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버린 '신사임당' 추석엔 나오시려나

이충재 기자

입력 2014.09.07 12:29  수정 2014.09.07 12:42

경기부양 또 다른 열쇄…은행권 추석맞아 '5만원 품귀현상' 우려


‘5만원권 어디 없나요?’

매년 명절이면 은행창구에선 신사임당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5만원권 품귀현상’이 빚어진다. 한국은행은 지난 1일 추석 명절을 앞두고 시중은행에 신권을 방출했지만, 공급물량이 크게 줄면서 시중은행들도 5만원권을 찾아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명절 때마다 은행맨들이 겪는 고초 가운데 하나가 ‘5만원권 구하기’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평소에도 5만원권을 찾는 고객들이 많지만, 명절 때는 각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이 더욱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5만원권 확보하는 일을 두고 ‘하늘의 별따기’라고 부를 정도다. 그만큼 시중에 5만원권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서 방출되기가 무섭게 누군가의 ‘장롱’속으로 들어가 다시 나올 줄 모르는 5만원권의 속성 때문이다.

실제 5만원권은 지난 2009년 6월 23일 첫 발행 이후 5년 동안 9억장 가까이 시중에 풀렸지만, 되돌아오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5만원권 발행잔액은 지난 6월을 기점으로 시중에 풀린 전체 화폐잔액의 3분의 2를 넘어섰다. 7월말 발행잔액은 46조171억원으로 전체 화폐 잔액(68조387억원)의 67.6%를 차지했다.

반면 환수율은 30%에도 못 미쳤다. 한은에 따르면 올 1~7월 발행된 5만원권 7조2397억원 가운데 환수된 5만원권은 1조9037억원으로 환수율이 26.3%에 그쳤다. 시중에 풀린 5만원권 10장 중 7장은 누군가의 ‘장롱’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5만원권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등으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반면 금융권 한 관계자는 “카지노나 경마, 경륜 등의 시설과 인접한 지점에서 5만원권이 가장 많이 거래된다는 점을 보면 5만원권이 어디에 쓰이고, 또 있는지 알 수 있다”며 “결국은 탈세문제”라고 지적했다.

배임과 횡령, 탈세 관련 대형 범죄사건에서 ‘5만원권 뭉칫돈’이 어김없이 등장하면서 5만원권이 지하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0장 중 7장은 장롱에 마늘밭에 금고에...'신사임당 성형'필요 주장도

지난 2011년 ‘마늘밭 돈다발’사건은 5만원의 향배를 찾는데 있어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례다.

당시 전북 김제시의 한 마늘밭에서 5만원권 22만 장(110억 원)이 비닐에 싸인 채 발견돼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수사 결과 이 돈은 인터넷 도박으로 벌어들인 검은돈이었다.

이듬해에는 국세청이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 원장의 집 금고에서 소득신고를 하지 않은 5만원권 뭉칫돈 23억 원을 찾아내 세금 19억 원을 추징하기도 했다.

과거 사과상자를 1만원권으로 가득채우면 5억원이었지만, 이젠 007가방 하나면 충분하게 됐다. 5만원권이 당초 의도 달리 검은돈을 조성하는데 편리한 수단이 된 셈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은행권에서부터 나타났다. 환수율이 낮아지면서 시중은행들은 5만원권 품귀현상을 겪고 있고, 일부 은행에선 5만원권을 조달해주는 신종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일부 은행 지점에서는 5만원권 품귀현상으로 인해 이용자들의 인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1만원권으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다.

더욱이 현금자동지급기(ATM)에 ‘5만원권 입출금가능’ 안내표시가 붙은 기기는 각 점포 기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해당 ATM 뒤로 길게 줄이 이어지는 등 이용자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신사임당 성형수술’을 장롱에 숨은 5만원권을 불러올 방안으로 꼽고 있다.

현재 시중에 나도는 5만원권을 새디자인의 신권으로 바꾸면, 이 과정에서 장롱속 5만원권이 대거 집밖으로 나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하에 묻힌 자금을 끌어내고 세수를 늘리는 데 화폐개혁이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신사임당을 밖으로 모시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화폐개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론돼 왔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5만원권은 지난해 추석시즌 이후부터 환수 규모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화폐환수 규모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 이후 급격하게 불어난다. 명절을 맞아 ‘용돈’을 받는 사람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5만원권의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명절 전에는 화폐발급 규모가 크게 불어나고 명절이후에는 화폐 환수 규모가 불어나는 경향이 있다”면서 “최근 환수율이 낮아지면서 지켜봐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결국 숨어 있는 심사임당이 ‘돈맥경화’ 현상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내수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최경환경제팀의 고민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기부양 극대화를 위해 적극적인 대안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 부총리는 “5만원권이 발행돼도 시중에 많이 유통되지 않는 것은 일부 고소득층이나 사업자들이 탈세 등 부정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라며 “화폐 유동 속도가 지나치게 낮아지는 것은 경제선순환을 위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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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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