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와 각 세우며 투쟁 최전선"
해양 방류 저지 집회는 '정권 퇴진 운동'으로
'팬덤 정치 경계 주문'에도 비명계 속수무책
지난해 8·28 전당대회로 더불어민주당에 '이재명 체제'가 출범한지 만 1년, 일본 정부가 지난 24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해양 방류를 개시하면서 국내 여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오염수 정국'이 도래했다. 이 대표는 '장외투쟁'을 천명하며 거리로 나섰고, 이른바 개딸(개혁의딸)들이 투쟁 최전선에서 '반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등을 외치며 존재감을 더욱 높이는 모습이다.
22대 총선을 앞둔 민주당이 직면한 최우선 과제는 개딸을 넘어 중도로 지지층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염수 정국'에 맹목적 극성지지층인 개딸의 영향력이 되레 증대되면서, 이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개딸과 결별할 가능성은 '전무해졌다'는 진단마저 나오고 있다.
장외투쟁서는 "탄핵하라" 외치고
'尹, 대한민국 민족 대한 반역' 청원
"모든 의원 광장으로 뛰어나오라"
민주당은 25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향하는 '오염수 투기 중단 국민 행진' 시위를 벌였다. 이날 사전 행사에서 개딸들은 '윤석열을 탄핵하라'라고 외치는 등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앞서 열린 국회 내 '오염처리수 해양 투기 반대' 촛불집회에서도 개딸들은 행사 도중 '반일 감정'에 호소하는 발언을 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라'라는 정권 퇴진 요구를 한 바 있다.
또 이날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민주당은 국회 보이콧 및 대규모 전면 장외투쟁을 선언하라'라는 청원 독려 글이 확산되고 있다.
청원글은 일본 정부의 오염처리수 해양 방류를 "(윤석열 대통령의) 대한민국 민족에 대한 반역이고 국민에 대한 대역죄"라고 칭하면서 "(비명계를 포함해) 168명의 모든 의원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와 국민들과 함께 대규모 장외투쟁을 감행해야 한다. 선비처럼 국회에 틀어박혀 공무원마냥 일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담았다.
이보다 앞서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직무정지를 국회에서 부치지 말고 민주당 단독으로 헌법재판소로 바로 올려달라'는 헌법절차적으로 불가능한 황당무계한 청원도 올라왔다.
여권에서는 개딸을 앞세운 민주당의 행보를 정권 탈취를 위한 선동과 대선 불복으로 보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YTN라디오 '정면승부'에서 "대선 불복이다. 윤석열 정부를 반일 감정을 이용을 해서 정권을 또 탈취하겠다는 그런 욕심이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은 마치 이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본격적인 장외투쟁에 시동을 걸었다. 당대표에 대한 사법리스크로 내부 장악력이 흔들리자 기껏 선택한 탈출구가 묻지마 반일선동"이라고 비판했다.
정작 민주당 내에서는 오염처리수 방류를 이유로 탄핵론이 제기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명계인 김종민 의원은 SBS라디오 '정치쇼'에서 "(탄핵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원치 않거나 그걸 걱정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면서 "책임 있게 추진해야 한다. 탄핵을 의결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탄핵이 인용된다고 하는 확신이 있어야 된다"라고 했다. 또 "탄핵이라는 카드가 너무 무겁다"라고 덧붙였다.
"팬덤 정치 경계"…지적 이어지지만
비명계 의원 지역구 찾아 개딸 난동
가수 노사연 씨도 악플 세례 시달려
개딸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탄핵 요구뿐 아니라 소위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으로 비명계를 가리키는 멸칭)'이라고 규정한 비명계 의원들을 향한 공세도 지속하고 있다. 당의 단합보다는 오히려 '수박을 내쳐야 한다'라는 개딸들의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같은 개딸의 과격한 행보와 반대 계파를 향한 무자비한 공격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돼왔다. 그러나 민주당 비명계를 중심으로 '개딸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고 구제불능'이라는 자조적 분위기마저 감돈다.
최근에는 비명계 윤영찬 의원이 지역구에서 열린 한 아파트단지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개딸들이 난입해 고성을 지르고 욕설을 내뱉어 봉변을 당한 바 있다. 윤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일은 요즘 내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라며 "설훈·이원욱·전해철 의원 등 다른 의원들의 일정 현장과 지역구, 심지어 집 앞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견이 다르다고 소리 지르고 위협하는 이런 행위가 민주당 (이재명) 당대표를 앞세워 저질러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지금 70년 역사의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현실"이라고 했다.
가수 노사연 씨도 윤석열 대통령 부친상에 조문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개딸들의 맹공에 시달린 바 있다. 개딸들은 포털과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등을 가리지 않고 "2찍(대선 때 2번을 찍었다는 뜻) 인증" "제정신이냐" "국민이 우습냐"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비명계 이원욱 의원은 페이스북에 "아무리 미워도 돌아가신 분께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라며 자제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게재했다.
지난 6월 당 원로들로 구성된 민주당 고문단도 비공개 간담회를 통해 "총선 승리를 위해 필요한 중도층을 잡기 위해서는 골수 지지층만 상대로 정치를 하지 말라"라는 지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당히 맞서겠다" …검찰 출석 '소집령'
'혼자가 아니라 함께 길 걷는 동지' 규정
박상병 "지지 기반 개딸과 헤어져선 안 돼"
개딸들의 행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배경으로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심화로 정치적인 목숨의 담보가 불확실해진 데 있다. 앞서 위례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까지 합하면 벌써 네 번의 검찰 출석이다.
최근 이 대표가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검찰에 출석하며 '개딸 소집령'을 내린 것을 볼 때, 둘의 연결고리를 앞으로도 끊어낼 수 없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관련 검찰 출석을 앞두고 "당당하게 맞서겠습니다"라는 문구와 검찰 출석 시간, 장소가 적힌 포스터를 페이스북에 올려 지지자 결집을 유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강성 지지층 내부에서는 이 대표와 개딸들의 관계를 '혼자가 아니라 함께 길을 걷는 동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 대표는 검찰 출석 과정에서 운집한 지지자들 향해 "정권의 이 무도한 폭력과 억압도 반드시 심판받고 대가를 치를 것이다", "비틀어진 세상을 바로 펴는 것이 이번 생의 소명이라 믿는다. 기꺼이 (무한형벌을 받는) 시지프스가 되겠다"라는 입장문을 읽었다.
오염수 정국이 도래하기 직전까지 당을 혼란의 장으로 몰았던 '김은경 혁신위원회 혁신안' 또한 개딸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대표에게 전권을 받아 출범한 혁신위는 지난 10일 각종 논란 끝에 조기종료하면서 '대의원 권한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혁신안대로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권리당원 1인 1표 70%, 일반 국민 여론조사 30% 비율로 선출할 경우, 당이 개딸에게 휘둘릴 수 있다는 내부 우려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민주당 안에서 비명계 의원들에게는 개딸이 엄청난 부담"이라면서도 "민주당이 지지 핵심인 개딸들과 헤어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윤석열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도 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들과 헤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박 평론가는 "지금 대의원제 폐지를 하고 그들의 당내 역할 비중도 더 높인다고 하니까, (개딸들이) 더 클테니까 그들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딸과 끝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한 정당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적으로 돌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테면 국민의힘이 태극기 부대를 적으로 돌릴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강력한 동력인 개딸들을 어떻게 이 대표가 운용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라면서도 "집회나 대여 관계 속에서는 개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당내 문제, 경선에 대해서만은 개딸들의 역할을 최소화하도록 제도를 만들거나 이 대표가 특정 국면에서 개딸들에게 자제를 요청한다든지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