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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품격⑫] 감독의 ‘뼈 때리는’ 현실 표현, 여전히 유효해 아프다


입력 2021.08.16 11:01 수정 2021.08.18 06:48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류지윤 기자

영화 ‘버닝’

<편집자 주> 영화에 대해 사소한 잡담입니다. 배우, 연출, 배경에 대해 소소하게 혹은 장황하게 이야기를 펼쳐놓습니다. 오래된 영화일 때도 있고, 지금 막 극장에 걸린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두 개의 영화를, 아니면 한 명의 배우를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코너에는 기자들의 사적인 감정이 많이 포함됐습니다.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 분)는 배달을 갔다가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만난다. 돈을 모아 곧 아프리카 여행을 떠날 예정이던 해미는 종수에게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해미의 자취방에 와서 어딘가 숨어있다는 고양이를 돌봐주기로 한 종수는 해미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종수에게 공항으로 와 달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 아프리카에서 만난 벤(스티븐 연 분)을 종수에게 소개한다. 종수는 둘의 미묘한 분위기에 한발 물러선다. 벤의 친구 모임에 초대받기도 하고, 벤의 집에도 간 종수는 자신과 엄청난 경제력 차이가 나는 벤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던 중 해미와 함께 자신의 파주 집으로 온 벤의 이상한 취미를 듣게 된다. 그리고 곧 해미가 사라지고, 종수는 해미가 실종된 것과 벤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줄거리)


유명준 : ‘버닝’은 오랜만에 봤는데도 해석이 여전히 애매한 영화더군요.


홍종선 : 어떤 부분이요?


유명준 : 여전히 이게 종수의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건지, 현실인지요. 처음 봤을 때도 극 후반은 종수의 상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볼 때는 아예 전체적으로 해미가 아프리카에서 온 직후부터 상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류지윤 : 존재라는게 명확하게 그려지지가 않아서 저도 여전히 어려웠어요.


홍종선 : 아. 어느 쪽이어도 될 것 같은데. 종수가 겪은 현실을 소설로 쓴 내용일 수도 있고 상상일 수도 있죠. 중요한 건 영화 속 현실이든 상상이든 종수의 소설 속 세상이든, 현재 젊은이들의 불안과 분노를 잘 나타냈다고 생각하는데.


유명준 : 그래서 어느 쪽에 무게를 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듯 하더라고요.


홍종선 : 맞아요, 해석이 달라지지. 그게 또 묘미고.


유명준 : 이창동 감독이 젊은이들의 불안과 분노를 집어넣었으니, 그 어느 쪽으로 흐름을 잡든, 상상이든, 주 내용은 그것이지요.


홍종선 : ‘버닝’은 새로운 관람 태도를 요구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종수의 마음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불안감을 하나씩 턱턱 맞닥뜨리고 그게 쌓여서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되어 있고. 그것은 흔들리는 해미에 대한 불안, 벤에 대한 분노로 보이지만 아직 사회에 내 자리를 잡지 못한 종수라는 젊은이의 존재에 대한 불안이자 사회 계층 차에 대한 분노이고요. 유아인의 그 대사가 기막혔어요. 내 트럭에 실린 해미 캐리어를 내려주면서 ‘그래 난 갈 길이 머니까’. 지역이 파주여서 먼 것도 있지만 사회적 지위라는 면에서도 갈 길이 멀죠, 벤에 비하면. 아, 그때 해미를 종수가 데려다 주었더라면 달라졌을까?


유명준 : 이 작품이 2018년 작품인데, 오히려 현재 부동산이나 코인 등에 치이고 있는 세대랑 연결시키면 지금이 더 와 닿는 상황이죠.


홍종선 : 맞아, 현재 젊은이와 와 닿더라고요. 그 박탈감, 무엇으로도 위로 상승이 안 되고 차단돼 있는 것 같은 느낌.


류지윤 : 계층 차이도 명확한데 저는 존재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계를 따라가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유명준 : 존재와 존재하지 않는 것?


류지윤 : 고양이나, 우물이나, 비닐하우스나..계속 떡밥은 있는데. 이게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벤이 데리고 있는 고양이가 보일이가 맞는 건지, 아닌 건지.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믿고 싶은 건지, 정말 죽인 게 맞는 건지.


