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업종으로 호재 가능성에도 여전히 큰 불안감
경제 제재 맞대응 나선 러시아...기업에 불똥 튀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비우호국가로 지정하면서 추가 제재에 따른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와 가전 등 전자업종은 아직까지 큰 영향은 없지만 불확실성 증대로 인한 사업환경 악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230원을 돌파해 1235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날 개장과 함께 전날대비 4.9원 오른 1232원에 시작해 오전에 1234원대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원·달러 환율이 1230원을 돌파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초기였던 지난 2020년 6월 1일(1232.0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본격 상승하기 시작한 환율이 전날 1차 저항선이었던 1220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날 2차 저항선인 1230원까지 넘어선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1250원선 도달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아직까진 괜찮지만...비용 부담 증가 우려
전자업계도 최근의 환율 급등세를 주시하고 있다.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더 큰 전자업종의 경우, 일반적으로 환율 상승은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결제 통화가 달러 기반이어서 달러 가치가 상승하는 환율 상승은 매출 증대와 수익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TV·가전·전자기기 제품도 환율 상승은 제품의 달러 가격을 하락시키며 해외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 장기화로 높은 환율이 상당기간 유지될 경우, 부정적 영향을 피해갈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는 많은 장비와 부품·소재·원료 등이 투입되는데 수입해야 되는 품목도 꽤 있어 수입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고가 소진되면 새로 공급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높은 환율이 적용돼 비용이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특수가스인 네온(Ne)과 크립톤(Kr)의 경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외에도 중국과 미국이라는 대체국이 있기는 하지만 높은 환율은 피해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수요 대비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 이중고를 겪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스마트폰·TV·가전도 마찬가지다. 높아진 환율이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수많은 부품·소재가 들어가는 만큼 그만큼 제조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 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반도체만 해도 반도체 조달 비용 상승으로 완제품 생산에 투입되는 비용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부품 비용 증가가 완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생산 시설 건립과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투자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 거래가 달러 베이스로 이뤄지다보니 높은 환율은 그만큼 우리가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커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 주 테일러시에 투자를 확정한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도 향후 건설 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SK하이닉스도 지난 2020년 10월 인수를 결정한 인텔 낸드사업 인수계약 대금 90억달러 중 1차로 70억달러를 지급하고 20억달러가 남은 상태여서 추후 환율 상황에 따라 원화 기준 지출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
기업들이 이미 환헤지(투자·수출·수입 등 거래시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 대비해 환율을 현재 시점의 환율에 미리 고정)를 하고 최대한 현지 통화로 거래해 환 포지션(Exchange Position·외화 매매 거래시 매입환과 매각환의 차액)을 줄여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고환율이 장기화되면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전자업종의 경우, 다른 업종에 비해 환율 상승으로 인한 영향이 제한적이기는 하다”면서도 “다만 최근의 환율 급등이 전쟁이라는 돌발 변수로 인한 것으로 향후 불확실성 증대로 이어질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 추가 제재로 수위 상향 가능성…삼성·LG ‘주시’
여기에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하면서 국내 주요 전자 기업들의 타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러시아 정부는 7일(현지시간) 정부령을 통해 자국과 자국 기업, 러시아인 등에 비우호적 행동을 한 국가와 지역 리스트를 발표했다. 리스트에는 미국·영국·호주·일본·유럽연합(EU)·타이완·싱가포르·타이완 등이 이름을 올렸으며 한국도 포함됐다.
비우호국가 목록에 포함된 국가들에는 외교적 제한을 포함한 각종 제재가 취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단 비우호국가 채권자들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외화 채무를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전쟁 발발 후 경제 제재로 가치가 폭락한 자국 화폐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해 경제적 제재를 가한 국가들에 맞대응하겠다는 포석이다.
이 조치만으로는 아직 부정적 영향의 정도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향후 추가 제재에 따른 타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시작으로 향후 제재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현지에 생산시설을 보유한 업체들의 긴장감은 높아지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추가 제제로 인한 국내 기업들의 현지 사업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