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미치다⑧-오스트리아 빈1>합스부르크 600년의 역사 여행
빈의 역사는 대충 2000년으로 잡는다. 하지만 1908년 빈 인근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비너스 상이 2만2000년~2만4000년 전의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그만큼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중세와 근세, 그리고 근대와 현대의 문화가 어우러진 빈의 전경이다. ⓒ이석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는 알자스와 스위스 북부 지방을 다스리던 소영주였지만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스트리아의 국왕이 된다. 그 찬연한 600년 영광이 한껏 담겨 있는 곳이 빈 구시가 중심에 있는 호프부르크 왕궁이다. ⓒ이석원
빈 최고의 번화가이면서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케른트너 거리는, 과거에는 왕족과 귀족이 마차를 타고 다니던 길이다. 지금은 보행자 전용도로로 조성돼 있기 때문에 자동차는 물론 마차도 다닐 수 없지만 성 슈테판 대성당 부근에서 주변 길로는 관광을 위한 마차가 운영된다. ⓒ이석원
케른트너 거리는 밤에 더욱 빛난다. 사위가 어두워지기만 하면 주말이든 평일이든 자유롭고 활발한 빈의 젊은이들이 케른트너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17세기가 살아 숨쉬는 공간에서 21세기를 한껏 내뿜고 있다. ⓒ이석원
국제 도시인 빈은 더 이상 오스트리아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빈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케른트너 거리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수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만의 예술 혼을 불태우고는 한다. ⓒ이석원
빈의 주교좌 성당인 성 슈테판 대성당. 케른트너 거리의 끝에 서 있는 이 성당은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하고, 눈을 행복하게 해 준다. 독특한 지붕의 문양과 성당 오른쪽에 있는 높이 137m의 슈테플이 인상적이다. ⓒ이석원
성 슈테판 대성당의 겉은 정교하고 섬세한 수 많은 조각으로 치장돼 있다. 이미 수백년 전 어떻게 저런 조각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석원
마치 프랑스 파리 노틀담 성당의 장미 스테인드글라스를 닮은 성 슈테판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시계의 기능을 겸하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이석원
성 슈테판 대성당은 밖에서 본 외관도 장엄하지만 내부의 모습은 장엄하고 신성하다 못해 경외심마저 느끼게 해준다. 전면의 주제대는 마치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듯 찬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석원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열린 것으로 전해지는 성 슈테판 대성당은, 지금도 가톨릭 신앙심이 투철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는 가장 사랑받는 기도의 공간이 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전 국민의 80%가 가톨릭 신자다. ⓒ이석원
대성당에서 빈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은 남쪽 탑과 북쪽 탑, 그리고 슈테플 등 모두 3곳이다. 유럽의 성당 첨탑이 저토록 높게 위치한 것은 하느님과 좀 더 가까워지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곳에 오르는 것 또한 고행의 일부라고 인식한 듯 하다. ⓒ이석원
대성당의 첨탑 슈테플 오르는 계단. 상층부로 가면 제법 넓은 공간이 나와 지친 다리를 쉴 수도 있다. ⓒ이석원
대성당 슈테플에서 바라본 빈 시내. 유럽에서 세번째로 높은 성당 전망대인 셈이다. ⓒ이석원
합스부르크 왕조의 정궁인 호프부르크 정문. 645년 간 단일한 왕조를 유지해온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석원
합스부르크 왕조의 상징은 매다. 그래서 호프부르크 곳곳엔 매의 모습이나 매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 조각돼 있다. ⓒ이석원
호프부르크의 내부는 여느 왕궁이나 마찬가지로 호화롭다. 왕궁을 최대한 화려하고 호사스럽게 꾸미는 일은 왕조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도 당시로는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특히 호프부르크는 독일어권 국가들의 궁정 문화의 완성을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이석원
왕조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사치의 극치를 이루는 왕관 등의 장신구. 호프부르크 안에 있는 황실보물관에는 합스부르크 왕들의 엄청난 보물들이 전시돼 있다. 그런데 보물관 한 쪽에 있는 종교유물관에는 예수의 십자가 조각, 최후의 만찬에 쓰인 식탁보 조각이라고 주장되는 유물도 전시돼 있다. 물론 확인불명이다. ⓒ이석원
카롤린 엘리자베스 , '시씨'로 더 유명한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황후가 화장을 하던 공간인 파우더룸. 유럽 역대 황후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명했지만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아간 비운의 왕비이기도 하다. 사진 속 초상화가 시씨 황후의 모습. ⓒ이석원
호프부르크 한복판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동상. 그녀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태양왕' 루이 14세에 비견될 정도로 합스부르크 왕조에서도 가장 위대한 계몽 군주로 통한다. 645년 합스부르크 왕조 시대를 통틀어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탁월한 시대로 유럽의 역사가들은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를 꼽는다. ⓒ이석원
처음 궁전을 짓기 시작한 것은 1569년이고, 1696년 재건됐지만, 마리아 테레지아의 집권기인 18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보완이 이뤄졌던 쇤부른 궁전. 그러나 채 반세기만인 1805년 나폴레옹이 빈을 정복했을 때는 나폴레옹 군대의 사령부로 사용되면서 수많은 유물들이 프랑스로 반출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석원
쇤부른 궁전의 정원. 베르사유의 그것과 비교하면 훨씬 작은 규모지만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의 부인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훨씬 낭만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석원
쇤부른은 '아름다운 우물' 또는 '아름다운 분수' 정도로 번역이 된다. 쇤부른 궁전 정원에서 언덕 위 글리로에테 중간에 있는 분수는 아름다운 조각이 돋보인다. ⓒ이석원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해 만든 글로리에테.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곳에 앉아서 쇤부른 궁전과 빈 시내를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지금은 멋진 레스토랑과 카페가 들어서 있어서 마리아 테레지아와 같은 위치에서 쇤부른 궁전과 빈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이석원
쇤부른 궁전 안에서 가장 인기잇는 곳인 '거울의 방'. 6살의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의 막내 딸 마리 앙투아네트 앞에서 처음으로 피아노 연주를 한 곳이다.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석원
합스부르크 시대 사보이 왕가가 소유했던 벨베데레 궁전의 상궁. 오이겐 왕자가 오스만 투르크를 물리친 기념으로 세워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현재 상궁은 오스트리아 빈 분리파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그림이 상설 전시되고 있고, 하궁은 바로크 시대의 미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석원
벨베데레 궁전의 정원. 상궁과 하궁의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는 이곳에서 1918년 왕조의 종말을 선언했다. ⓒ이석원
관능과 극단적 아름다움의 결정체로 꼽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 '키스'(왼쪽)와 '유디트'. 벨베데레 궁전 상궁의 하이라이트다. ⓒ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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