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수수료 0.3%p 인하…"소상공인 위해"
업계 실적악화 불가피…구조조정 여부 촉각
반전은 없었다. 결국 금융당국은 카드 수수료를 인하를 강행했다. 무려 0.3%p나 떨어졌다. 지난 2018년 1.3%이던 수수료율을 0.8%로 0.5%p 내린 것보단 충격이 덜하지만, 카드사에겐 여전히 무시무시한 숫자다. 카드 수수료율이 0.1%p 떨어지면 국내 8개 카드사의 당기순이익은 3000억~4000억원가량 급감하기 때문이다. 이제 카드업계는 '구조조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일관되게 적격비용 제도를 수수료율 인하의 근거로 꼽았다. 적격비용은 카드 수수료율의 원가 개념으로 카드사가 사용한 비용을 종합해 계산한다. 올해 카드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가 찾아오자 인력을 줄이면서 일반관리비를 줄였고, 사업을 축소하면서 판매관리비를 줄였다.
이처럼 피눈물나는 카드업계의 비용절감 노력은 결국 수수료 인하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카드업계 입장에선 "이러려고 비용절감을 했나"하는 자조 섞인 불만이 터져나오는 대목이다. 금융위원회가 회계사, 카드사와 직접 적격비용을 계산한 결과 연간 4700억원 규모의 수수료 부담 경감 효과가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곧 카드사가 47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득은 누가 보게 될까? 자본시장에선 당연한 섭리다. 누군가 손해를 보면 다른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 이 경우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이 줄어 이득을 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금융위는 이번 수수료율 하락요인 중 하나로 '온라인 결제비중 증가에 따른 밴수수료비용 감소'를 꼽았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온라인 결제비중은(전자지급결제대행) 2019년 상반기 45조3795억원에서 올 상반기 79조7892억원으로 2년 만에 75.8%(34조5097억원) 폭증했다. 그리고 이 금액의 대부분은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 금융사가 독점하고 있다. 쉽게 말해 금융위가 혜택 대상으로 삼은 영세 가맹점 사업자 가운데 대부분은 간편결제 이용자인 셈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이번 카드 수수료율 인하 방안에서 빅테크에 대한 규제안은 쏙 뺐다. 이유는 간단하다. 핀테크 간편결제는 신용카드와 수수료 구성, 제공되는 서비스 유형 등 경쟁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페이'로 물건을 결제할 경우 현재 적용되는 수수료율은 1%가 넘는다. 판매, 배송, 고객관리 서비스 이용료를 포함하면 최대 2.2%의 수수료가 붙기도 한다. 카드 수수료율인 0.5%와 무려 1.7%p 차이다.
간편결제 사업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확산된 QR코드를 내세워 오프라인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더 이상 간편결제의 영역이 비대면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결국 당국이 주장하는 '어려움에 처한' 영세 사업자는 간편결제 수수료를 더 걱정하고 있다.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면 수수료율이 마이너스(-) 0.5%까지 떨어지는 카드 수수료율을 더 내려 봐야 더 이상 얻을 이득도 없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은 수수료율 인하라는 채찍과 함께 신(新)사업 규제 완화라는 당근도 함께 내밀었다. 하지만 이 당근이 진짜 카드업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금융당국이 풀어주겠다는 규제는 카드사의 '지급결제' 사업 겸영·부수업무 확대다. 신용평가업과 빅데이터 분석업무 영역도 넓혀주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는데만 수억원의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수수료율을 깎아 연간 4700억원의 손실이 현실화 될 상황인데, 과연 어떤 카드사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엄두를 낼 수 있을까. 오히려 카드사는 지금 어떻게 하면 내부적인 인원을 감축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금융 공공성이 강조돼 서민·중소기업 지원, 사회공헌 확대 요구가 높아져 수익성 하락이 예상된다" 가장 규모가 큰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이 지난 2019년 영국 본사에 전달한 국내 금융시장의 여건이다. 금융은 규제산업이다. 당국의 인허가가 없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사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이 공공산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금융도 엄연한 산업이고, 금융사는 이익을 창출해내는 기업이다. 금융당국은 더 이상 공공성이라는 기치 아래 금융사의 수익원을 앗아가는 표퓰리즘적인 정책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대신 모든 플레이어가 정말로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배경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당국은 길거리에 나온 카드 노동자의 절규를 새겨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