홍종선 : 저는 그 질문, 이창동 감독의 질문을 이렇게 받아들였어요. 진짜 있느냐 없느냐는 네가 그 말을 하는 상대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다. 고양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해미를 믿지 못하는 것,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이제 해미를 믿게 된 것. 실제로 벤네 주차장에서 찾은 그 고양이가 보일이냐 아니냐보다 믿음의 문제가 더 중요한 거다, 라고요. 우물도 마찬가지. 그래서 종수 엄마 입을 통해 우물은 없었다던 해미 언니의 말을 부인하며 두 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놓은 거죠.


유명준 : 고양이와 우물이 이렇게 머리를 쓰게 하다니. ^^


류지윤 : 확실히 종수가 믿음을 따라 확인하는 과정이긴 한데, 그 경계가 희미해서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듯요. ^^


홍종선 : 맞아요. 해미를 진짜 죽였느냐도 종수의 분노에 완전히 공감하게 되면, 죽인 걸로 믿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유명준 : 그런 거 보면, 이창동 감독이 떡밥을 많이 던진 것 같은데, 아직 다 찾지 못한 느낌이에요.


류지윤 : 맞아요. 또 보면 더 나올 것 같아요. ^^


유명준 : 사실 영화 편하게 보려면 ‘벤이 해미를 죽였다’라고 설정을 하면 되는데, 이러면 영화가 밋밋해져요.


홍종선 : 일부러 희미하게 한 것 같아요. 우리가 믿는 것들, 현실, 상대의 생각과 의견… 어느 것에도 이창동 감독은 무게를 부여하지 않고 진실과 거짓, 현실과 상상 중 어느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 자체가 바로 영화가 불안을 만들어가는 방식이고, 새로운 관람 태도를 만들어낸 이창동의 새로움이라고 생각해요.


류지윤 : 네, 저도 결말이 명확한 것보다 이렇게 생각할 지점들이 많은 영화들이 나중에 두고두고 보고 싶더라고요. 이렇게 대화 나눌 여지도 많고.


홍종선 : 칸에서 제가 이창동 감독에게 이렇게 해석했는데 맞느냐 라고 물으니 그조차 맞다 안 맞다 답은 안 주시고, "바로 그걸 기사로 써 주세요!"라고 힘주어 답하심 ^^.


유명준 : 다양한 기사가 나오게 하려는 스킬이군요. ^^


홍종선 : 각자 느끼는 대로 느끼게 하고 싶은 것 같아요. 각자의 불안과 분노 정도에 따라, 공감 정도에 따라 다르게. 칸에서 처음 봤을 때 뭐 이런 희한한 영화가 있나 싶었고, ‘이창동 감독이 나보다 청년이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요.


유명준 : 어쩌면 이창동 감독도 영화에서 의도하지 않는 내용들이 튀어나와서 더 다양하게 해석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싶어요. 유아인이나 전종서, 스티븐 연 모두가 연기가 감독 지휘 하에 정확하게 이뤄진 건 아니니까요.


홍종선 : 맞아. 이창동 감독의 디렉팅은 이것뿐. 연기하지 마라, 뭐 더 하지 마라, 걷어 내라. 그래서 힘 뺀 연기가 됐고. 힘을 빼니 연기는 사라졌는데 캐릭터는 더 단단해진 거죠. 유아인만 보더라도 ‘버닝’ 후 연기한 ‘소리도 없이’에도 이러한 태도가 이어진 것 같고요.


류지윤 : 전종서가 당시 굉장히 신선했어요. ^^ 이미지가 인터뷰 때도 그렇더라고요, 자유분방하고.


유명준 : 진종서는 정말 툭 튀어나온 느낌이었고. 전종서는 다른 장면보다 술 마시며 아프리카 이야기하는 장면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좋았어요. 스티븐 연도 가질 거 다 가졌으면서 인생에 대해, 세상에 대해 지루해 하는 모습이 일상 같았고.


홍종선 : 고백하면 당시엔 전종서 배우를 온전히 리스펙 하지는 않았어요. 너무 잘하는데, 이게 인간 전종서 자체인지 해미 연기를 한 것인지 헷갈렸거든요. 정말 너무 잘해서. 그런데 뒤에 영화 ‘콜’을 보고 반성했죠. ‘와, 해미가 기막힌 연기였구나!’. 이번에 다시 봤을 때, 그래서 가장 달라 보인 게 전종서였어요. 그때는 ‘와, 이런 신선한 배우가 어디서 튀어나왔지?’ 놀라움이 컸는데 이번에 보니 '와, 진짜 연기 잘하네!'. 아, 그리고 귀국하자마자 곱창전골 집에서 아프리카 얘기하는 장면, 이창동 감독이 쉽사리 오케이를 주지 않았대요. 전종서가 "정말 힘들었던 장면인데 모두들 호평해 주셔서 기분 좋다"고 칸에서 말했었어요.


