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승의 역사 속 장소 이야기㉖] 경운궁 대화재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3.04.11 14:01  수정 2023.04.11 14:01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경운궁(현 덕수궁)에 머물렀다. 고종이 머물면서 조선 왕실의 대소사는 경운궁에서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경운궁에 거주하게 되었다. 경운궁에 거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사건 사고도 늘어났다. 그중 가장 위험한 사고는 화재 사고였다.


1904년 경운궁 대화재 사진(‘View over wall onto smoldering ruins’) (출처 Willard Dickerman Straight papers, #1260. Division of Rare and Manuscript Collections, Cornell University Library.)


외국 언론에 보도된 경운궁 대화재 모습 (출처 The Graphic, 11 June 1904)

고종이 경운궁에서 머물던 당시에 발생한 화재는 총 3번이었다. 1900년 10월 14일 왕의 어진을 모신 진전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다음은 1901년 10월 16일 왕실 도서관에 해당하는 수옥헌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때 발생한 화재는 불행 중 다행하게도 해당 전각만 불타고 그쳤다. 하지만 러일전쟁 중이던 1904년 4월 14일 발생한 화재는 그 이전과 결을 달리하는 대화재였다.


덕수궁 평면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1904년 4월 경운궁 화재로 함녕전뿐만 아니라 중화전, 즉조당, 석어당 등 주요 전각이 전부 불타버렸다. 경운궁 대화재 직후 발화 원인으로 함녕전의 구들을 고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불을 지피다가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운궁 내 주요 전각이 화재로 심각한 피해를 보았지만, 고종을 비롯한 왕실 주요 인물의 신변에는 다행히 큰 문제가 없었다. 이후 고종을 중심으로 한 대한제국 정부는 화재 복구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당시 러시아와 일본 간에도 치열한 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러시아 증원군 (출처 : (4 April 1904)“Guerra ruso-japonesa, tropas marchando hacia la frontera mandchú-coreana, tren militar que cruza el lago Baikal”, La Ilustración Artística(1,162): p. 239.)


외국 언론에 보도된 철도 부설에 동원된 조선인 모습, 당시 언론에서는 철도가 부설되면 일본군의 동원 시간이 대폭 단축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출처 : The Graphic, 9 January 1904)

당시 러시아 군의 주력부대는 만주, 현재 중국 동북 지역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에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해 계속해서 병력을 증원하였다. 일본 역시 군대를 동원하여 전선에 투입 중이었다. 일본군은 대한제국에서 징발한 자원뿐만 아니라 조선인까지 수송에 동원하였다. 철도가 완공되기 이전에 일본군 수송의 상당 부분을 지역에서 강제 동원한 조선인 지게꾼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러일전쟁 당시 조선인 지게꾼을 동원한 일본군 관련 삽화 (출처 Illustrated London News, 9 April 1904)


뤼순항을 거점으로 한 러시아 제국 태평양 함대 (출처 The Graphic, 7 January 1905)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일본이 증원 부대를 전선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대한해협을 반드시 거쳐야만 가능하였다. 즉 일본군이 전선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반드시 선박을 타고 한반도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제국의 태평양 함대는 매우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입장에서는 개전 초기에 제해권을 장악하는 것이 전쟁의 승패와 직결된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일본군은 대한제국을 장악한 이후 다음 작전의 중심으로 뤼순항과 여기에 주둔 중인 러시아 제국 태평양 함대를 목표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이 러시아와 밀약 등을 체결할 경우 일본군의 배후가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고종을 비롯한 대한제국 정부는 경운궁 대화재와 그 복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비록 수옥헌을 비롯하여 준명당, 가정당, 돈덕전, 구성헌 등이 온전하였지만, 고종은 화재 발생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불타버린 전각을 먼저 중건할 것을 명하였다. 아직 러일전쟁의 향방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한제국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키를 고종은 쥐고 있었지만, 정작 눈앞에 불타버린 전각의 복구가 더 중요했다.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soothhistory@nah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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