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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방송 뷰] 게스트·먹방에 의존…방향성 잃은 ‘대세 예능’들의 현주소


입력 2020.09.17 01:45 수정 2020.09.17 01:46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MBC, JTBC, KBS, SBS

‘초심’이라는 말은 수차례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 말이다. 많은 연예인들이 입버릇처럼 초심을 다잡겠다고 말하는 건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지만 초심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변화’다. 특히 트렌드에 따라 과감한 변화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엔터테인먼트 업계다. 그 중심을 지키는 게 바로 이들이 짊어진 과제이다.


최근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변화에만 집중한 모양새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오랫동안 방송되다 보면 그에 따른 변화가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의 기획 의도를 벗어나게 되면 프로그램의 근본이 되는 정체성을 잃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한 때 ‘대세’라고 불리며 높은 시청률을 보였던 예능 프로그램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점이 도드라진다.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자랑하는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일할 맛 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대한민국 보스들의 자발적 자아성찰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각계각층의 CEO들의 신선한 등장과, 그들이 보여주는 일터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최근 이 프로그램에 비판의 반응들이 잇따라 나오는 건 어느새 ‘먹방’으로 종결되는 이상한 전개 때문이다.


특히 지난 13일 방송에서는 도가 지나쳤다는 평이 잇따르고 있다. 피트니스 대회를 마친 황석정의 축하파티를 빌미로 양치승 관장과 ‘근조직’의 먹방을 그렸고, 현주엽과 허재, 박광재가 뭉쳐 장어 9인분과 소고기 8인분, 그리고 정호영 셰프의 가게를 찾아 300만원에 해당하는 양의 참치를 먹어치웠다. 이날 방송은 온통 먹방에만 의존하면서 기획 의도에 매우 어긋난 것이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나이든 엄마가 화자가 되어 싱글족 아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육아일기’를 모티브로 한 SBS ‘미운 우리 새끼’는 일찌감치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철부지 같은 자식과 늘 자식 걱정인 모자지간의 육아 일기를 간접적으로 어필하면서, 유쾌하고 따뜻한 웃음과 뭉클한 감동을 안기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급부상했다. 작위적인 연출은 물론, ‘광고판’으로 전락했다는 평까지 잇따르고 있다. 한때 최고 시청률 30%에 근접한 성적을 냈지만, 초심을 잃은 프로그램에게는 시청률 하락이라는 당연한 결과가 따라붙었다. 최근에는 10% 초반대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게스트에 기댄 채 힘겹게 이어나가고 있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나혼자산다’와 ‘뭉쳐야 찬다’가 그 주인공이다. 독신 남녀와 1인 가정이 늘어나는 세태를 반영해 혼자 사는 출연진의 일상을 관찰하는 ‘나혼자 산다’와 스포츠 선수 출신들이 뭉쳐 전국 축구 고수와의 대결을 펼치는 ‘뭉쳐야 찬다’는 내로라하는 출연진을 섭외해놓고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초반에는 출연진 중심으로 이야기를 탄탄하게 그려나갔지만, 최근에는 친분과 이슈에만 매달려 게스트의 인기에 기생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골목식당’의 경우는 조금 다른 면에서 초심이 흔들리고 있다. 프로그램은 요식업계의 큰손 백종원 대표가 각 식당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면서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방송되고 있지만, 출연자들과의 잡음으로 초심이 흔들린 것이 아니냐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출연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재미를 위해 악의적인 편집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상인들과 방송사의 갈등이 계속해서 불거지면서 프로그램 자체의 긍정적인 취지가 퇴색된 경우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게 되면 그 프로그램의 생명력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트렌드를 쫓아 일정한 기준이 없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바꾸고, 인기 연예인을 섭외해 일시적으로 시청률이 급상승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기획의도’라는 뿌리가 흔들리는 순간 그 프로그램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나무가 될 뿐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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