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첫 데뷔 앨범 '16' 발매
“만 16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고 당차게 세상을 향한 자신의 시선을 담아낸 가사와 독창적이고 유려한 멜로디 위에 잔잔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독특하고도 신선한 보컬이 한국의 ‘빌리 아일리시’를 연상시킨다.”
팝페라테너 임형주가 SNS에 남긴 글이다. 지난 9일 첫 데뷔 EP ‘16’을 발매한 배우 겸 싱어송라이터 김푸름에 대한 이야기다. 김푸름은 소년미가 느껴지는 중저음의 음색과 담담하게 그려가는 보컬, 10대 특유의 솔직한 가사로 채운 데뷔 앨범을 선보였다. 올해 17살이 된 그는 16살의 기억과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자신만의 ‘일기장’을 만들어냈다.
-가수로서 첫 앨범 ‘16’이 지난 9일 발매됐어요. 소감이 어떤가요?
이제 막 음원만 나와서인지 아직 가수가 됐다는 실감이 나진 않네요. 나중에 공연도 하고 싸인 같은 것도 요청받고 한다면 그때서야 조금 실감이 날 거 같아요.
-어떻게 가수 데뷔를 계획하게 됐나요?
작년부터 개인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제 유튜브에 커버 영상을 올리면서 노래를 조금씩 불렀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제 음악도 커버곡들처럼 직접 만들고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댓글에도 커버곡이 아닌 제 음악을 궁금하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생겼고요(웃음). 처음에는 재미로 만들어봤는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유튜브에서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기타연습을 더 자주 하고 싶어서 중학교 들어가면서 밴드 동아리에 기타 파트로 들어갔어요. 주말마다 합주도 하고 버스킹도 했는데, 그땐 제가 직접 노래를 해 볼 생각은 못했어요. 그러다 그 해 학교 축제 가요제에 나가게 되었는데요. 기타 치면서 노래했는데, 1등을 하는 바람에 그게 제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었죠. 저도 MR이나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반주에 노래하는 것보다, 직접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편이 제 그루브에 맞아서 더 몰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유튜브 채널명이 ‘김푸르스름’인데요, 별명인가요?
친구들이 제 이름을 가지고 놀리다가 만들어진 별명인데, 저를 잘 나타내는 것 같아 그 이름을 쓰게 되었어요. ‘푸르스름하다’는 단어가 특정된 색이 아니잖아요. 파란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경계선에 걸쳐 있는. 이것도 아닌 저것도 아닌 갈팡질팡. 지금 제 나이대가 그 색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도, 어렸을 때부터 해 온 연기와 음악을 병행하다 보니 딱 ‘이거다’ 하고 특정할 수 없는 게 제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제가 누구라고 특정 짓지 않는 거요.
-최근 발매한 데뷔 EP ‘16’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16살 순간을 기록한 일기장 같은 앨범이에요. 중학교 때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앨범인데, 지금 나이대의 기억들을 노래로 간직하고 싶었어요. 타이틀곡 ‘검은색 하얀색’은 열여섯의 제 시각에서 바라본 어른들의 모습을 담아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고, ‘비둘기와 고양이’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애정을 담은 노래에요. 저는 비둘기도 고양이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 가지 말라거나 유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꺼벙이 안경’은 어릴 적 이야기를 가사로 쓴 곡이고, ‘졸업식’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느낀 아쉬움과 친구들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노래입니다. 이렇게 총 4곡이 수록된 EP 앨범이에요.
-16살의 김푸름의 순간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푸르스름한 순간인 것 같아요. 아이라기엔 너무 커버렸고 어른이라기엔 한참 어린 그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순간이요.
-아무래도 겪어낸 순간을 담아낸 앨범이기 때문에 가사를 작업할 때 본인의 시선을 더 솔직하고, 진솔하게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펼쳐볼 오래된 일기장처럼 지금의 기억과 감정들을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그 시기에 맞는 고민과 이야기들이 주제가 될 테니까요. 지금은 내 친구들과 저의 이야기에 집중해보고 싶었어요.
