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희망의 정치' 연속 기획 초대석
"양 진영, 기득권 세력돼 이익 추구 함몰
정치권에 몽둥이 찜질하고 싶은 심정
총선 출마 고민 중…지역민 요구 쇄도"
'무대(무성대장)'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회장)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선 굵은 정치인으로 통한다. 중저음 '뱃고동' 톤의 목소리와 거침없는 말투, 당당한 풍채, 특유의 카리스마 덕분이다.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무엇보다 튼튼한 뿌리를 가졌다는 점이다. 김 전 대표는 5공 치하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4년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주도했던 민추협 창립 멤버로 참여하면서 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갔다. YS가 이끈 상도동계 막내로 통하는 만큼, 김 전 대표의 정치 스타일도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YS와 똑 닮았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김 전 대표에 대해 "날카로운 개성을 가진 지도자들의 갈등을 부드럽게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이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김 전 대표는 YS가 집권했을 땐 민정2비서관과 사정1비서관을 지낸 뒤 내무부 차관으로 활동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부산 남을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남을에서 4선, 중·영도에선 재선을 지내면서 6선 고지에 올랐다. 김 전 대표는 2014년 7월 친박계가 물심양면 지원하던 당시 서청원 후보를 큰 표 차로 누르고 당권을 거머쥔 뒤 2015년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28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유력 대권주자로 승승장구하기도 했었다.
김 전 대표는 '공천 학살' 단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18대 총선을 앞두고선 '친박(친박근혜) 좌장'이라는 이유로 친이(친이명박)계로부터 공천 학살을 당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2년 김 전 대표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이뤄진 19대 총선 공천에서 또 탈락했다. 2010년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박근혜 전 대표와 대립 끝에 정치적으로 결별한 후유증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정치력으로 두 번 모두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비민주적인 공천의 폐해를 몸소 겪었던 그는 언론 인터뷰나 사석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당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길은 상향식 공천뿐"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김 전 대표는 20대 국회를 끝으로, 현실정치 중심에선 한 발짝 물러나 있지만, 포럼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를 만들어 정권 탈환과 윤석열 정부의 안정적인 정착 및 성공을 위해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현재 70여 명의 전직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마포포럼(공동대표 김무성·강석호)은 정당 외곽 조직으로는 범보수 진영 최대 규모다.
갑진년 새해를 며칠 앞둔 지난달 28일 마포포럼 사무실에서 김 전 대표를 만나 집권 3년차 임기 반환점을 도는 윤석열 정부, 21대 국회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22대 총선 전망, 개인의 정치적 행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尹정부, 국정 방향 옳고 진심으로 지지
민주적 절차 생략 돼 국민 공감 못 얻어
국민에게 지지 호소하고 설득 과정 필요
다음은 김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
Q. 2018년 6월 15일, 21대 총선(2020년) 불출마 선언을 한 뒤 현실정치 중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2020년 5월 29일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뒤 대선(2022년 3월 9일)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정당 생활을 오래 해온 정당인의 입장에서 공적인 사명감이 있었다. 그래서 전직 의원 70여 명을 규합해서 포럼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를 만들었다. 지난 대선 때는 나라를 구한다는 심정으로 마포포럼을 중심으로 여러 조직과 연대해서 선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너무 적은 표 차이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기 때문에 윤석열 정권의 안정적인 출범과 정착, 성공을 위해 여론을 조성하고 건의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포럼을 하는데, 2024년 신년회 포럼은 100회째를 맞는다."
Q. 2024년은 윤석열 정부 집권 3년 차다. 그동안 가장 잘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재인 정부 때 빠졌던 '북한 정권은 주적' 개념을 되살린 것, 한미 동맹 강화, 대일 외교 복원, 긴축 정책 등."
Q. 2023년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정상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등 한미일 협력 공고화, 한미 동맹 격상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는데, 지지율에 반영이 안 되는 것 같다.
"국정 방향은 옳다고 본다. 진심으로 많이 지지한다. 다만 국정과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좀 생략하면서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의 생각과 조금 다르지만 선도적 방향의 정책을 추진하려면, 기자회견을 열어서 설득하고 호소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사안일 경우엔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서 전달해도 되지만,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 같은 건 기자회견을 열어서 '국민 여러분, 믿고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더라면, 국민들의 이해 폭도 더 깊고 넓어졌을 것이고 성과 홍보도 훨씬 더 잘됐을 거라고 본다.
'이태원 참사'는 엄청난 일이었고, 국민들의 분노를 분출시켜 줬어야 했다.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누군가에겐 물었어야 했다.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은 바로 해임했어야 한다. 사고가 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지 않나. 이런 부분들이 윤 대통령의 경제·외교·안보 분야 성과가 부각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굉장히 아쉽다."
Q. 21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가장 생산성이 없고, 대화와 타협이 실종됐다는 평가다. 정치의 양극화가 도를 넘고, 저질화는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정말 큰일이다. 우리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데, 정치인들의 잘못으로 좌우 진영에서 이념적 벽을 너무 높게 쌓아 국민 정서는 동서로 분단된 상태다. 서로 적으로 생각하고 전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굉장히 어둡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기득권 세력화 돼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 추구에 함몰되어 있다. 정당은 극렬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극단적인 포퓰리즘' '팬덤 정치'에 휘둘리고 있다. 국가의 미래 비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야 할 국회에선 자기 진영 보호를 위해 저급한 막말로 싸움만 벌이고 있다. 심지어 범법자가 당 지도자가 되어서 면책특권 뒤에 숨어 국회를 법망을 피하기 위한 방패로 삼기도 하지 않나. 이런 국회와 정치에 대해 나조차도 몽둥이 찜질을 하고 싶은 심정인데, 국민들은 오죽하겠나. 지금 우리 국회와 정치는 나라의 미래를 가로막는 만악의 근원이 됐다.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적 지지 있는 한동훈 비대위, 김기현 때와 다를 것
정권 명운 가를 총선 승리 위해선 '상향식 공천'이 답
韓, 민주적인 사고 가지고 당 운영하면 성공할 수 있어
Q. 당의 중심을 잡아줄 중진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20대 총선을 앞두고선 이한구 전 공관위원장이, 21대 총선을 앞두고선 김형오 전 공관위원장이 자행한 '막장 공천'의 여파일까.
