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 등 법안 국회 넘을 듯
尹 거부권, 巨野 민주당 '강행처리' 막을 최후의 보루 역할
여소야대 겪은 '노태우 7건·노무현 6건' 거부권 다수 행사
일각선 "거부권 까지 갈 갈등 멈추고 여야가 협치나서야"
2022년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의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 한 해였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새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와 새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과 입법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존재감 드러내기에 몰두했다. 이는 원구성 지각 합의, 2014년 이후 예산안 역대 최장 지각 통과라는 국회 역사의 불명예로 이어지기도 했다.
민주당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과 입법을 과대 의석으로 밀어붙이며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까지 감행했다. 특히 지난 8월 당권을 잡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주도하는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여당의 반발을 무시하고 다수의 법안을 단독으로 상임위원회에서 강행 통과시켰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강행한 법안들이 본회의로 대거 넘어올 예정인 2023년은 대통령의 거부권 정국이 현실화 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들이 현 정부·여당의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 만큼 기존 두 차례 존재했던 여소야대 정국 상황에 따라 윤 대통령이 수차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거부권은 헌법 제53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해야 하는데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국회가 재의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해당 법안은 효력을 상실한다.
공식적인 거부권이 행사 가능성이 높게 전망되는 건 민주당이 강행처리한 '입법'들이다. 대표적인 법안이 지난 28일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쌀 가격이 5% 이상 떨어지거나 수요 대비 생산량이 3%를 넘어가면 정부가 무조건 쌀을 사들이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양곡법은 민주당이 이번 정권 들어 추진을 강행해왔던 법안이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양곡법에 따라 쌀을 강제 매입하게 되면 매년 수천억원 세금이 투입되고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길 수 있다며 반대해 왔다. 정부·여당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농경연)이 최근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 2023년에만 일시적으로 쌀 생산량이 줄었다가 재차 증가세로 전환되면서 쌀 격리비용으로 정부가 2027년에는 1조1872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소요해야 할 것으로 전망한 점을 들어 법안의 효력 발휘를 막아야 한단 입장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1호 법안으로 강력하게 밀고 있는 법안인 만큼 민주당은 지난 2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단독으로 양곡법의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했다. 문제는 이처럼 본회의에 직회부된 법안은 여야 간 합의가 되지 않은 채로 30일이 넘으면 부의 여부를 자동으로 무기명 투표에 부치게 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회 의석수가 169석에 달하는 민주당 입장에선 마음대로 법안 처리가 가능한 상황인만큼 정부·여당으로선 윤 대통령의 '거부권' 외에는 법 시행을 막을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에 주호영 원내대표는 2022년 마지막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양곡법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통과시킨다면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해줄 것을 적극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역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높은 법안으로 꼽힌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 사측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당장 최근 벌어진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을 해당 기업들이 청구할 수 있다며 법안 통과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여당은 현행 헌법과 노동조합법이 이미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는데다, 정당한 파업으로 인한 사용자 손해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는 조항도 있어 노란봉투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국민의힘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폭력·파괴행위를 한 노조원에 대한 배상책임이 완전히 면제돼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은 노란봉투법 역시 양곡법과 비슷한 과정을 거친 강행 처리를 예고하고 있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외의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민주당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에서 강행 처리한 공영방송 사장 임명 방식을 바꾸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과 국토교통위에서 단독 처리한 화물차 안전운임제의 일몰을 3년 연장 법안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고된 법안들이다.
특히 여소야대 정국이 지속되는 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난 1987년 12월 정권을 잡은 노태우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1988년 제13대 총선거에서 125석을 얻어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이후 1990년 2월 이른바 '3당합당'을 통해 217석의 민주자유당이 탄생하기 전까지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정국을 보내야만 했다. 이에 노태우 전 대통령은 해당 여소야대 기간 동안 총 7번의 거부권을 행사하며 거대 야당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대표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1989년 국민의료보험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역시 여소야대 정국을 겪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거부권을 다수 사용한 전 대통령이다. 지난 2000년 열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으로 갈라진 민주당 진영이 당시 한나라당(133석)에 한 석 못 미치는 132석의 의석을 확보하는데 그친데다, 2001년 민주당과 자민련의 연정 파괴, 2002년 한나라당의 재보궐선거 압승 등으로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에는 한나라당이 거야(巨野)의 입장이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하기 전까지 소수당의 대통령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대북송금 특검법,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특검법 등 총 6차례에 달하는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치권에선 이 같은 거부권 정국이 현실화할 경우 전체 국정운영과 나라살림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개인적으로 다른 국회도 경험을 해봤는데 지금처럼 앞뒤 보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거대야당은 처음 본다"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법안이 넘어가야 하는데 그 전까지 여야가 벌일 치열한 싸움을 생각하면 민생이 어려워질 건 당연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의원은 "민주당이 지금 법안들을 강행하는 이유가 대표 방탄이라는 한 가지 목적 때문인 만큼 우리도 밀릴 수 없는 입장"이라며 "새해에는 제발 민주당이 양보라는 덕을 갖춰 협치가 가능한 국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