시계도 뒤지지 않다는 평이다. ⓒ이석원
블랙헤드 전당 앞 광장에는 1년 365일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자기들에게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하다. ⓒ이석원
성 베드로 교회 첨탑 전망대로 올라가려다 보면 교회 뒷쪽에 다소 처참해 보이는 파괴의 모습이 전시돼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교회가 부서지고 불탄 것을 잊지 않겠다는 리가 시민들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것들이다. ⓒ이석원
리가는 아르누보 건축의 보고라고 불린다. 구시가 골목골목 양편에 늘어선 건물들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들로 치장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여행자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이석원
아르누보 양식 건물에서 가장 신경 써 치장한 것은 창문틀의 조각이다. 아름다운 조각들은 주로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한 것들이 가장 많다. ⓒ이석원
리가를 대표하는 아르누보 건축가 미하일 에이젠슈타인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건물이다. ⓒ이석원
'리가 돔'으로도 불리는 대성당은 리가의 건설과 역사를 같이 한다. 1211년 리가 건설자인 알베르트 대주교가 건설을 시작했지만 18세기까지 증개축이 계속 이뤄졌다. ⓒ이석원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서려있는 스웨덴 문. 그 바람에 지금도 연인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려 애쓰는 걸 볼 수 있다. 스웨덴 문의 한쪽은 스웨덴 병영이 있던 곳이고, 반대쪽은 리가 주민들의 거주지이면서 스웨덴 군인들을 상대하던 사창가가 잇었다. 하지만 지금은 리가에서도 가장 아름다움 골목으로 인기가 높다. ⓒ이석원
리가는 원래 성벽 도시다. 하지만 숱한 전쟁을 통해 성벽들은 거의 다 파괴됐다. 지금은 국립 전쟁박물관에서 스웨덴 문으로 이어진 구간에만 일부가 복원돼 있다. 리가 시민들은 크로아티아의 성벽이 완벽힌 복원된 것에 고무돼 과거의 성벽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석원
라트비아 국립 전쟁박물관. 리가에서 대성당과 함께 대표적인 붉은 벽돌 건물이다. ⓒ이석원
라트비아 상안과 독일 상인 사이의 차별에 대한 재밌는 얘기가 전해지는 '고양이의 집' ⓒ이석원
리가 시내 곳곳에서 여행자들의 옷깃을 잡아 끄는 노천 레스토랑. ⓒ이석원
리가는 북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 아름다운 노천 카페는 여행자들에게 편한 휴식을 제공한다. ⓒ이석원
유럽의 중세도시들이 대개 그렇듯이 리가도 골목의 예술이라고 불릴 만큼 멋진 골목을 지니고 있다. ⓒ이석원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리가는 평평한 대지 덕에 조금 높은 곳에만 올라가도 도시의 외곽까지 조망할 수 있다. ⓒ이석원
리가의 젖줄인 다우가바강. 발트해로 흘러들어가는 이 강이 러시아에서 발원한 탓에 러시아는 늘 리가를 차지하려고 애써 왔었고, 그래서 제정 러시아가 라트비아를 지배할 당시 리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에 이어 제정 러시아 제3의 도시가 되기도 했다. ⓒ이석원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