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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조선시대 경제관과 닮은 2020년의 유통 규제


입력 2020.04.22 07:00 수정 2020.04.22 08:27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상업 천시하던 조선시대 경제정책…2020년 현재 상황과 닮아

온라인 중심 트렌드에도 규제 논리는 여전…표심 위한 정치 도구 전락 막아야

경기도에 위치한 어느 대형마트의 텅 빈 내부 모습. ⓒ독자제공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1930년대 강원도 평창군 봉평 일대를 떠돌며 물건을 팔던 ‘장돌뱅이’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집을 떠나 5일 장을 찾아다니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그들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금으로 치면 우리 상업과 유통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경제정책은 ‘무본억말(務本抑末)’로 요약된다. 농사에 힘쓰고 상업을 억제한다는 뜻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백성이 토지를 떠나 상업에 종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상업과 상인, 상업 이윤을 천시하고 시장 개설과 확산을 막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이런 정책관은 불행히도 일제시대까지 이어지면서 장돌뱅이의 삶을 오랜 시간 힘들게 만들었다. 백성을 위해 시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조선의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시장을 억압하려 했다. 일부 실학자는 시장이 열리는 날을 전국적으로 통일해 장돌뱅이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유통 정책은 어떨까. 2020년 현재 ‘유통산업발전법’은 상당 부분 90년 전의 유교적 경제관과 닮았다. 경쟁을 제한하고 시장을 억압하는 내용이 즐비하다. 오프라인 유통 시장은 인구 구조 및 소비패턴의 변화 등으로 이미 사양산업군에 속하게 됐지만 이들을 향한 규제는 여전히 가혹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대형마트들은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한 달에 2번 의무휴업을 실시하고 있다. 규제의 본래 취지는 전통시장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을 적용한 사례인 셈이다. 그런데 소비 트렌드 변화로 전통시장 대신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유통 플랫폼들이 수혜를 보면서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규제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설상가상 지난 총선에서도 오프라인 유통업계에 대한 규제는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다. 여당을 포함한 범진보 진영의 공동 정책 공약에는 복합쇼핑몰에 대한 도시 계획단계부터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무일 ▲입지 제한 등을 규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복합쇼핑몰 규제를 담은 법안은 여러 건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데 슈퍼 여당의 등장으로 법안 처리에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약자, 소상공인 보호의 중요성은 경제성장을 떠나 앞으로도 귀담아들어야 할 명제다. 그러나 이들 주장을 경청해 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표심 잡기용으로 규제를 활용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은 개선은 커녕 정반대 결과를 초래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온라인 시대에 맞서 기업들의 투자 여력을 북돋고, 다시 한 번 일어설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한다. 생사 기로에선 이들의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공허한 외침으로 그쳐선 안 된다는 뜻이다. 역사가 주는 교훈을 통해 조금이라도 나은 경제 정책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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