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계기로 미중관계 '발전'
野, 실질성과 전무에 '백지외교' 지적
미일, 팩트시트 공개에도 '딴말'
강훈식 "이견없다" 일축에도 우려 증폭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경북 경주 소노캄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위한 국빈만찬에서 건배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우리나라 앞에 놓인 민감 현안이 일부 해소된 모양새다. '실용 외교'를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중국과의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각각 관세협상 타결과 관계 회복을 이뤘기 때문이다. 여당에선 "역대급 성공"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는 섣부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질적 성과가 나오지 않은 탓에 야권의 의심이 커지는 만큼, 이 대통령은 후속 성과를 내야 한다는 과제를 안았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통령의 이번 외교 성과를 두고 "합의문이나 공동성명조차 없는, 이것저것 모두 생략된 '백지 외교'가 이재명 정권의 실용외교"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미국·중국과 정상회담을 통해 표면적인 성과를 냈지만, 이면에는 구체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비판한 것이다.
장 대표는 미국과 협상한 중국·일본은 팩트시트(joint factsheet·공동 설명자료)가 공개됐지만, 한국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채 일부 사안을 두고 미국과 엇갈린 입장이 드러난 것을 지적했다. 중국과의 회담 역시 민감 현안에 대해 논의에만 그쳤다는 점을 꼬집으며 "실용외교가 국민을 속이고 둘러대기 편한 외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미중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G2(주요 2개국) 국가와의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다. 미국과는 지지부진했던 '한미 관세 협상'을 타결했고, 중국과는 관계 회복과 함께 한한령·서해 불법 구조물 문제 등 민감 현안이 논의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성공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지만, 이 대통령이 넘어야 할 산은 '실질 성과'라는 관측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지적한 것처럼 한미는 지난달 29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세 협상 세부 내용에 합의했지만, 경제·안보 분야 팩트시트는 이날까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 방문 당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정상회담 직후 '미일 핵심광물과 희토류 확보를 위한 채굴·정제 프레임워크' 등 문서에 서명했다. 미중 무역 합의 팩트시트는 정상회담 이틀 만에 공개됐다. '미중일' 국가 간 협상 결과는 곧바로 나온 것을 감안하면, 한미 간 팩트시트는 진척 속도가 늦은 편이다.
여기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반도체 분야 관세는 이번 한미 협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과 한국의 농산품 시장 개방 등 우리 정부 발표와 어긋난 주장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 나아가 미국과 일본이 정상회담 직후 공개한 '투자 팩트시트'를 두고 이견을 보이는 것도 우리 정부 입장에선 불안 요소다.
미일 정상은 지난 28일 '미일 간 투자에 관한 공동 팩트시트'를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은 개별 기업이 투자를 결정한 것이 아닌 프로젝트 구성에 관심을 보인 항목을 팩트시트에 열거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투자 유치를 추진한다'는 제목을 단 팩트시트를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나아가 일본 문서에는 대미 투자액이 4000억 달러지만 미국 문서에는 5000억 달러로 명시된 것에 일본 정부 관계자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보도했다.
야당도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된 것에는 환영하지만, 미국 측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아직 합의문이 공개되지 않았는데, 양측 주장이 180도로 다르니까. 국민이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며 "여당의 '명비어천가'에 기대 국민을 속이려 하지 말고, 한미 관세협상의 결과를 국민 앞에 명명백백하게 소상히 공개하기를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열 개혁신당 수석최고위원은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안을 구두 약속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고, 계약서도 보지 않고 서명하는 일은 개인에게는 패가망신의 지름길, 국가에겐 국익 상실의 시작"이라면서 "당은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를 반드시 잡아내고 국익을 지키는 방파제가 되겠다"고 했다.
현재 대통령실은 관세 분야 팩트시트는 마무리됐지만, 안보 분야 팩트시트 중 일부 문구를 양국이 조율하고 있기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이번 정상회담에선 '핵추진 잠수함 건조'가 갑작스럽게 논의됐는데, 구체적인 협의가 나오기까진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야당 일부에서 제기하는 우려를 의식해 "양국 간 이견이 크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 관세 협상 팩트시트에 핵추진 잠수함이 포함됐는지 여부에 대해 "한미 합의 요약문에 핵추진 잠수함 포함 여부 관련해선 후속 협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양국 간 이견이 크게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팩트시트는 이번 주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일 경북 경주 소노캄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미 정상회담보다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은 한중 정상회담도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중은 이번 회담을 통해 그동안 미국 영향으로 미묘했던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이 '균형 외교'를 추구하는 만큼,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관계가 발전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중국이 민감할 수 있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추진도 일부 오해가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강 실장은 "우리가 군비 경쟁을 더 만들어내거나 동아시아의 위험을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북한이 핵잠수함을 발표한 시점에서 상응하는 준비와 대비를 해야겠다는 것을 중국과 미국에 설득한 결과"라면서 "중국도 대한민국이 상응하는 전력을 가져야 한다는 설명에 설득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해 한한령 해제, 서해 불법 구조물 등 중국 입장에서 불편한 사안은 서로 입장을 밝히고 논의하는 것에만 그쳤다.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은 서로 간 정치적 신뢰를 공고히 하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지만, 야권에선 "실질적으로 얻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이 나온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건 의원(국민의힘)은 이날 SBS라디오 '정치쇼'에 출연해 "구체적으로 우리 국민에게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고, 한중 관계 복원 해석 정도밖에 없다"며 "한한령 해제와 한화오션 제재 해제 등 눈에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중국이 핵추진 잠수함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만큼,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되기 어려웠다는 점은 불가피하다면서도, '관계 회복'을 계기로 향후 현안 해결에 진척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YTN라디오 '더 인터뷰'에서 "한한령이라는 말 자체가 서로 얘기하기가 조금 거북한 부분이 있다"며 "인적·문화적 교류를 확대한다는 틀 안에서 합의했는데, 여기에 한한령 해제냐고 가는 것은 국익에 도움 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보면서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동안 최악의 한중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회담을 통해 (관계를) 풀어냈고, 시작된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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