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의 공간'으로 들어가 소통…'삼성인'으로서의 유대감 강화
다양한 계열사 아우르며 그룹 전체 이끌 리더십 발휘
식구(食口). 사전적 의미로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한다. 광의(廣義)로는 같은 조직에 속한 구성원을 칭하기도 하지만, 본래의 사전적 의미가 더 정감 있고 끈끈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복권 이후 첫 현장 행보로 경기도 용인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찾아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국내 최대 기업 수장이 택한 메뉴는 다름 아닌 구내식당에서 파는 라면이었다.
이후 삼성엔지니어링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삼성SDS 잠실캠퍼스 등 국내 사업장들을 차례로 찾은 이 부회장은 어김없이 구내식당에서 마제덮밥, 가마솥황태곰탕 등을 직접 배식 받아 직원들과 나란히 앉아 식사했다.
지난 12일까지 이어진 추석 연휴 기간 멕시코 출장 일정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의 ‘식판 경영’은 계속됐다. 삼성전자 케레타로 가전 공장과 삼성엔지니어링 도스보카스 정유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한 이 부회장은 구내식당을 들러 떡만둣국 등으로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국내 최대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자 대표적인 재벌로 불리는 이재용 부회장의 직원 동반 오찬 메뉴로 라면이나 떡만둣국은 너무 검소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을 수 있지만, 별도의 특식을 제공하지 않고 구내식당의 평상시 메뉴를 선택한 게 오히려 의미가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직원들이 늘 생활하는 공간에서 자주 먹는 음식을 함께 함으로써 ‘한 식구’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삼성인(人)’으로서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행보라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별도의 오찬 장소를 마련해 직원들을 초청한다면 그건 직원들이 ‘총수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셈이지만, 장소가 구내식당이라면 이 부회장이 ‘직원들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셈”이라며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는 기업 최고 수장과 젊은 직원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부회장이 구내식당을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은 그를 둘러싸고 셀카와 사인을 요청하는 등 친근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 부회장 역시 요청에 일일이 화답하고 가족과 영상통화까지 하며 직원들 속으로 녹아들었다. 총수가 호스트인 ‘딱딱한 오찬자리’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직접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으며 기업 총수 역시 다른 직원들과 같은 삼성인의 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과, 직원들의 평소 생활을 들여다보고 챙기겠다는 의지를 전하는 상징적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부회장이 현장을 찾을 때마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주로 삼성전자 사업장 위주였다면, 복권 이후에는 다양한 계열사 사업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이를 두고 이 부회장이 조만간 그룹을 총괄하는 회장 자리에 오를 것을 대비해 비(非)전자 계열사 직원들까지 ‘원팀’으로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SDS와 삼성엔지니어링 국내 사업장은 물론, 해외 파견 직원들까지 직접 챙기고 소통하며 소속감을 높이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 직원들은 재계 1위 기업에 몸담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회사가 각종 불미스런 일에 엮이면서 사기가 저하된 측면이 있었다”면서 “복권을 계기로 전 계열사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삼성인으로서의 긍지를 되살리는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