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간 호주 국빈방문 마치고 15일 귀국
1조원대 규모 K-9 자주포 수출 계약도 성사
일각선 호주 '청구서' 내밀 수 있단 관측 나와
靑 "韓, 압박 받을 나라 아냐" 확대 해석 경계
문재인 대통령이 3박 4일간의 호주 국빈방문을 마치고 15일 귀국한다. 문 대통령은 오미크론 변이 유입과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이번 순방이 적절했느냐는 비판 속에서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 및 국방·방산·사이버 분야 협력 확대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미국과 호주 등 이른바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국가들의 '대중(對中) 압박'에 동참해야 한다는 부담은 커진 모양새다.
지난 12일 밤(이하 현지시간) 호주 수도 캔버라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이튿날인 13일 오전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문 대통령과 모리슨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양 정상은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이 양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위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관련 협약을 체결했다.
문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코로나와 기후 위기, 공급망 불안 속에 국제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양국은 더욱 긴밀한 협력으로 새로운 도전과제에 함께 대응할 것"이라며 "양국이 함께 글로벌 선도국가로 도약하고, 공동번영의 미래를 향해 더욱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강화 행보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14일 오후 시드니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호주 핵심광물 공급망 간담회'에 참석해 양국 간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풍부한 핵심광물을 보유한 호주와 이차전지, 전기차 등 관련 산업에서 핵심광물 수요가 많은 한국 간에 협력을 확대해 글로벌 공급망 안정과 탄소중립을 앞당기는 한편 양국 경제 회복과 성장에도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글로벌 탄소중립 추진에 따라 향후 핵심광물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호주와의 협력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2040년까지 전기차 관련 소재의 경우 리튬은 42배, 흑연 25배, 코발트 21배, 니켈 19배, 희토류 7배 이상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더욱이 핵심광물은 국가별 매장량 편차가 커서 언제든 공급망 위기가 현실화 될 위험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호주는 철광석·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전통적인 자원과 에너지 부국임과 동시에 세계적 핵심광물 보유국가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니켈·코발트는 전 세계 매장량 2위, 반도체 핵심소재인 희토류의 매장량은 세계 6위다. 청와대는 호주와의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MOU 체결을 통해 양국 정부 및 기업 간 협력 확대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토대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호주와 우리는 상호 윈윈하면서 공급망의 시대에 안정적으로 상호 대비할 필요를 함께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절실하게, 코로나 상황이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호주를 국빈 방문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호주에 약 1조원대 규모의 K-9 자주포 수출 계약도 성사시켰다. K-9 자주포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자 기밀정보 동맹) 국가에 수출되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세계 자주포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K-9의 우수성과 신뢰성을 다시 한번 입증한 계기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호주 방위산업 활성화는 물론 한국과 호주의 방산협력 확대도 기대된다.
문 대통령은 한·호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오늘 계약이 체결된 K-9 자주포 사업을 신호탄으로 한국과 호주의 전략적 방산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은호 방위사업청장도 현지 브리핑에서 "K-9 자주포 계약을 통해 양국의 K-9 자주포에 대한 상호운용성을 기반으로 무기체계 간 합동성을 증진하는 방안도 협력하기로 했다"며 "한국과 호주 간 방산 협력 기반이 우주 방산 분야까지 뻗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文, 中 언급 삼갔지만…호주, 오커스·쿼드 동참 우회적 압박
문 대통령의 호주 방문 주요 목적이 핵심광물 공급망의 안정적인 구축, 방산 협력 등이었지만 호주가 일종의 '청구서'를 내밀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호주는 대중 견제 협의체로 불리는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외교안보 협의체),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회의체)에 참여하고 있다. 호주는 일찌감치 미국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참여하겠다고도 선언했다.
모리슨 총리는 한·호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오커스를 지지해주는 것에 감사드린다"면서 "한국은 (호주와) 유사입장국"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중국의) 오판이 있다면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에 혜택을 줄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오커스·쿼드 동참을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양안(중국·대만) 관계 등과 관련해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를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삼갔다. 문 대통령은 "호주 국빈 방문은 중국에 대한 입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경제적인 측면에 있어서 중국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 비롯한 어느 나라로부터도 (보이콧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없다. 한국 정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일정 부분 선을 그었지만, 반중(反中) 동맹의 압박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당장 미국은 "한국 스스로 내릴 결정"이라면서도 중국 인권 문제를 명분으로 한 외교적 보이콧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잘리나 포터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은 13일 전화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외교적 보이콧 발언에 대해 "우리는 분명히 동맹과 파트너들에 우리의 결정을 알리고 협의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 수석은 "우리가 호주에서 압박을 받을 만한 나라가 아니다"라며 "국제 관계가 복잡한 것은 알겠지만 대통령의 국빈방문의 의미를 현재 거둘 경제적 성과를 넘어서 과하게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