유명준 : 왜 오케이를?


홍종선 : 정말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연기 경력이 많지 않다 보니 자꾸 힘을 준 거겠죠. 그래서 여러 번 그 장면을 연기했대요. 종서 씨가 주변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만큼. 그러나 결국 해낸 거지!


유명준 : 아. ^^ 진짜 술을 많이 마셨어야 했던 장면이었네요.


홍종선 : 눈치 빠르긴. 그래서 결국 술을 조금 마시고 연기했다고 하네요.


유명준 : 처음 ‘버닝’ 볼 때는 그냥 넘어갔다가 이번에 보인 것이 스티븐 연은 사귀는 여자들이 뭔가 어디를 설명하기 좋아하는 공통점이. 두 번째 등장하는 여자도 뭔가 계속 이야기하고, 친구들은 그냥 지켜보면서 적당히 장단 맞춰주고. 오히려 스티븐 연은 졸려하고.


류지윤 : 약간 나사 빠져 보이고 외로워하는 여자들만 공략. 그런데 자신은 뒤에서 하품만 하는.


홍종선 : 벤의 친구들 모여 있을 때, ‘리틀 헝거’ ‘그레이트 헝거’ 춤추며 얘기할 때는 보는 내가 다 너무 불쾌했어요. 광대로 만들어 놓고 구경하는 느낌. 이미 여러 여자애들 봐 왔을 거면서, 또 구경하는 느낌. 영화 ‘아가씨’에서 김민희의 음서 낭독을 구경하는 귀족들처럼. 소름인 것은 벤이 하품을 해, ‘앗! 죽일 때가 됐네’, ‘흥미를 잃었네’. 그러자 불쾌가 분노로 급상승! 마치 자기네들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너무 사회 밑바닥 삶이거나 위험해서 부시맨 만나러 갈 일은 없기에 이 여성들을 ‘요지경’ 삼아 세상 구경하는 느낌? 아, 정말 재수없어. ^^ 저는 이런 마음으로 영화를 봤기에. 이 조용한 영화를 마음 속 롤러코스터를 타며 봤어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내 마음도 버닝!!!


유명준 : 마치 그 친구들은 ‘벤이 이번엔 어떤 광대짓 (혹은 이야기꾼) 할 만한 애를 데리고 왔을까?’라는?


홍종선 : 그렇지. 호객 행위 해오는 사람. 구두 찍어 오라는 사람인 거지, 벤은.


류지윤 : 불쌍한 해미. 연기처럼 그렇게 사라지고.


홍종선 : 나는 벤보다 그 친구들은 더 부자고 더 사회적 지위가 높을 거라고 생각해요. 벤이 뭐하냐고 종수가 물으니 그랬잖아. 여러 가지 한다, 논다, 노는 게 일하는 거다, 요즘엔 그게 구분이 안 되지 않느냐. 포르쉐에 내가 좋아하는 여자 태워 보내고, 벤 집에 놀러와 보니 나보다 예닐곱 살 많다는데 너무 잘살아서 해미한테 지질해 보일까봐 '정신차리라'고 말 못하니, 물은 거지. 저 사람이 너를 왜 만나는지 생각해 봤어? 해미가 답하죠. ‘나 같은 애가 좋대, 흥미롭대’ 정말 기분 나쁜 대사. ‘흥미!’ 특히 이 대사, ‘나 같은’ 이 부분도.


유명준 : 그런데 그게 묘하게 전종서라서 더 그런 느낌이 들어요.


홍종선 : 조금 더 설명해 주면?


유명준 : 예를 들어 전지현이나 송혜교, 김태희가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해보면? 안 어울리죠. 그 ‘기분 나쁨’을 받아낼 수 있는 느낌? 다른 배우였다면 그것을 튕겨 내거나 할 거 같은데, 전종서는 흡수해서 관객들이 더 뭔가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류지윤 : 해미 스스로 좀 쓸모없고 소외됐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벤의 그 말 너무 믿고 싶었을 것 같아요.


