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 세수 예측, 하루 만에 번복
종부세 “국민 98% 무관하니 괜찮아”
국민 정서와 배치되는 발언 쏟아내
최근 정부의 초과 세수 예측 실패에 이어 종합부동산세 관련 고위 공무원의 국민 편 가르는 듯한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중요 정책 과정에 실수와 논란이 잇따르면서 임기 말 정부 기강이 해이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올해 초과 세수 전망이 실제 수치와 크게 엇나가면서 곤욕을 치렀다.
지난 8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초과 세수 규모에 대해 “10조원을 조금 넘을 것 같다”고 발언했다.
지난 16일에는 기재부 관계자가 언론 브리핑에서 “결산 과정을 통해 내년 2월쯤 확인할 수 있겠지만, 부총리가 여러 차례 말했듯이 10조원대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기재부 발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예측과 크게 달랐다.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전 당에서 확인한 초과 세수가 정부가 밝힌 액수보다 많다고 했다.
윤 원내대표는 “올해 세수 초과액이 당초 7월에 정부가 예상했던 31조원보다 19조원 더 많은 50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까지 국가재정을 운영해 오면서 이렇게 통계가 어긋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 원내대표 발언 몇 시간 뒤 기재부는 돌연 초과 세수 전망치를 19조원으로 정정했다. 기재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홍 총리가 밝힌 금액의 두 배 가까운 19조원의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홍 부총리 발언이 거짓말이 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선거 후보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방역지원금) 지급을 공약으로 내세우던 터라 초과 세수에 민감한 상황이었다. 특히 초과 세수를 재난지원금 예산으로 쓸 수 없다는 기재부와 한창 신경전을 펼치던 때다.
여당은 홍 부총리가 의도적으로 거짓말했다고 몰아붙였다. 윤 원내대표는 “기재부는 지금까지 세수 추계를 철저히 해왔다고 주장하지만, 올해 결과를 놓고 보면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과소 추계의) 의도가 있었다면, 이를테면 국정조사라도 해야 할 그런 사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홍 부총리는 사과했다. 그는 이튿날 물가 관련 관계부처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초과 세수 50조원) 전망치를 지난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어제 여당에도 설명했다”며 “세수 예측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큰 규모의 초과 세수가 발생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의도적인 세수 과소 추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홍 부총리가 결과적으로 초과 세수에 대해 잘못 설명한 것에 대해 기재부 안팎에서는 단순 개인 실수이거나 최신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어떤 이유든 간에 홍 부총리가 잘못된 수치로 혼란을 야기한 것만은 분명하다.
“종부세, 국민 98% 관계없다”…‘불난 집 부채질’
지난 19일에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관련해 국민을 편 가르는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낳았다. 이번에는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이 주인공이다.
이 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주재하며 “금년도 종부세와 관련해 많은 국민에게 큰 폭의 종부세가 부과된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다”며 “과장된 우려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전체 국민 중 약 98%에는 고지서가 발송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차관 발언 직후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는 정부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했고 이 때문에 상당수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됐는데 고위 관료가 ‘2% 국민만 해당하므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국민을 편 가르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기재부의 ‘국민 98%’ 발언은 지난 22일 ‘2021년 주택분 종부세 고지’ 내용 발표 이후에도 계속됐다.
홍 부총리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021년 주택분 종부세 고지 인원은 94만7000명, 고지 세액은 5조7000억원으로 전 국민의 98%는 고지서를 받지 않는다”며 “이번 종부세 부담의 대부분은 다주택자와 법인이 부담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정부 관계자들 발언에 한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 관계자는 “올해 종부세 대상이 거의 95만 명인데, 이들이 3식구의 가장이라고만 가정해도 300만 명이 사실상 종부세 영향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국민 300만 명이 피해를 호소하는 데 ‘98%는 상관없으니 괜찮다’고 하는 것은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가 맞나”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부동산 관계자도 “전체 인구수로 계산하면 종부세 대상이 2%에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가구 수로 하면 이보다 몇 배는 많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부자는 다쳐도 괜찮다는 식의 발언은 결국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정부가 스스로 갈라놓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공무원들이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자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걱정이 되는 장면”이라며 “초과 세수까지는 단순 실수로 인정하더라도 종부세 논란은 결국 국민이 우려하는 부분과 고위 관료들이 생각하는 것들이 다르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국자들이 국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렇게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임기 말 기강 해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