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6년, 여전히 뮤지컬이 좋아"
'마리앙투아네트' 10월 3일까지 샤롯데씨어터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지난달 13일부터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는 화려함의 극치다. 풍성한 주름 장식의 드레스와 화려한 보석들, 높게 치솟은 가발은 화려함을 극대화한다. 반면 어둡고 가난한 빈민촌의 혁명군들은 너덜너덜한 누더기를 걸쳐 입고 주먹을 높게 들어올린다.
뮤지컬 배우 도례미는 혁명군과 귀족을 오가는 연기로 무대에서 바삐 움직인다. 그는 2006년 ‘그리스’로 데뷔해 올해 16년째 무대에 오르고 베테랑 배우다. 흔히 슬럼프라 말하는 힘든 시기를 겪어왔지만, “여전히 뮤지컬이 좋다”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이유가 그를 16년만 무대에서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코로나 시기, 공연을 힘들게 올린만큼 현재 공연하는 하루하루가 더 각별하고 소중할 것 같아요. 더구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지난 시즌(2019)에 이어 두 번째죠.
공연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기에 출연을 망설일 필요가 없었고, ‘마리 앙투아네트’ 작품의 경우 더욱 그럴 이유가 없었어요. 지난 시즌에 저희가 앙상블상을 탔었는데 그만큼 팀워크가 좋았고 컴퍼니뿐만 아니라 다시금 참여하는 스태프 배우들이 많아서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이번 시즌에선 어떤 역할들을 맡고 계신지, 캐릭터들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작품에서 케이크 드레스 모델을 맡고 있습니다. 각각의 장면에서는 귀족 또는 시민, 극빈자, 혁명군 등으로도 나오고요. 극중 모든 캐릭터들이 정의와 자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어요. 한 캐릭터 한 캐릭터 다른 성격들로 그것들을 표현하기 때문에 모든 배역들이 저에겐 소중합니다.
제가 맡은 역할 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애정합니다. 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을 다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웃음). 대본에는 없지만 저희끼리 주고받는 에너지가 엄청나거든요. 각각 다른 위치와 역할, 귀족으로서 또 시민으로서 모두 느껴보고 싶습니다.
-두 시즌에 연달아 참여하면서 극을 이해하는 깊이가 더 깊어졌을 것 같은데요. 처음 참여했을 때와 지금,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까요?
처음엔 시민으로서 혁명군에 가기까지 너무 마음이 바빴어요. 그런데 조금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한 인물의 시간이 연결된다기보다 각각의 장면에서 각각의 인물로 들어가다 보니 캐릭터들이 더 다양해지고 깊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지난 시즌보다 매 장면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정의와 자유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고, 더 질문을 던지면서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도례미 배우가 생각하는 앙상블은 극에서 어떤 역할들을 할까요?
흔히 앙상블을 ‘꽃’에 비유하지만, 동시에 ‘뿌리’이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지지대 역할을 하죠. 흔들려서도 안 되고 늘 무대를 지켜야 합니다.
-앙상블은 원캐스트이기 때문에 체력적인 고충을 많이들 토로하시던데요.
맞아요. 사실 체력적인 부분이 제일 힘들어요. 매 공연 처음 오시는 관객분들을 위해 좋은 컨디션이고 싶은데 체력이 안 받쳐줄 때는 너무 속상하죠. 그래도 무대에 올라 같이 공연하는 배우·스태프분들의 눈을 보고 힘을 내다보면 어느새 커튼콜이더라고요. 그땐 음악감독님도 크게 호흡하며 웃으시고, 저희도 편한 표정으로 웃어요. 관객분들께서 큰 박수로 화답해 주실 때 제일 감사하고 보람되더라고요.
-매번 작품에 들어갈 때, 혹은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루틴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공연 시작 직전(조명이 켜지기의 전) 약간의 긴장감과 고요함 속에서 먼저 하늘에 가신 아빠와 오빠에게 “오늘도 공연 보러 왔지?”하고 마음속으로 기도해요. 그럼 늘 든든하고, 무대에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잘 서 있게 되더라고요.
-아직 공연을 보지 않은 잠재적 관객들에게 작품의 매력을 어필해보자면요?
저희 작품 다양한 볼거리도 많지만 강력한 드라마가 있습니다. 오셔서 눈도 즐거우시고 마음으로 크게 울렁임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지금이 아니면 느끼실 수 없습니다. 하하.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해 그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해오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캐릭터가 있나요?
이 질문을 통해서 제가 했던 작품들에 대해서 뒤돌아 보게 됐어요. 대답은 모든 작품의 모든 캐릭터들입니다(웃음). 집에 그간 해왔던 많은 대본들과 악보들, 연습 녹음 파일들, 그리고 제 갤러리에는 작품별 사진들이 있어요. 또 제가 ‘마리 앙투아네트’ ‘브로드웨이 42번가’ ‘모래시계’로 앙상블상만 세 번을 받았더라고요. 그러니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고, 모든 작품 다 다시 해보고 싶어요.
-도전하고 싶은 작품, 캐릭터가 있다면요?
정말 다양한 작품, 다양한 캐릭터들을 해왔지만 이제는 롤이 조금 긴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어요. 조금 더 고민하고, 더 깊게 들어가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2006년 ‘그리스’로 데뷔하셨더라고요. 벌써 16년차에요.
제가 발목이 약해서 한 몇 년간은 매년 찢어지고 부러지고 했었어요. 때문에 공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다쳤을 때인 것 같아요. 그땐 진짜 왜 이러나 싶더라고요. 다른 배우들에게 피해 주는 것도 죄송하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한 발 한 발 비장하게 걷고 있어요.
뮤지컬이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어느덧 현실이 되어서 어떤 때는 슬럼프도 오고 현실적으로 막막할 때도 있었지만 저는 여전히 뮤지컬이 좋고, 이 마음이 또 감사하네요. 그나저나 새삼 놀랍네요. 제가 16년차라니…하하.
-이미 많은 것들을 이뤄오셨겠지만, 앞으로 뮤지컬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또 다른 목표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모든 배우가 그렇겠지만 무대에서 단 한순간도 멈춰있지 않으려 해요. 늘 당당하고 떳떳하고 또 아름답게 서 있으려고 합니다. 뮤지컬배우는 필모그래피가 영상으로 남지 않아서 지금이 아니면 보실 수 없어요. 그게 늘 안타깝지만 그렇기에 매 공연이 소중합니다. 많이들 극장 찾아주셔서 모두의 지금을 즐겨주세요. 제가 뮤지컬을 하면서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앞으로도 우리 앙상블 배우들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