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역사전쟁”, 제노사이드 그 자체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6.10 08:30  수정 2020.06.09 21:08

‘친일의 정도’와 ‘건국의 기여’ 형량 위한 기준 작업 선행돼야

현 여권인사들은 인위적으로 일면의 역사를 지워버리려고 해

역사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조금 느슨해야 사회구성원 공감 형성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연일 화제다. “자신에게 모욕감을 줬다”며 ‘판사탄핵’ 운운하더니, 거듭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친일파 파묘(破墓)를 위해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내겠단다. ‘판사탄핵’도 쇼킹하지만, ‘현충원법 개정’ 주장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전자는 합당성 논란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헌법에 근거한 절차에 따른 주장이다. 대통령 탄핵까지 한 나라에서 그게 뭐가 그리 대수롭겠나? 하지만, 후자의 주장은 헌법 전문에나 나올 법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주제를 너무 즉흥적으로 문제 삼는 것이기에 더욱 심각하다.


이수진 의원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비난 자체가 필요이상으로 그를 고양시켜, 결과적으로 더욱 그런 행동을 밀어붙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원 한사람의 인성이나 능력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의원이 ‘대중추수(大衆追隨)’를 위해 그런 주장을 겁도 없이 남발할 수 있는 ‘현 여권의 역사인식’이다. “최근 보훈처가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불가입장을 전달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핑계는 있지만 갑자기 입장이 바뀐 이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저의에 새삼 보훈처장의 정치적 이력을 운운할 필요도 없다. 여권의 분위기에 편승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수진 의원은 “친일파 묘역을 보며 아이들에게 보훈이야기를 할 수 있나”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교육문제에 워낙 민감하니 이를 끌어들인 것이리라. 그래서 생각해 봤다. 지금의 분위기대로 지속되면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현충원에는 ‘친일경력자’가 사라지고, ‘친북인사’들이 대거 안치될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홍범도 장군 유해를 모셔서 극진히 예우해 안장해 드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교지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렇다고 필자가 친북인사를 모두 배제하자는 것도 아니다. 공과(功過)를 따져 그에 맞는 대우를 해 드리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특정 정치집단에 의해) ‘친일 딱지’가 붙은 분들을 현충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일본군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일본제국에게 임명장을 받았다고 모든 사람을 친일파로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나라 건국의 정당성에 하자가 생긴다.


제대로 된 국가를 세우는 데는 정말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국가경영은 어떤 분야보다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35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소수 독립운동 세력이 혜성같이 나타나 국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북한 김일성도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 친일파를 중용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독립운동가 뿐 아니라 친일파 후손들도 여야를 막론하고 골고루 포진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현재의 정파적 이익을 기준으로 ‘친일’을 재단하는 것은 ‘외눈박이 교육’일 뿐이다. 꼭 손을 대야 한다면, ‘친일의 정도’와 ‘건국의 기여’를 형량하기 위한 기준을 세우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모든 정부에서 여야는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국교도 단절했고 일본의 ‘오야붕(親分, おやぶん)’인 미국과 직거래했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경제개발을 위해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단행했다. 그 결과가 현재의 한국경제 성장이다.


이후 문민정부가 되며 친일문제가 다시 부각됐다. 현재 미래한국당 당사에 사진이 올라가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주역이었다. 92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역사바로세우기’를 주장하며 ‘일제잔재지우기’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산뜻하지 않았다. ‘중앙청 철거’에서 그쳤어야 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그 결과는 우리나라의 ‘IMF 금융위기’였다. 정권교체로 등장한 김대중 대통령이 그 고비를 해결했다. 처음으로 우리 대통령이 일본에 갔고 일왕과 만났다. 바야흐로 한일의 ‘윈-윈시대’가 열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 허니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기자실에 대못을 박았다. 언론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말살하는 폭거”라며 거세게 저항했다. 그래도 노무현 정부는 역사문제를 함부로 건드리지는 않았다. 역사문제는 ‘헌법적 자유’ 이전에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그 후예인 현 여권인사들은 인위적으로 일면의 역사를 지워버리려 한다. 거친 외과수술로 말이다. 간암이며 간을, 폐암이면 폐를 제거하는 식이다. 핀셋 식으로 암세포만 저격해 없앨 실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숙주인 생명체의 건강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암세포나 바이러스가 되어, 자신 세포나 바이러스의 생존을 위해 장기와 숙주를 죽이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망하는 나라 지도부의 전형적인 행태다. 그들도 이를 알기에 그 자식들은 더욱 안전한 숙주(미국 등)로 이전시킨다. 고액 유학비는 물론 그 숙주에서 뽑아내서다.


역사학자 카(E.H.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대화는 쌍방향이다. 현재가 과거를 제단해서도 안되고, 과거가 현재를 억눌러서도 안 된다. 미래를 위해, 현재와 과거는 끊임없이 대화하며 협력해야 한다.


과거가 현재를 억압했던 예가 조선의 사대주의(事大主義),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다. 현재가 과거를 재단한 예는 중국 진나라의 분서갱유(焚書坑儒),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유럽중세의 암흑시대였다. 근래에는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이 가장 비극적이었다. 대부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제노사이드(genocide)’로 정점을 찍었다. 현재 우리사회는 사대주의, 소중화주의, 분서갱유, 문화대혁명을 모두 겪고 있다. 과거와 현재는 끊임없이 투쟁하기 때문이다. 이제 승기를 잡은 여권이 그 여세를 몰아 국가 유전자의 제노사이드를 실행하려 한다. ‘역사전쟁’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희생자는 국가와 국민이고 가해자는 폐허를 남기고 떠날 것이다.


우리 동네 마이스터 고등학교 정문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글로벌 현장학습’ 나라로 일본이 선택됐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제공한 프로그램이란다. 정치적 명분으로는 반일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에서는 일본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많은 젊은이들이 일본게임과 만화를 즐기고 있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은 일본에 취업하기를 바란다. 당연히 정치에 더욱 무관심해진다. 기성세대와 코드를 맞추는 일부와 달리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현실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세대갈등이 심해질 것이고, 같은 세대 내에서도 합의를 이루기 힘들어질 것이다. ‘사회의 공감대’는 희박해질 것이고 사회는 더욱 불안해 질 것이다. 힘을 모를 수 없으니 세계 무한경쟁에서 뒤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또 다시 우리 젊은이들은 ‘난민 아닌 난민’으로 세계 속에서 몸과 값싼 노동력을 팔고 다닐 수밖에 없다. 외국의 좋은 교육을 받은 일부 좌·우파 엘리트집안 자녀가 아니라면 말이다.


역사전쟁이 극단인 제노사이드로 가지 않기 위해서, 역사문제에 일정한 ‘머뭇거림’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민감한 사안 대부분은 조금 느슨해야 사회구성원의 공감을 형성하기 쉽다. 눈앞의 위협인 안보이슈가 아닌 일본문제가 대표적이다. 우리보다 현명할 후손에게 해법을 남겨두는 ‘느슨함의 지혜’가 필요하다.


글/김우석 국민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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