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석, 정성화·김준수와 다른 '나의 길' 걷는다
'킹키부츠'로 일약 톱스타 반열 '드라큘라'로 굳히기
"배우는 불안한 삶의 연속…80살까지 연기하고 싶다"
"첫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무대에 올랐는데 정말로 '공기가 바뀌었다'는 말이 실감났어요. 공연 들어갈 때 '쟤 뭐야' 하며 쳐다보던 시선들이 180도 바뀌어 있더군요. '뮤지컬 정말 재미있구나, 이렇게 반응이 바뀌는 거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학교 선배였던 뮤지컬배우 정원영의 권유로 오디션을 보고 뮤지컬 '스트릿 라이프'에 합류한 강홍석의 인생 경로는 그렇게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강홍석은 김준수, 오만석과 같은 톱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주연급배우로 성장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나홀로 활동했던 배고픈 시절을 지나 씨제스컬처라는 대형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체결하면서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했다. 최근에는 '데스노트'와 '드라큘라'의 대작들의 주역을 연달아 따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강홍석은 1월 2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남자답고 카리스마 있는 반 헬싱 역으로 다시 한 번 팬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안정적인 연기력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반 헬싱의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드라큘라의 팽팽하게 대립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예정이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강홍석이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연기 인생의 스펙트럼을 한 단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특히 데이비드 스완 연출의 주문에 따라 자신의 강점인 코믹한 요소를 완전히 배제했다.
"그동안은 팝 뮤지컬만 했을 뿐, 클래식적인 뮤지컬을 해본 적 이 없었어요. 조금이라도 어릴 때 도전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어요."
"기술·연기 부족하지만, 자신감 있게 보여줄 것"
반 헬싱은 지난 2014년 초연 당시 양준모가 연기했던 역할이다. 성악을 전공한 양준모와 허스키한 보이스에 소울 감성이 충만한 강홍석의 이미지는 극과 극으로 다르다. 그만큼 작품의 변화 못지않게 반 헬싱 캐릭터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강홍석은 양준모와 같은 클래식적은 맛은 약하지만 자신만의 강점인 팝적인 요소와 보다 남성적인 매력을 살려 차별화된 반 헬싱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아직 기술 좋은 배우도 아니고 경험이 많은 배우도 아니에요. (정)성화 형처럼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아니죠. 그래서 '뭘 잘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해요. 1차원적으로는 나의 모습을 자신감 있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있는 힘껏 연기하고 노래하는 게 저의 모습인데, 그걸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강홍석이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내 자신이 재밌게 할 수 있는가'다.
"내가 즐겁지 않고 몸이 안 움직이는데 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 자신이 먼저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킹키부츠' 이후엔 더더욱 하고 싶은 작품만 하고 있어요."
인생작 '킹키부츠' 제2의 터닝 포인트
'스트릿 라이프'로 데뷔한 강홍석은 2012년 '전국노래자랑'과 2013년 '하이스쿨뮤지컬'을 통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감초 역할로 튝유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했다. 그리고 2014년 마침내 자신의 인생작이나 다름없는 '킹키부츠'를 만나게 된다.
그가 연기한 롤라 역은 파산 위기에 빠진 구두 공장을 가업으로 물려받은 찰리를 도와주는 역할인 롤라는 가슴 속에 아픔을 가졌지만 넘치는 끼와 흥을 가진 드랙퀸이다. 여장남자로 분한 강홍석은 높은 하이힐을 신고 격한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가창력과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실은 제일 부담스러운 작품이었어요. 대형 뮤지컬이 처음인 데다, 브로드웨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작품이잖아요. 게다가 더블 캐스팅된 오만석 형은 뮤지컬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각광받는 내로라하는 배우였죠. 더블 캐스트로 하는 거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그런 그에게 힘을 북돋워준 건 다름 아닌 오만석이었다. "만석이 형이랑 (고)창석이 형이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네가 부담을 느낄 게 없다. 네가 유명배우고 업적이 많으면 기대치가 높아서 부담을 가져야 하지만, 넌 사람들이 아무 기대 안한다. 그냥 편안하게 하던 것처럼 해라'라고 조언해줬어요. 진짜 형들에게 의지하며 극복한 거 같아요."
'킹키부츠'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눈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2시간 내내 펑펑 울었다.
"제작사인 CJ E&M PD님 전화를 받고 펑펑 울었어요. 손발이 떨릴 정도로 눈물이 많이 났어요. 뮤지컬을 하게 해준 원형이 형과 성재준 연출님에게 정말 고맙더라고요."
"저러다 목에 피가 날 텐데" 김준수에게 배운 것은?
강홍석은 지난해 '데스노트'에 이어 '드라큘라'에서도 김준수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게 됐다. 조연이 아닌 주연급 배우로 올라선 만큼, 화려한 캐스팅 속에서도 제법 존재감이 느껴지는 건 강홍석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다.
특히 김준수는 강홍석에게도 자극을 주는 고마운 친구다. 강홍석은 "김준수는 그냥 직진이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는 거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은 물론, 또 성장할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그 친구한테 정말 많은 걸 배워요. 연습할 때조차 '저러다 목에 피 나올 텐데' 할 정도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눈물도 흘려가며 너무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제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강홍석에게 이번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 본 뮤지컬을 본 장소가 바로 세종문화회관이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공연장에서 '레미제라블'을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강홍석으로선 그 무대에 자신이 선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대견하다.
하지만 강홍석은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으로 연기인생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별똥별이 되기보다는 항상 그 자리에 반짝이는 북극성이 되겠다는 게 강홍석의 연기 철학이다.
"배우란 직업은 정말 불안한 삶의 연속이죠. 꾸준하게 작품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톱스타의 자리와 능력, 그리고 꾸준히 매년 1~2작품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 중에 택하라면, 저는 후자를 택하겠어요. 저는 80살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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