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전설’ 서말구, 리우 향하는 한국 육상이 기억해야 할 이름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5.12.01 11:25  수정 2015.12.02 09:01

31년 동안 한국 100m 기록 깨지지 않아

“독하게 뛰어라” 독려의 울림 기억해야

고 서말구 교수. ⓒ 롯데 자이언츠

1979년 9월, 지구 반대편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한 한국의 젊은 스프린터 서말구는 한국 육상계에 큰 낭보를 전해왔다.

당시 동아대 재학 중이던 서말구는 남자 육상 100m에서 10초34의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서말구가 10초34라는 100m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을 당시 세계기록은 미국의 짐 하인즈가 보유한 9초95였다. 서말구의 기록과 비교해 보면 0.39초 차이. 육상 100m가 100분의 1초를 다투는 종목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0.39초 차이는 상당히 큰 격차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하인즈의 기록 역시 세계에서 처음으로 10초벽을 돌파한 기록이었고, 1983년 캘빈 스미스(9초93)에 의해 하인즈의 기록이 깨지기 까지 15년의 시간이 걸렸음을 감안하면 서말구의 당시 기록은 아시아에서 1,2위를 다투는 것은 물론 세계 수준에 근접한 기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말구의 당시 기록은 이후 지난 2010년 6월 제64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100m 예선에서 김국영이 10초 23을 기록, 새로운 100m 한국 기록을 작성할 때까지 무려 31년간 깨지지 않고 남자 100m 한국 기록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현재 한국 기록은 김국영이 지난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기록한 10초 16이다.

그 사이 100m 세계기록은 1968년 하인즈가 9초95로 10초벽을 돌파한 이후 경신에 경신을 거듭, 1983년 스미스가 9초93의 기록으로 하인즈의 기록을 깬데 이어 1991년에는 칼 루이스가 9초86으로 9초9의 벽을 깼다.

그로부터 8년 뒤에는 모리스 그린이 9초79의 기록으로 9초8의 벽을, 2000대에 들어서면서 불세출의 스프린터 우사인 볼트가 2008년 9초69로 9초7의 벽을 깼고 이듬해에는 9초6대의 벽마저 무너뜨리며 9초58의 세계기록을 수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국영의 기록과는 0.6초 가까이 차이가 있다.

1968년 하인즈가 10초 벽을 깬 이후 세계 육상은 지난 50여 년간 약 0.4초의 기록 단축을 이뤄냈으나 한국 육상은 1979년 서말구의 한국 기록이 세워진 이후 현재까지 36년간 단 0.18초의 기록 단축만을 이뤄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11년에는 대구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고, 정부와 육상계는 100m에서 10초 벽을 깨는 선수에게 5억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와 같은 목표는 현실성 없는 당근책에 불과했다. 물론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는 선수에게도 1억원의 포상금이 걸렸지만 결국 이 대회에서 포상금을 가져간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현대 스포츠 과학의 발전에 따라 육상 트랙이나 선수들의 유니폼, 육상화 등 경기장 시설과 장비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육상 100m에서도 기록 단축에 유리하게 발전되어 오는 과정에서 세계 기록 추이는 빠르게 변화했지만 한국 기록은 참으로 더딘 발걸음을 이어온 셈이다.

이런 냉정하고 씁쓸한 현실을 뒤로 하고 한국 육상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서말구가 우리 곁을 떠나 말 그대로 ‘전설’이 됐다.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지난 2010년 12월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해오다 지난 달 30일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향년 61세.

지난 1982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모교인 동아대서 육상 코치로 후배들을 키워오던 그는 프로야구 초창기던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육상 훈련 기법을 야구 선수들에게 전수, 베이스 런닝 등 선수들의 플레이에 스피드를 키우고 부상을 줄이는 방법 등을 지도한 특별한 이력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육상계를 떠난 적이 없다. 87년 해군사관학교 교수에 임용된 그는 트레이닝 방법론을 강의했고, 2008년에는 육상대표팀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기록이 깨지지 않을 때마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데 대해 “신문에 내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게 달갑지 않다. 후배들이 더 독하게 달렸으면 좋겠다”며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 한국 육상계에 후배들의 ‘더 독한 달리기’를 주문하는 선배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또 누가 후배들에게 더욱 더 독하게 달려달라고 쓴 소리를 던진들 서 교수의 한 마디보다 큰 울림을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내년에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해다. 비단 서 교수가 활약했던 100m의 김국영을 비롯한 한국이 스프린터들뿐만 아니라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는 모든 한국의 육상 선수들이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지구 반대편 낯선 땅 멕시코시티의 트랙 위에서 투혼을 불살랐던 ‘선배 서말구’를 떠올려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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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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