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난 우려에 수요 급감
주택시장 줄악재 전망 여전
국내 5대 은행에서 나산 전세자금대출 규모가 올해 상반기에만 8조원 넘게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 해 동안의 연간 증가량이 2조원가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들어 반 년 만에 이를 모두 까먹은 후에도 6조원 이상의 역성장을 기록 중인 셈이다.
전셋값 침체와 역전세난, 이에 따른 전세 기피 현상이 맞물리면서 은행권에까지 악영향이 번지는 모습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달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총 123조630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3%(8조3538억원) 줄었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의 전세대출이 30조8408억원으로 2.6% 감소했다. 신한은행 역시 29조1839억원으로, 우리은행은 22조9952억원으로 각각 2.2%와 11.2%씩 해당 금액이 줄었다. 하나은행도 20조3823억원으로, 농협은행은 20조2287억원으로 각각 13.4%와 3.8%씩 전세대출이 감소했다.
은행권의 전세대출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증가세였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감소폭이 지난해 연간 증가량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큼 커진 상황이다. 지난해 말 조사 대상 은행들의 전세대출 잔액은 총 131조9847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8%(2조2878억원) 늘어난 바 있다.
전세대출 위축의 배경에는 얼어붙은 시장 여건이 자리하고 있다. 고금리 부담이 계속되는 가운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되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 압박까지 맞물리면서 수요가 크게 줄었다.
서울 가구당 평균 전세가격은 1년여 전 최고점일 때보다 8000만원 넘게 빠지며 6억원대 붕괴를 앞두고 있는 실정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가구당 평균 전세가는 올해 6월 기준 6억513만원으로 2년 전보다 8.0% 내렸다. 전세값이 정점이었던 지난해 2월과 비교하면 12.8%(8262만원)나 낮은 가격이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서울 평균 전세값은 올해 하반기 중 5억원 대로 내려앉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격이 정점이었던 지난해 초 체결된 전세계약의 만기가 도래하는 내년 초까지는 전세가 하락 폭이 꾸준히 확대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다.
전세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매매 가격과의 격차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5월 서울 지역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50.9%까지 낮아졌다. 매매 가격 대비 전세값의 비율이 이같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건 매매가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전세로 구하기 위해 보증금으로 5억900만원만 내면 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와중 신규 입주물량이 쏠리면서 앞으로 역전세 우려가 더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예정된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36만가구로, 201년부터 지난해까지의 장기 평균 입주물량인 31만가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 전국 입주물량만 19만가구에 달할 것으로 집계된다.
이런 현실은 은행에게도 이중고를 안길 것으로 보인다. 당장 눈앞의 전세대출 축소는 물론, 역전세난에 따른 추가적인 악재까지 고려해야 하는 실정이다. 집주인 입장에서 전세 보증금은 사실상 부채이고, 이를 돌려주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 해도 세입자가 있으면 선순위가 잡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시세보다 더 싸게 전세를 내놓거나, 아예 집을 팔아버리는 집주인들의 행보가 매매와 전세 시장 모두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역전세난이 완화되기 전까진 주택시장의 회복에는 제한이 있을 것"이라며 "이런 환경이 은행권의 주택 관련 대출의 양과 질에 모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