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폭탄’에 中 기업들, ‘원산지 세탁’에 혈안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5.05.11 07:07  수정 2025.05.11 12:10

中 수출기업, 145% 관세 상쇄위해 제3국서 원산지 세탁

중국 SNS상에는 ‘원산지 세탁 문제 해결’ 광고 흘러넘쳐

말레이시아 클랑항에서는 ‘택갈이’ 대행업체들이 성업 중

원산지 세탁 주타깃 韓, 동남아국가 대응책 마련에 골몰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인 지난 2019년 6월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미국의 ‘관세폭탄’을 맞은 중국 기업들이 ‘원산지 세탁’(origin washing)에 승부수를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중(對中) 초고율(145%) 관세를 상쇄하기 위해 제3국에서 원산지 세탁 과정을 거쳐 미국으로 ‘우회 수출’(환적·Transshipping)하는 데 총력전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은 관세폭탄을 피하기 위해 중국산 상품을 한국을 비롯해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제3국에서 ‘택(tag)갈이’(상표 바꿔 달기) 등 원산지 세탁을 통해 미국에 우회 수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4일 보도했다.


미 무역법은 상품이 관세 적용을 위한 원산지로 인정받으려면 해당 국가에서 ’실질적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품이 여러 국가에서 제조·가공 과정을 거쳤을 때 최종적으로 어느 나라에서 생산된 것으로 볼 것인지를 판단하는 게 미국의 원산지 기준이다.


따라서 중국 업체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푸젠(福建)성 샤먼(厦門) 등 자국 내 항구에서 말레이시아 등 제3국으로 제품을 보내면 현지 공장이 협력해 택갈이를 하거나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해 원산지를 세탁하는 것이다. 환적국인 말레이시아에서 원산지 증명을 받은 까닭에 미 항구 통관 때는 말레이시아산이 된다는 얘기다.


이 점을 노려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우회 수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 주겠다는 광고가 흘러넘쳐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중국산 상품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주변 국가들은 자국이 미국행 우회 수출의 '경유지'로 전락하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중국 남부 광둥성 중산시에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업체의 조립 라인에서 한 여성 직원이 일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샤오홍수(小紅書) 등 중국 SNS 상에는 ’제3국 환적 전문가’를 자처한 계정들이 원산지 증명서 발급 등을 도와주겠다는 광고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한 광고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했나요?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동남아시아 상품으로 변신하세요!“라고 홍보했다. 또다른 광고에는 ”미국이 중국산 목재 바닥재와 식기류에 제한을 뒀나요? 말레이시아에서 ‘원산지 조작’으로 원활한 통관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 클랑항 등에서는 택갈이 대행업체도 ‘성업’ 중이다.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현지 컨테이너에 제품을 옮기고 태그와 포장을 바꾼 뒤 말레이시아산으로 재포장해 수출할 수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연계된 말레이시아 공장이 원산지 증명서 발급을 도와줄 수 있다”고 미끼를 던졌다.


이 같은 ‘회색지대 무역’은 중국 중소 업체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 중국 소비재 제조업체 대표는 ”중국 항구까지는 우리가 책임지고, 이후 수입업자들이 나머지를 처리한다“며 ”1㎏당 5위안(약 965원)만 내면 해결된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한 무역컨설턴트는 “원산지 세탁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을 회피를 위한 두 가지 주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며 “또 다른 방법은 고가 상품과 저가 상품을 뒤섞어 실질보다 낮은 가격으로 신고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국이 우회 수출 통로로 이용될 것을 우려한 아시아 국가들 비상이 걸렸다. 대표적인 곳이 우리나라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원산지 허위표시 적발액은 모두 295억원 규모에 달했다. 대부분이 중국산이고 목적지는 미국이다. 관세청은 ”한국이 미국 관세 회피의 우회 통로로 활용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남아 정부들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베트남 산업무역부는 수출업체에 원자재·부품의 원산지 검증 강화를 요청했고, 태국 외교통상부도 미국행 물품에 대한 원산지 심사를 보강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투자통상산업부는 “국제 무역질서의 투명성을 해치는 원산지 조작은 중대한 범죄”라며 “사실로 드러날 경우 미 당국과 공조해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산본부 세관 직원들이 수출입물품에 대한 원산지 표시 단속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회 수출 시도가 확산되면서 미국 내 비즈니스 파트너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아마존의 상위 10대 독립 판매업체의 한 임원은 일부 화물의 원산지가 변경된 사례를 목격했다며 이로 인해 미국 세관에 의해 압수당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임원은 중국 업체가 미 수입자로 등록해 제조원가 기준으로 관세를 내주겠다고 제안하는 등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지만, 이를 받아들이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급업체가 허위로 가격을 신고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 공급업체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중국 기업들은 인도 기업에도 손을 내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때 무역전쟁의 표적이 된 중국 업체들은 관세를 우회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로 진출했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베트남(46%)·말레이시아(24%)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등 동남아 우회 수출도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는 탓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자이 사하이 인도수출기관연합 사무총장은 중국 광둥성 광저우(廣州)에서 열리는 캔톤 페어Canton Fair·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에 참석한 인도 기업 여러 곳에 중국 업체들이 접근했다고 밝혔다. 중국 기업들은 인도 기업과 공동 브랜드로 미 기업에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이번 캔톤 페어에 참석한 인도 기업들에 접근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 자료: 미국 백악관·상무부

사하이 사무총장은 중국 업체들이 인도 기업들을 통해 미국 고객사에 제품을 납품하고, 인도 업체는 판매 대가로 중국 업체들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인도에 대해서는 현재 기본 관세 10%를 적용하고 있다. 인도에 대한 상호관세는 90일 유예기간이 끝나면 26%로 올라갈 예정이다.


인도는 사실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중국의 투자를 제한해 중국 기업들의 인도 진출이나 인도를 통해 미국으로 상품을 수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중국 기업들의 제안들은 수공구나 전자제품, 가정용품 등의 부문에서 주로 이뤄졌다.


일부 미국 고객사들은 인도 업체들과 직접 협상을 착수하기를 원하기도 했다. 인도 잘란다르에 본사를 둔 수공구 업체 오아이카이툴스는 미국 수출을 위해 중국에 공장을 둔 미국 기업 및 중국 기업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망치 등 수공구를 만드는 인도 업체 빅터포징스 관계자도 중국 업체들이 미 고객사의 주문을 대신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해왔으며 중국에 공장을 둔 미 업체들로부터도 연락받았다고 밝혔다.


ⓒ 자료: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이를 간파한 미 정부는 관세폭탄 때리기로 대응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중국 기업이 동남아시아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태양광 제품에 최대 3500%가 넘는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 기업이 동남아에서 만든 태양광 셀과 패널 등을 덤핑 가격에 수출하고 중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있는 까닭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동남아에서 들여오는 태양광 패널 대부분에 반덤핑관세(AD)와 상계관세(CVD)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두 관세를 합해 말레이시아에서 수출하는 중국 징커넝위안(晶科能源) 태양광 제품에는 40.3%, 태국에서 수출하는 중국 톈허광넝(天合光能) 제품에는 375.19%의 관세가 각각 책정됐다.


베트남에서 수출하는 룽지루넝(隆基綠能)과 징아오커지(晶澳科技) 태양광 제품에는 120.69~813.92%의 관세를 매겼다. 캄보디아에서 수출하는 하오넝광뎬(昊能光電) 제품은 미국의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려 3521%의 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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