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구 '대상·범위' 두고 당내 갑론을박 지속 중에
'친명' 단체 "혁신 탈 쓴 기득권 강화 시도 반복" 주장
김은경 혁신위원장 "돈봉투 만들어졌을 수" 발언도
당내 파장 예고…비명계와의 갈등 증폭 우려 고조
우여곡절 끝에 김은경 위원장이 수장으로 선임된 더불어민주당의 혁신기구가 출발 전부터 논란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이 혁신 대상인 당내 도덕불감증에 칼을 들이대기는 커녕 되레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꺼낸 데다, 친명(친이재명)계가 혁신위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으면서 계파 갈등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혁신행동은 18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혁신의 주체는 당원과 국민이다. 의원총회를 통한 셀프 혁신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혁신행동은 남영희·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 원외 인사들로 구성된 친명 단체다. 당내에서는 민형배·김용민 의원 등 친명 의원들이 힘을 싣고 있기도 하다.
특히 민주당 혁신행동은 박광온 원내대표와 송갑석 최고위원을 직접 거론하며 "원내대표·최고위원 모두 마치 의원총회가 당 혁신의 주체인 것처럼 말한다"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쇄신 의총'을 자신의 브랜드로 내세웠고, 송 최고위원은 이 대표를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지도부 인사다. 이에 당내에선 박 원내대표와 송 최고위원이 이번 혁신위 출범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민주당 혁신행동이 이러한 박 원내대표와 송 최고위원을 저격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현재 당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혁신위의 '혁신 대상 및 범위' 논쟁과 맞닿아 있다. 친명계는 이번 혁신위가 비명계를 중심으로 한 현역 의원들의 소위 '기득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들은 '당원민주주의'를 앞세워 대의원제 폐지가 혁신위에서 적극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친명계인 민형배·김용민 의원은 민주당 혁신행동과 함께 대의원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동석하기도 했다.
반대로 비명계는 혁신이 진정한 기득권인 이재명 체제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김종민 의원은 지난 16일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기득권 방탄 정당과 비민주적 팬덤 정당에 대한 국민 불신이 쌓인 상태"라며 "이 대표 체제 1년을 평가해서 현 지도부로 내년 총선까지 가면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을 한번 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혁신 대상·범위를 놓고 친명과 비명 간 갈등이 내재된 상황에서, 민주당 혁신행동의 입장문은 이를 처음으로 표면화시킨 셈이다. 이들은 "최근 민주당이 혁신위원장을 새로 임명하며 쇄신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당내 한축에서는 혁신의 탈을 쓴 기득권 강화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며 "현역 의원들의 대표가 현역 의원들의 이야기만 반영되는 의총을 통해 혁신안을 논의한다는 것이 앞뒤가 맞느냐"라고 친명계의 입장을 강조하면서 혁신위를 우회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아울러 새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김 위원장을 향한 개인적인 논란도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에 연루된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지만 (불체포특권이) 헌법상의 권리인 것은 맞다"며 "돈봉투 사건이 (검찰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료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즉각 반발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김 위원장의 해당 발언을 가리켜 "민주당 혁신 최우선 순위는 '도덕적 해이'와 '사법리스크'인데, 지금까지의 민주당의 뻔뻔한 주장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무슨 혁신을 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이재명 아바타로써 이 대표의 위상을 유지하고 당내 문제들에 시간끌기용 카드임을 인정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발언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돈봉투 사건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사건과 더불어 현재 당내에서 가장 시급하게 다뤄져야 할 쇄신 의제로 꼽힌다. 민주당 내부에서 해당 두 사건으로 인해 불거진 '도덕불감증'을 쇄신해야만 국민 여론을 되돌릴 수 있단 주장이 힘을 받고 있어서다.
아울러 민주당이 우려하는 지점은 또 있다. 앞서 김남국 의원은 지난달 5일 '위믹스' 코인 논란이 터지자마자 페이스북에 "개인의 민감한 금융정보와 수사정보를 언론에 흘린 것은 윤석열 라인 '한동훈 검찰' 작품"이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발언과 같이 자신을 향한 의혹 제기가 윤 정권과 한 장관이 장악한 검찰의 표적 수사란 주장이었다.
김 의원의 당시 주장에 한 장관은 직접 "김 의원이 몰래 코인을 하다가 금융당국에 걸린 게 왜 내 작품이라고 하는지 나도 궁금하다"는 반응을 냈고, 여당에서도 비판이 뒤따랐다. 심지어 같은 당내에서도 "김 의원의 대응이 잘못됐다"는 반응이 다수를 이뤘다. 김 의원의 논란이 20·30대을 중심으로 한 여론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당을 향한 시선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또 김 위원장 직전 혁신위원장으로 위촉됐던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9시간 만에 사퇴한 이유도 '천안함 자폭' 등을 포함한 설화였던 만큼 이번 발언 역시 당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의 '검찰 발언'과 이 이사장의 '천안함 발언'이 주는 기시감이 당을 향한 여론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단 분석이다.
이에 민주당은 급히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의 '돈봉투 의혹 조작' 발언에 대해 "(혁신기구 수장으로) 임명되기 전 개인적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며 "지금 수사 중인 사건이니 입장을 밝히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