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앞에 물불 안가린다"...실현 불투명 포퓰리즘 '공약' 남발
문재인, 군복무기간 단축 …이재명, 기본소득 지급
남경필-안희정, 수도이전…박원순, 서울대 폐지
‘사교육 전면 폐지’, ‘군 복무기간 대폭 단축’, ‘취학 전 자녀 둔 부모의 조기 퇴근’, ‘전 국민에 130만원 지급’
대통령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여의도에는 또다시 ‘보물 상자’가 쏟아지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행 티켓을 거머쥐려는 대권 주자들이 저마다 각종 공약을 소개하며 유권자의 한 표를 호소하는 모습이다. 다만 공약(公約)이 든 보물 상자가 아닌, 텅 빈 공약(空約) 상자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바른정당 대권 주자로 나선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교육 폐지를 위한 국민투표와 이른바 ‘교육 김영란법’ 제정을 공식 제안했다. 즉, 2018년 지방선거에서 사교육 폐지를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국민 다수가 동의하면 당 차원에서 사교육을 전면 폐지하는 법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00년 사교육 폐지를 위한 '사교육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남 지사는 이를 위해 △현행 입시 제도를 수능 위주로 간소화하고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하며 △모바일 방식의 교육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남 지사는 또 "우리 부모님들은 아이들 교육에 ‘묻지마 식’으로 돈을 쏟아 붓는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드니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며 ”사교육은 마약이다, 비싸고 인생에 도움이 안 되고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서울대 폐지론’도 나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서울대를 폐지해 대학 서열화를 바로 잡겠다”며 집권하면 ‘교육 대통령’이란 말을 듣고 싶다고 밝혔다.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폐지론은 지난 2004년 3월 제기돼 대학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그해 민주노동당이 이를 총선 공약으로 발표, 2012년 여름에는 민주당, 2014년에는 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들고 나온 바 있다.
앞서 남 지사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함께 ‘행정 수도 이전’을 공동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국회와 청와대, 대법원과 대검 등을 세종시로 완전히 이전하는 것이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해당 안을 대선 공약으로 채택하겠다고 약속했다.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정권 당시 추진했으나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중단된 바 있다. 충청권 표심을 겨냥한 수도이전 공약은 개헌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하다.
같은 날 문재인 전 대표도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하며 깃발을 들었다. 일단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부모의 근무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임금 감소 없이 단축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또 연차휴가 소진을 의무화하고,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을 대기업의 80%로 상향조정함으로써 일자리 수십만개를 창출할 수 있다고 확언했다.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선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뒤 “지금까지 고용 관련 예산은 임시직이나 시간제 등으로 허비만 됐는데, 그 예산을 좀 더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면 된다. 재원 마련보다는 재원운용이 우선적이고 시급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전날에는 ‘군 복무 단축’도 내걸었다. 현행 군 복무기간을 1년까지 단축하자는 내용이다. 문 전 대표는 이에 대해 "현대전은 보병중심의 전투가 아니라 과학전이기 때문에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해 병력을 줄이는 것이 충분이 가능하다. 게다가 지금은 국방업무를 하는 사병들의 노동력을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사용하고 있다”면서 사병월급 인상에도 방점을 찍었다.
이날 같은 당 또 다른 잠룡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 130만원 지급’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시장은 '판교테크노밸리, 기본소득을 말하다' 토크 콘서트에서 "생애주기별, 특수계층에 지급하는 기본소득 100만원과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국민에게 돌려주는 30만원을 합치면 연간 1인당 1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원은 기존 정부 예산 400조원을 구조조정 함으로써 그중 7%인 28조원으로 조달하면 된다는 게 이 시장의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유아, 아동, 청소년, 노인 등 국민 2800만 명에게 연간 100만씩 지급하고 △국토보유세를 기본소득세에 대한 목적세 형태로 신설해 전 국민에게 연 30만원씩 지급하면, 국민 95%는 이미 내는 재산세보다 소액을 더 내고 더 많이 돌려받게 되며, 손해 보는 국민은 5%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이와 관련해 "기본소득은 더 이상취약계층을 구제해주는 복지 개념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 경제 질서와 성장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며 "불로소득이야말로 '돈맥경화'다. 이를 제대로 걷어 국민 모두 나눠 쓸 수 있다면 돈맥경화가 풀릴 것"이라고 확언했다.
쏟아지는 공약에 대한 비판은 정치권 내부에서 먼저 나왔다. 안 지사는 전날 문 전 대표의 ‘군복부 단축’ 공약에 대해 "민주주의 선거에서 표를 전제하고 공약을 내는 것은 나라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며 "군 복무 문제는 튼튼한 안보체계를 어떻게 갖출 것이냐를 두고 얘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도 문 전 대표를 향해 “국방의무를 '권력야욕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소득·재산에 상관없이 연간 100만원을 지급하겠다거나 아동·청년·노인 등에게 월 30만원 씩 지급하겠다는 ‘기본소득제’ 관련 주장 역시 수십조 규모의 재원이 필요하다. 특히 매년 누리과정 예산 조달에도 진통을 겪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해당 문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재정 준비가 전제돼야 할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은 “대부분 역대 대선 때마다 봐왔던 공약들의 일환”이라며 “선거가 임박해서 표를 의식해 내놓은 공약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그간 대선을 통해 여러 번 입증됐다. 공약을 보고 뽑아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 공약들은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고 유권자도 이제 그것을 알기 때문에 공약을 보고 투표하기가 더 어려운 기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특히 이 시장과 반 전 총장을 예로 들며 “이재명 시장을 비롯해서 단기간에 뜬 사람들을 보라. 공약 때문이 아니라 사이다 같은 말이나 행동으로 확 뜨면서 주목 받은 것 아닌가”라며 “반기문도 공약 하나 없이 단번에 떴다. 그게 바로 공약이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유권자들도 시각을 바꿔서 포퓰리즘 공약을 가려볼 수 있어야 한다”며 “대선 주자들도 더 이상 그런 식의 공약에 집착하면 안 된다. 단발성 공약으로 지지도기 오를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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