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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민심에 기세등등 야권, '넘치는' 언행 경계해야


입력 2016.12.10 18:48 수정 2017.01.04 23:22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마녀사냥'식 재단(裁斷) 지양하고 옥석 구분해야

한국 정치사의 교훈은 과유불급(過猶不及)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6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정국현안 논의를 위해 열린 야3당 대표회동에서 함께 손을 잡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찬성 234표로 의결정족수 200표를 훨씬 넘겼다. 새누리당내 비주류뿐 아니라 친박 일부도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에서 탄핵을 지지하는 민심의 강도가 얼마나 강한지를 짐작케 한다.

야 3당은 지난 10월29일 1차 촛불집회 이후 성난 민심에 올라타고 여기까지 왔다.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기호지세(騎虎之勢)와 다를 바 없다. 살아 있는 '제왕적 권력'의 목덜미를 물고, 헌법에 규정된 임기 단축을 위한 수순을 밟아가는 데는 촛불민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촛불민심을 두려워한 여당 의원들의 동참이 있었기에 172석에 그치는 야3당 발의 탄핵소추안이 본회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소추의 직격탄을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는 선거중립 의무 위반 등 비교적 일찍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경우 최순실 사태의 베일이 하나둘 벗겨지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사실을 은폐하고 진실호도, 변명과 허위진술 등으로 일관했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그것은 민심의 분노를 점점 돋웠고 불신과 배신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여러모로 대통령이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오만한 권력은 응징하고 약자에게 힘이 돼주는 민심
민심은 주권을 넘겨받은 권력자의 일탈에 웬만하면 믿어주고 넘어가 준다. 2014년11월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 때도 나름대로 짐작하는 바가 있었지만 참아줬다. 그러나 오만과 독선이 인내의 한계를 넘고 분노의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 폭발하고 만다. 한순간에 옷이 찢어지면서 거대 덩치의 괴력 소유자로 변신해 악당을 응징하는 헐크와 다를 바 없다. 반면 우리의 민심은 약자에 대해선 한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고 배려한다. 강자의 횡포에 핍박받고 쓰러진 약자가 있으면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힘을 보태주는 게 민심의 본성이다. 재벌3세의 횡포가 도사리고 있던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때도 그랬고, 백화점 점원을 무릎 꿇린 고객 갑질 때도 그랬다.

이제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상당부분은 야권으로 넘어갔다. 지난 4월13일 20대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지면서 의회권력이 야권으로 넘어간 지는 한참 됐다. 그래도 행정부 권력은 넘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탄핵소추안 가결을 계기로 행정부 수반이자 여당의 실질적 리더의 목을 비틀어버렸으니 이제는 거칠 게 없다. 대한민국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넘겨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된 권력을 누리는 한,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국정이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 무슨 탈이라도 생기면 이제는 야권의 책임을 먼저 물을 개연성이 높다. 지금은 민심의 등 위에 올라타고 있으니 세상 군상들이 눈 아래 보일 것이다. 그러나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오만과 독선에 빠질 위험이 상존한다. 그런 조짐이 벌써 보인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상식에 입각한 김 전 수석 수첩 글귀 해석은?
지난 7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고 김영한 전 대통령민정수석의 수첩 내용을 근거로 야당 의원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으로부터는 ‘천당 가기 쉽지 않을 것’이란 발언도 들었다. 김 의원은 ‘長(장·김 전 비서실장을 의미)’이라고 적힌 글씨 옆에 나오는 ‘세월호 인양 - 시신인양×, 정부책임, 부담’이라고 적힌 글귀를 놓고 김 전 실장을 몰아붙였다.

고 김영한 대통령민정수석의 수첩 내용. ‘세월호 인양 - 시신인양×, 정부책임, 부담’이라는 대목이 논란이 됐다. (채널A 화면 캡처)