홍종선 : 아!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너무 씁쓸하네요. 없이 살 뿐 자유로운 영혼인 건데 그 마음의 여유가 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불쾌를 받아내는 여자가 되네.


류지윤 : 시골 들판에 버려진 비닐하우스 같은 배우를 찾기는 쉽지 않죠.


홍종선 : 생각해 보니, 그 면세점 직원도 뭘 그리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왜 그리 계속 웃어. 왜 아직도 부자 손님들 상대하는 면세점 직원처럼 구냐고. 저는 영화 ‘돈의 맛’보다 ‘버닝’이 빈부격차에서 오는 사회 문제를 더 적나라하게 그렸다고 생각해요. 차 하나, 집 하나 별 거 나오지 않는데, 나도 해미 좋아하는데, 확 달려들 수 없는 종수의 주눅. 여행 전에는 분명 내 여친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싶은 박탈감과 상실감. 감정과 감성으로 풀어내니까 이 빈부격차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고 할까나.


유명준 : 맞아요. 뭔가 아주 극명하게 대놓고는 아닌데, 행동 하나 상황 하나가 빈부격차를 적나라하게 그리죠. 그리고 사실 현실에서도 종종 보여서 더 와 닿는 일일 수도 있어요. 특히 2018년도도 그렇지만, 2020년 2021년도는 더 심해져서. 지금 보는 ‘버닝’은 또다른 느낌이죠.


류지윤 : 해미방 빛 잘 안 들어오는 것도 그래요. 남산타워는 보이는데….


홍종선 : 해미가 벤에게 말했다며 벤이 종수에게 전하잖아요. 종수는 내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해미는 사실 엄마랑 언니조차 그를 믿지 않아. 그저 허황되게 카드나 한도초과로 긁은 인간이지. 그 경멸이 되게 중요한데, 없는 것들은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뭘 더 누리려 하지 말라는 그 경고를 부자가 주는 게 아니라 똑같이 가난한 사람, 그것도 친언니 입으로 하게 하잖아요. 이봉련 배우가 진짜 차지게 경멸해 줬고요. 여담이지만 이봉련 배우 요새 점점 여기저기 많이 보여 좋아요. 이런 친언니의 경멸, 우물을 믿지 않는 언니 말 속에서 '내가 가난하다'는 것의 수치심을 느끼게 한 것 같아요. 아, 진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싶게 살아먹기 더럽게 힘든 세상인 거죠. 그러나 그 세상을 버텨내가는 방법과 선택이 해미와 종수가 다른 거고.


유명준 : 갑자기, 현재의 20대가 보면 안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


홍종선 : 맞아. 20대가 보면 분노가 치밀 것 같아. 이 나이의 나도 그런데. 아, 아닌가. 나는 역전의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서 벤류에게 더 화가 나는 건가. ^^


류지윤 : 20대가 보면 '뼈 맞고' 곱창에 소주 먹으러 가야하는데, 가지도 못하고.


홍종선 : 가지도 못하고. 음… 슬프다.


유명준 : 배달 어플을 이용해 ^^. 아무튼 유아인이 ‘소리도 없이’에서는 그래도 뭔가 상황이 안 좋은 성장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여기서는 대학까지 나와서 글을 쓰겠다는 목표가 있는데, 현실은 영 아니죠. 정확하게 젊은 세대들 속 긁어대는(이창동 감독).


홍종선 : 이창동 감독이 현 시대 젊은이의 고뇌와 분노의 지점이 어디인지는 기막히게 아는 것 같아요.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버닝’. 그러고 보니 ‘소리도 없이’보다 더 뼈 때리네. 스티븐 연 연기는 어땠어요?


류지윤 : 진짜 교포라 그런가, 그 특유의 느끼하고 섹시한 이미자가 너무 잘 맞았어요. 발음도 그렇고.


유명준 : 잘 어울렸고, 잘했다고 봐요. 돈이 있다고 거만한 것도 아니고 친절한 느낌인데, 그렇다고 상대에 대해 진실어린 배려를 하는 것도 아닌 연기.



홍종선 : 그 교포 발음이 종수에 대한 조용하고 차가운 무시를 부추기는 뭔가가 있죠. 사실 벤이 쉬운 캐릭터가 아닌데. 친절하지만 형식적 친절, 이용 가치 떨어지면 곧 죽일 수도 있는 친절, 그러나 섣불리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 부치지 못하겠는데 뭔가 냄새가 도는 사람. 저는 ‘미나리’ 연기보다 ‘버닝’ 연기가 좋아요. 그런데 스티븐 연은 벤을 교포 아니고 그냥 한국사람으로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말했어요. 벤을 어떤 자신의 지향을 담은 가명 같은 것을 쓰는 인물, 백작이지만 백작이 아닌 ‘아가씨’의 백작 하정우처럼.