-어린 나이에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만드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평소 생각을 글과 음악 등으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신가요?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해서 거기서 노래가 되는 작은 아이디어들을 얻고, 가사를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가사를 쓸 때 원하는 소재가 있으면 그걸 바탕으로 글을 쓰거나 짧은 단편소설들을 써요. 그리곤 그 안에서 문장들을 간추려서 가사를 쓰는 편이에요. ‘비둘기와 고양이’도 그렇게 이야기를 먼저 쓰고 그걸 바탕으로 가사를 썼어요.
-타이틀곡 ‘검은색 하얀색’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검은색 하얀색’은 제가 처음 만든 곡이에요. 제 기준에서 바라본 세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 나이대의 시점으로 본 어른들의 모습 중 한 부분을 담은 곡인데요. 왜 아이들은 흰 도화지라고 말하잖아요. 어릴 때 그 말을 자주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바꿔서 보면 어른들은 색이 많이 입혀져서 검은색이 된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검은색이 된 어른들을 보면서 ‘저게 맞는 건가?’ 갈팡질팡하면서 회색이 되었다가 다른 어른들처럼 검은색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노래 중간에 ‘검은색 하얀색’이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데, 그런 마음을 담은 부분이에요. 결국은 어른들에게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며 만든 곡입니다.
-어른들을 ‘검은색’이라고 표현한 것이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새하얀 도화지 같았던 우리는 처음엔 오색 빛 꿈을 가졌었지만 그 수많은 색들이 모두 섞이며 회색이 되었다가 결국 검은색이 되고, 점차 처음의 어릴 적 꿈을 잃고 어둡고 단편적인 모습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타이틀곡을 포함해 총 4곡을 담았는데요.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요?
애착이 가는 곡은 타이틀 곡이자, 제 첫 자작곡인 ‘검은색 하얀색’이에요. 첫 단추라 그런지 우여곡절이 많았거든요. 화성학을 배우면서 시작한 첫 작곡이었는데, 컴퓨터가 다운되거나 프로그램 오류로 작업을 몇 번 날려먹은 적도 있고요. 하하. 곡을 쓰는 것보다 의외로 기술적인 부분에서 난감한 경우가 많았어요. ‘Ctrl+S’의 소중함을 아주 그냥 뼈저리게 느꼈었죠.
그리고 ‘꺼벙이 안경’은 제 어릴적 경험을 담은 얘기를 가사로 쓴 것인데, 그런 만큼 애정이 많이 가고 아픈 손가락인 곡이에요. 초등학교 때 몇몇 친구들이 저를 싫어했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시력이 안 좋아서 항상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저를 싫어하는 게 안경 때문인가 싶어서 하루는 안경을 안 쓰고 학교에 갔었어요. 안경이 없으니까 앞이 안 보이잖아요. 친구들이 저를 비웃더라도 그게 안보이니까, 아무도 저를 신경 쓰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런데 칠판이 너무 안 보여서 다시 안경을 썼더니 그 모습을 보고 애들이 웃는 거예요. 그때 집에 와서 많이 울었어요. 왜 나를 싫어할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그때를 생각하면서 쓰게 된 곡이에요. 저처럼 그런 순간,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 저라도 조금이나마 공감을 해드리고 싶어서 앨범에도 담게 되었어요.
-앨범 작업 과정도 궁금해요.
‘검은색 하얀색’을 데모 수준으로 완성했을 때쯤, 뮤직비디오 작업을 시작했어요. 제 목소리가 좀 다크하고 중저음이라 곡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던 차인데, MV감독님께서 만들어주신 장면 중에 콘페티 꽃가루가 날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어두운 곳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직전인데, 뭔가 팡팡 터지면서 혼란스러운 장면이었죠. 이 이야기의 핵심! 여기에 포인트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 목소리, 까마귀, 인디언 소리 등 제가 어릴 적 자주 내던 잡소리들을 추가로 녹음해서 코러스로 넣었어요. 녹음하는 과정 중에 엔지니어님들이랑 깔깔대면서 즐겁게 녹음했던 게 생각나요.