김 의원은 “시신을 인양해서는 안 된다, 인양했을 땐 정부의 책임과 부담이라는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반면 김 전 실장은 “시신을 인양하지 않으면 정부에 부담이 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김 의원 해석 대로라면 ‘세월호 인양’과 ‘시신인양×’을 한 묶음으로 보고, ‘정부책임’과 ‘부담’을 또다른 묶음으로 봐야 한다. 시신 인양이 안 되기 위해선 세월호도 인양돼선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첩 원문을 보면, ‘세월호 인양’이 제목 격으로 앞에 있고 줄표(-)를 사용한 뒤 ‘시신인양×’, ‘정부 책임’, ‘부담’ 세 단어가 나열돼 있다. ‘시신인양×’은 ‘세월호 인양’에 붙은 게 아니라 뒷 단어들과 같은 급(級)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구를 ‘세월호 인양 문제에 대해선 시신인양 안 되고, 인양되면 정부 책임, 부담’이라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러운가? 아니면 ‘세월로 인양 문제에 대해선 시신인양 안 되면 정부 책임, 부담’이라고 푸는 게 자연스러운가? 전자로 해석하기 위해선 인양을 부정(×)했다가 다시 ‘인양하면’이란 긍정 문구를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후자로 해석하기 위해선 그럴 필요가 없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해당 글귀는 김 전 수석이 2014년 10월 27일 메모한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 중에서 잠수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뛰어들어 294번째 시신을 수습한 뒤 100일 가까이 추가 발견이 없을 때였다. 남은 희생자 10명의 유가족들은 법률 대리인을 통해 “최후 수색방안의 하나로 세월호 인양도 조심스럽게 논의하고 있다”면서 ‘인양검토’ 입장을 처음 밝힌 직후였다. 그전에는 유가족들이 인양 과정에서 시신 유실 가능성을 우려해 세월호 인양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왔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김 의원 주장 대로 시신이 수습되면 정부 책임과 부담이 ‘없던 게 새로 생기고, 있던 게 더 늘어날’ 이유가 있는가? 물론 세월호 자체가 인양된다면 그럴 개연성이 얼마든지 남아 있지만, 시신은 그것과 성질이 다르다. 미국 정부가 지금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60년이 더 지난 한국전쟁 전사자들의 유골을 한반도에서 수습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우리 국군도 마찬가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신 수습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세월호 사건에서 그 책임은 분명히 정부 몫이다. 따라서‘시신 수습이 안되면 정부 책임과 부담’이라는 점은 자명한 것이며 상식에 가깝다.

'마녀사냥'식 재단(裁斷)을 지양하고 옥석을 구분해야
김 의원은 부장검사를 지낸 검사 출신 의원이다. 과거 검찰에서 피의자 신문하듯 김 전 실장을 추궁한 것으로 보인다. 검사들이 그런 식으로 증거를 해석해 피의자 자백을 받아내려 한다면 애먼 사람 여럿 만들었을 것이다. 더욱이 ‘천당 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신의 영역까지 넘본다면, 중세 유럽에서 일부 사제들이 마을 여자들을 잡아다가 십자가에 매어놓고 신의 이름으로 불 태워 죽였던 마녀사냥을 연상시킨다. 그나마 최종 심판자인 판사가 아니라 기소만 담당하는 검사였다는 게 다행이다. 물론 김 전 실장이 당초 “최순실을 모른다”고 했다가, 뒤늦게 박영선 의원의 관련 영상 제시에 “최순실 이름을 보니까 이제 와서 못들었다고 말할 순 없겠다”면서 말을 바꾼 데 대해선 위증 여부를 따져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면 합리적 추론과 건전한 상식에 입각해 옥석(玉石)을 구분해야 할 책임이 있다.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야권은 다음 목표로 ‘대통령 즉각 사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등 유력 대권주자들은 경쟁하듯이 “탄핵은 시작이다”, “퇴진운동이 기본이다”라면서 ‘즉각 퇴진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초헌법적 주장이며 법치주의에서 벗어난다.

일단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이상, ‘공’은 사법부(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입법부를 대표해 권성동 국회 법사위원장이 헌재에 소추의결서를 제출한 이상 사법부가 최종 판단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게 법치주의에 부합한다. 원외의 대권주자라고 해서 그 원칙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한국 정치사의 교훈은 과유불급(過猶不及)
야권의 일부 ‘넘치는’ 언행들은 쓰나미처럼 모든 것을 도매금으로 쓸어버리는 탄핵정국이라서 그냥 묻혀 넘어갈 수 있다. 호랑이 민심에 올라타고 정국 주도권을 장악한 권력 집단의 특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특혜가 얼마나 오래갈 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시나브로 초심을 잃고 오만 방자하게 굴다가는 부지불식간에 굴러 떨어져 호환(虎患)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정치사의 교훈이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탄풍’이 거세게 불자 민주당의 참패가 우려됐다.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에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도왔다는 이유에서다. '지나침'에 대해 민의가 청구한 계산서였다. 그에 대한 극약처방으로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한복을 입고 광주시내 금남로에서 삼보일배를 하며 국립 5․18민주묘지까지 나아갔다. 선거결과는 겨우 ‘원내 9석’을 건지는 참패로 끝났지만 그럼에도 ‘언더도그 효과’를 겨냥한 ‘약자 코스프레’는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석고대죄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특검 조사를 받아야하는 박 대통령이 더 이상 ‘버티기’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소복(素服)을 곱게 차려 입고 흰 고무신을 신은 채 국립서울현충원 선친의 묘소 앞으로 나아가 엄동설한에 석고대죄(席藁待罪)를 하고 있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그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만큼 역설적으로 그런 유(類)의 일들이 실행될 경우 민심에 미칠 파장에 대해선 그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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