유명준 : 저도 ‘미나리’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벤은 언제 죽어도 그냥 받아들일 것 같았어요. 삶에 대한 지루함을 너무 자주 표출해서요.


홍종선 : 맞아, 받아들일 것 같았어. 그리고 그 마무리를 종수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고. 내 얘기를 써 달라, 끝낸 뒤 써 달라.


류지윤 : 그런데 너무 교포 그 자체던데요. ^^


유명준 : 교포 느낌이라. 만약 벤을 남궁민이나 정경호 같은 배우가 했다면?


홍종선 : 오. 정경호 추천! 남궁민이 더 느끼하게 잘할 것 같고, 정경호는 벤의 페이소스를 더 잘 묻혀낼 것 같고.


류지윤 : 전종서 유아인은 솔직히 대체 배우 생각 안나는데 떠올리자마자 대체 됐어요. 남궁민이 하면 조금 더 무게감 있고, 벤의 그 능글맞음이랑 속을 알 수 없어 무서운 그런 느낌이 더 와 닿는. 그러나 스티븐 연 연기는 최고였습니다. ^^


유명준 : 하품하는 모습에서는 남궁민이, 요리하면서 이상한 소리 하는 장면에서는 정경호가. ^^


홍종선 : 남궁민이 하면 너무 연쇄살인마인 게 그저 삶이 무료해서 살인하는, 자갈 주워왔을 때 한 벤의 말대로 ‘재미있으면 뭐든 하는’ 인물이 됐을 것 같아요. 그게 확 드러날 듯 해요. 스티븐 연이 했을 때보다 사이코패스지 완전. 아니, 무료해서 재미있으려고 두 달에 한 번씩 사람도 비닐하우스도 태우나. 그래서 난 스티븐 연의 벤에 한 표 ^^.


유명준 : 연쇄살인마^^. 그런데 실제 영화에서는 살인한 사람은 유아인 밖에 없는데.


류지윤 : 맞아요, 나머지는 다 추측 ^^.


홍종선 : 김영철은 이병헌의 젊음에 모욕감을 느끼고, 유아인은 스티븐 연의 부와 거만에 모욕을 느끼고. 실제로 스티븐 연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는데 종수가 그렇게 오해하게 해서 무료한 삶을 마무리했을 수도. 어쩌면 그 무서운 짓은 더 무서운 친구들이 했을 수도. ^^ 모든 게 추정과 상상.


유명준 : 만약 마지막 장면에서 유아인이 어디 누워서 눈을 뜨는 것으로 끝났다면? 영화 ‘인셉션’과 맞먹지 않을까라는. 지금까지 이야기가 진짜인가 아닌가, 벤과 해미는 존재했는가 아닌가.


홍종선 : 맞아, ‘인셉션’과 맞먹는다 진짜. 영화를 볼 때 얼마나 감정이 요동을 쳤던지, 누가 누구를 죽일 이유는 절대 없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유아인의 마지막 행동에서 어떤 ‘동의’를 느끼는 나를 보며 깜짝 놀랐다니까요. 절대 사적 복수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저인데.


유명준 : 선배처럼 후련함을 느낀 사람들도 적잖았을 것이라 생각해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느껴지는 불쾌감을 해소할 방법이 영화 속에서 그것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요.


홍종선 : 우리 창동 형님의 결단력이라니!


<영화 ‘버닝’은.>


홍종선 : 이창동 감독의 신작을 기다립니다. 지금 우리가 다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뭔지, 100년 뒤 시점에서 바라보고 진단해 낸 것처럼 이 시대의 화두를 가장 시적으로, 문학적으로, 영화적으로 풀어내 주는 영화를 다시 한 번 기다립니다.


류지윤 : 이창동 감독 -유아인, ‘역시는 역시’란 말이 절로 나오는 148분. 구겨진 청춘들을 태워버린 차가운 불같은 영화.


유명준 :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면서 보면 ‘안주’가 따로 필요 없다고 느껴질 수도. 그런데 진짜 상상일 것 같은 스토리.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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