-푸름 씨의 16살 순간들로, 대중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저처럼 어린 나이에 데뷔한 가수가 많이 없는 만큼, 제 또래의 이야기를 전하는 노래도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10대를 대변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또래 친구들이 겪는 이 시기의 혼란스러움과 상황을 노래하고 싶어요. 그건 지금의 저만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나중에 어른이 되면 또 그 시기를 지나는 이야기를 담은 노래들을 만들게 되겠죠.
-임형주 씨가 극찬을 했던데요. ‘한국의 빌리 아일리시’라고요.
과찬이십니다. 영광이죠! 빌리가 어린 나이에 데뷔했고, 중성적 이미지가 공통점이라서 그렇게들 많이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제 나름의 다른 매력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열심히 활동해서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아티스트 ‘김푸름’으로 보여지고 싶습니다.
-앨범 커버에 대한 설명도 해주세요. 꽃가루가 떨어지는 건 보통 축하의 의미인데, 표정은 그에 상반되는 묘한 느낌이 있어요.
지난달에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한 시기를 끝냈고 축하를 받았지만,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은 막연하고 두려운 느낌이 있어요. 저와 제 친구들은 축하를 받았지만, 더 많은 학원에 다니고, 공부를 해야 할 것이고,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거예요. 그런 ‘푸르스름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첫 앨범의 만족도는 얼마나 될까요?
어른이 돼서 돌아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저는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이므로 앞뒤 따지지 않고 100점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김푸름의 16살이, 17살의 김푸름에게 어떤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시나요?
처음엔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지금은 확신이 되었고, 앞으로는 교훈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배우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배우 김푸름과, 가수 김푸름이 작품을 대하는 자세나 마인드에 있어서 다른 점이 있다면요?
연기는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해서 제가 실제로 겪지 않은 일들을 연기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각각 다른 작품의 캐릭터마다 분석하는 재미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노래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작품을 분석하는 것처럼 곡을 분석하고 가사에 맞게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표현하는 가수보다는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의 작업을 함께 하다 보니, 배우로 비유하자면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의 역할이 추가된 셈이지요. 그래서 이번 앨범작업을 하면서 스스로의 성취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음악들을 들려줄지 기대가 되네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사실 아직 잘 모르는 게 더 많지만 제 앨범을 일기처럼 계속 내고 싶어요.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나 쓰고 싶었던 마음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즐거운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 노력할 테니 제 일기장 많이 읽어주세요!
-닮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딱 생각해본 롤모델은 아직 없어요. 누구나 사람은 장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아티스트의 장점들을 모아 하나의 팀를 꾸리는 것이 제 꿈이에요. 인디언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죠. 저와 성향이 맞는 크루들과 공동 작업을 꼭 해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하나의 앨범에 편곡이나 피처링, MV 작업들을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끈끈한 감정이 있을 거라 생각돼요. 단편영화들을 작업할 때 제가 감독님, 스탭분들과 느꼈던 것들이 그랬거든요.
-올해의 계획과 목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올해 확정된 활동으로는, 배우로서 출연한 드라마가 우선 하나 있고요, 또 새로운 음악들을 들려드리기 위해 열심히 작업 중입니다. 목표라면 늦어도 가을쯤엔 제 유튜브 팬들과 소소하게나마 후원 콘서트 같은 것을 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못해서 아쉬웠는데, 그때쯤엔 상황이 좋아져서 많은 아티스트들도 공연이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배우, 가수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김푸름이 가진 최종의 목표는?
누군가가 저를 도와주길 기다리기보다는 제가 직접 만들어가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어쩌면 저에게 배우는 기다리는 직업이어서 제 음악을 만들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음악의 자유로움과 연기의 섬세한 감정들을 잘 조합해서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