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개입도 역부족, 1300원 돌파할까
원화 추락, 수입물가・자본유출 ‘비상’
美 FOMC 변곡점 “연간 환율 1200원”
최근 원·달러 환율이 1260원을 돌파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긴축정책과 중국 봉쇄조치에 따른 경기 우려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원화 가격이 예상을 뛰어넘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원화 가치의 심리적 방어선인 1250원이 무너지고 1260원까지 내주면서 국내 증시의 외국인 자금 유출 가속화, 물가 상승 압력 확대 등이 우려되고 있다. 4%대의 고물가, 고금리에 이어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우리 경제의 앞날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美 빅스텝 공포 지속...한 달만에 50원↑
28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2원 내린 1265.0원에 출발했다. 2거래일 연속 1265대를 웃돌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종가기준 1260원을 돌파한 것은 코로나19 확산 직후인 2020년 3월 이후 2년 1개월만이다. 환율은 최근 한달만에 50원 가까이 급등했다. 금융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1250원을 넘어섰던 것은 단 두차례 뿐이다. 2010년 유럽 재정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다. 이마저도 1250원을 넘어섰지만, 기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같은 달러 강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공격적인 긴축 정책 행보로 지속되고 있다. 연준은 다음달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인상)’을 단행할 것임을 지속 시사하고 있다. 연준 내부에서는 빅스텝에 이어 오는 6월 추가로 0.75%p를 대폭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 코로나19로 촉발된 중국 주요 도시 봉쇄 장기화로 인한 경기 둔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김승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 연준의 공격적 통화정책과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 조치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 등 글로벌 요인으로 위험회피 심리가 확대, 시장이 달러 매수로 대응하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강달러를 막을 수 있는 재료가 없고, 상당히 높은 수준의 원달러 환율 상단을 억누를 주체는 한은 뿐”이라고 진단했다.
통상 월말에는 수출업체의 네고(달러 매도)물량이 유입되는데 이마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당국의 구두개입 역시 환율 상승 추세를 꺾지 못하고,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 성격의 실개입 정도만이 환율의 가파른 상승을 억제하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25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원화 절하 폭이 엔화 등 다른 국가 통화와 비교해 심한 편은 아니다”는 발언을 두고, 당국이 현재 환율 수준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 “1280원 상단 열어놔야”...물가 충격 쓰나미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같은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금 가격대로는 원·달러 환율 상단이 1280원을 넘어서 일시적으로 1300원까지도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사나흘만에 연고점 예상치에 도달하는 수준인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단 레벨을 전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문제는 달러 강세를 억누를 만한 요인이 없는 상황에서 원화값의 추락은 우리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적정 수준의 원화 약세는 국내 생산 제품의 해외시장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져 수출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수출 경쟁국인 일본이나 중국의 통화가치도 동반 약세를 보이면서 이같은 효과를 누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 봉쇄령이 확대되면 우리나라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 산업과 자동차 생산에 악재를 끼칠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고환율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 압력 확대, 외국인 자본 유출 등의 우려가 거세다. 원화가치 하락은 국내 주식의 환차손을 유발,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로 코스피 지수는 2600선을 위협받으며 크게 휘청이고 있다. 또 수입물가 인상 충격은 국내 무역에 곧바로 전달된다. 기업이 가격 인상으로 대응하면 서민경제 부담으로 전가, 내수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전개되는 것이다.
실제 국내 무역수지는 1분기 39억5700만 달러 적자로 13년 6개월만에 처음 분기 기준 적자를 기록했다. 글로벌 인플레로 수입액이 수출액은 넘어선 영향이다. 국내 교역조건은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12개월 연속 악화됐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금액지수는 28.3% 오르며 16개월 연속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수출한 단위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가늠하는 순상품교역지수도 전년 동월 대비 6.3% 하락, 12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국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약 10년만에 4%를 돌파했다. 당분가 높은 물가 오름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향후 1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도 9년 만에 최고치인 3.1%를 기록했다. 설비투자 전망 역시 밝지 않다. 1분기 설비투자는 운송장비 투자가 위축되며 전분기 대비 4.0% 급감했다.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 설비투자 역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 3高에 스태그플레이션 조짐...“6월 이후 진정세”
고물가, 고금리에 이어 고환율까지 덮치며 한국 경제 성장률 저하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7%로 지난해 3분기 이후 0%대로 하락했다. 수출만 전분기 대비 성장한 가운데 민간소비, 설비투자, 건설투자 등이 모두 하락했다. 수출로만 버텨 7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가까스로 유지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의 버팀목인 수출은 2분기 이후부터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소비나 투자에서 이를 상쇄해야 하는데 원화가치 추락에 이마저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상승으로 소비는 위축되고 기업의 고용과 생산, 투자도 둔화됐다”며 “고환율로 이전부터 우려를 표명해 온 스태그플레이션 상태가 심화하고 있다”고 염려했다.
당분간 환율 변동성은 확대는 계속될 가능성 전망이다. 내달 3~4일(현지시간)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정책금리 인상 여부 확인이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승혁 연구원은 “연준이 오는 6월 자이언트 스텝까지 언급해 통화정책 의사록 확인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유지될 것”이라며 “하반기 환율이 진정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되지만 우크라 전쟁, 중국 경기 둔화 등 상황을 좀 더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호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상고하저의 환율 흐름을 예상하고 있으며, 올해 평균 환율은 1200원 달러 내외로 보고 있다”며 “다만 우크라 침공 사태의 안정화 여부와 러시아 경제제재 상황이 하반기 환율을 좌우할 주요 변수가 될 것이고, 미국의 양적긴축 속도도 주요 모니터링 대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