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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인권친화 수사기관'이라더니…이번엔 '언론사찰' 논란


입력 2021.12.15 04:44 수정 2021.12.15 18:10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기자 통신자료 조회…"피의자 통화내역 살핀 것" 해명에도 의구심 여전

윤석열 "민주주의 국가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을 수 없어…용납 못할 짓"

"품격 있고 절제된 수사 원칙" 내세웠지만…수사절차 위반 논란 '줄줄이'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전경 ⓒ뉴시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언론사 법조 기자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언론 사찰'을 벌인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인권친화적 수사기관'을 표방해온 공수처가 거듭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키면서 국민적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올해 8월부터 문화일보 사회부 법조팀 취재기자 3명을 상대로 통신자료를 총 8차례에 걸쳐 조회했다. 또 TV조선 기자들의 통신자료도 지난 6월 이후 15차례에 걸쳐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법상 기자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닌데다 수사기관들은 범죄 혐의에 관련된 경우에만 통신자료를 조회한다. 특히 해당 언론사들이 공수처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낸 시점과 통신 기록을 조회한 시점이 맞물린 것으로 파악되면서 기자들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언론 사찰'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힘을 얻고 있다.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공수처는 13일 입장문을 내놓고 "현재 공수처 수사 대상인 주요 피의자 중에는 기자들과 통화가 많거나 많을 수밖에 없는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며 "공수처는 이들 피의자의 통화내역을 살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같은 기자의 번호를 반복해서 조회했는지, 사건 및 문제의 통화내역 조회 피의자는 누구인지 등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말할 수 없다"며 일축했다. 이런 가운데 통신자료를 요청한 기관은 '공수처 수사3부'로 적혀있지만, 3부 부장검사는 "통신자료 요청 자체를 몰랐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져 기록 조회 경위를 두고 의문은 더 커지고 있다.


공수처의 석연치 않은 해명에 야권은 일제히 '명백한 언론사찰'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수처가) 무슨 목적으로 그랬는지 물을 필요도 없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내세워도 용납할 수 없는 짓"이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 행동연대 이종배 대표는 김진욱 공수처장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비판적인 언론사에 '뭐라도 걸리기만 하면 박살 내겠다'는 식의 폭력적 수사를 한 것"이라며 "공수처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언제든 위법한 별건 수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인권친화적 수사'를 강조해온 공수처가 인권침해 논란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받은 손준성 검사는 조사 당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이 침해됐고 수사팀의 모욕적·억압적인 조사, 주임검사 면담 거부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공수처는 또 지난 10월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추가 조사도 없이 3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해 피의자 방어권 침해 논란을 빚었다. 반인권적 수사를 근절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기관이 피의자를 압박하려 영장 청구권을 남용했다는 질타가 잇따른 대목이다.


또 압수수색을 실시할 때마다 '보복수사' 및 '표적수사' 의혹이 잇따랐고 지난달에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실시한 압수수색이 법원에 의해 무효 처리되며 망신살을 사기도 했다. 법원은 공수처가 영장 제시, 일시 통지, 피의자 참여권 등을 보장하지 않은 절차위반을 저질렀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들 논란은 여권과 김진욱 공수처장이 내세워 온 기조와 정면 배치된다. 당초 문재인 정권은 검찰 등 수사기관의 횡포 및 인권침해 행위를 근절하고 비대한 권력을 견제한다는 취지로 각계의 부작용 우려를 무릅쓰고 공수처 설립을 강행한 바 있다.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한 듯 김 처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품격 있고 절제된 수사를 공수처의 원칙으로 삼겠다"며 "실체적 진실 발견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달 취임식에서도 "인권 친화적인 국가기관이 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인권중시 기조를 거듭 강조해왔다.


이와 관련해 이종배 법세련 대표는 "공수처는 인권친화적 수사를 하겠다고 천명해 왔으나, 살제로는 가장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며 "공수처의 검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난도질 하려고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연이은 수사 실패로 궁지에 몰린 공수처가 인권침해 논란까지 빚으며 설립의 정통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일단 공수처만 설립되면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칠 것이라던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공수처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의롭지 못한 일들엔 침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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