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74명 연합훈련 연기 성명
송영길 "김여정 말에 연기? 안 돼"
국정원 '연기' 국방부는 '원론' 제각각
김여정 한 마디에 당·정·청 갈팡질팡
범여권 국회의원 74명이 5일 이달 중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조건부 연기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취소를 요구한 지 나흘 만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원칙 유지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견이 분출되는 등 김 부부장 한 마디에 집권여당이 흔들리는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 설훈·서영석·이병훈·유기홍·진성준 의원 등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다시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며 “한반도 정세의 결정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조치로서 한미군사훈련의 연기를 결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김 부부장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대해서는 “새삼스러운 게 전혀 없다”며 “그들 역시 대화 재개를 바라고 있으며, 이를 위한 대내외적 명분이 필요함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한미 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상에 나올 것을 조건으로 8월에 실시할 예정인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여 결단해 줄 것을 제안한다”며 “저들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고 위협에 굴복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미연합훈련 연기 공동 성명문에는 민주당 의원 61명, 정의당 의원 6명, 열린민주당 3명, 기본소득당 1명,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의원 3명 등 총 74명이 서명했다. 고민정 의원을 비롯해 정태호·윤영찬·이용선·진성준·신정훈 의원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도 다수 참여했다.
하지만 송영길 대표는 원칙론을 내세우며 연기는 없다는 입장을 재차 분명히 했다. 이날 오후 취재진과 만난 송 대표는 “북측 김 부부장 말을 이유로 연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북미 간 비핵화 협상과 같은 구체적인 상황이 있었다면 고려할 것이 많겠지만 통신선 연결 상태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출신 김병주 의원도 이날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연기나 취소를 주장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라며 “올림픽 예선전이 열리고 있는데 본선 경기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할 수 있느냐, 한미연합훈련도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연합훈련이 정치적 협상의 도구로 쓰이는 것을 우려하고 경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文은 뒷짐…野 “전쟁 일어나도 뒤에 숨을 거냐”
여권 내 혼선이 가중되고 있는 것은 정부 부처들의 엇박자와 청와대의 모호한 태도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 3일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서 한미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이미 훈련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국방부는 “한미는 각종 여건들을 고려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며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었다.
결단을 내려야 할 청와대도 머뭇거리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군 지휘관 보고 행사’에서 한미연합훈련 관련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애매모호한 지시를 내렸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NSC 상임위원회 결과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정착을 진전시키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며 명확한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니 민주당 대표는 훈련 진행을, 범여권 의원 수십 명은 훈련 연기를 주장하는 성명을 내놓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국가적으로 예민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이 뒤에 숨지 말고 국민 앞에서 당당하고 명백한 입장을 밝혔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