"우리 정치가 이렇게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진 원인에는 잘못된 공천이 있다. 이길 수 있는 선거도 공천을 잘못해서 지고, 당은 분열되고, 이런 게 4년에 한 번씩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지 않나. 공천권에 멱살 잡혀 비굴하게 굽신거리고, 소신 발언을 당당하게 하지 못하는 국회의원을 양산하는 잘못된 공천 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Q. 18대 국회의원 공천에선 친이(친이명박)계에 의해, 19대 국회의원 공천에선 친박(친박근혜)계에 의해 '공천 학살'을 당하지 않았나.
"허허허.(웃음) 공천권을 쥔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맞서고 바른말 하다가 공천 때 항상 피해를 봤다."
Q. 윤석열 정부의 명운을 가를 총선 3개월을 앞두고 국민의힘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섰는데,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총선 승리' 위주의 전략을 짤 것인지, 아니면 '당 장악력'을 높이는 전략을 짤 것인지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총선 승리'를 최우선으로 둬야 한다.
정치는 대화와 협상이다. 흑백이 아니다. 법원에서의 판결은 흑백으로 나뉘지만, 흑과 백을 섞어서 회색을 만드는 게 정치의 미학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들 앞에 결과물을 내놓는 게 정치다.
검사에서 정치인으로 왔으면, 정치인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그런데 국민과 언론은 한 위원장한테 '정치인들은 썩었으니까, 당신은 정치인으로 변신하지 말라'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를 주문하고 있지 않나. 딜레마일 수 있는데, 나쁜 정치인이 아닌 좋은 정치인으로 변신하면 된다. '민주적인 사고'를 가지면 된다. 현재 우리 당이 처한 어려운 상황은 민주주의를 하면 다 해결이 된다. 정당민주주의를 복원시켜야 한다.
당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공천도 민주적으로 하면 공천 갈등 같은 게 생기지 않고 확장성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공천 경쟁을 하다 보면, 스타 정치인들이 탄생할 수 있고 흥행은 저절로 따라온다. '한동훈 비대위'도 거기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총선 승리를 위해선 상향식 공천이 답이다.
지역의 대표자는 그 지역의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선거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일인데, 지역 사정을 잘 모르는 중앙 정치권에 있는 소수 권력 집단이 (정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선거 때마다 약 50%씩 물갈이 공천을 했는데, 그래서 정치가 더 좋아졌다고 할 수 있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 거다."
Q. '김기현 당대표 체제'에선 당이 용산에 끌려다닌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한동훈 비대위 체제'에선 수평적 당정관계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하고 있지 않나.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 안됐던 김기현 전 대표와는 좀 다르지 않겠나."
Q. 22대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인물들이 신당 창당을 시사하고 있다. 제3지대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 것으로 보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경우엔 신당 창당이 합당하지 않다. 당내에서 자기 주장을 하면서 싸워야 한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우엔 좀 다르다고 본다. 민주당은 '이재명 사당화'가 돼 있는 상태다. 그리고 당대표가 일주일에 세 번씩 재판을 받는데, 어떻게 선거를 치르겠나. 이준석 전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 배경과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고 본다."
총선 출마, 고민 중…지역 주민 요구 쇄도
'민주주의 복원'에 대한 의무감 많이 생겨
정치 인생 가장 보람됐던 순간은 YS 당선
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소원해진 것 후회
Q. 4·10 총선을 앞두고 부산 중·영도 출마설이 점차 탄력을 받고 있다.
"총선 불출마 선언 후 후원자 역할만 하기로 결심을 했었는데,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과거 내 지역구였던 이곳에 문제가 생겨서 현역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됐는데,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다시 출마해달라'는 지역 주민들의 요청이 굉장히 많이 쇄도하고 있다. 그래서 고민 중이다.
또 현재 우리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점점 실종 되어가고 있다.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정치에 입문한 사람으로서, '민주주의 실현'에 정치적 목적을 두고 정치 활동을 쭉 해왔는데, 우리 정치권 전체가 점점 반(反)민주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서 '민주주의 복원'을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많이 생기고 있다."
Q. 40년 동안 정치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과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을 하나씩 꼽는다면.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1992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YS) 당선 때다.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국정운영의 핵심으로서 소신 있게 역할을 했던 게 나의 정치 인생에서 굉장한 보람이었다. 가장 후회되는 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다."
Q. 2016년 탄핵 정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지그시 먼 곳을 응시하며) 그 때 나와 박 전 대통령이 대화를 했다면 그렇게까지 안 갔을 수도 있다. 나는 만나려고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만나주지 않았다.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데, 대화가 단절됐었다.
그 당시엔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었다. 하야와 탄핵. 그 당시 박 대통령한테 충성을 다 바친다는 친박계 핵심 8명(서청원·최경환·홍문종·정갑윤·유기준·정우택·윤상현·조원진)이 모여서 몇 시간 격론 끝에 하야(명예로운 퇴진)로 결론을 내렸고, 청와대에 건의했다. 누가 배신자냐. 근데 나보고 배신자라고 하지 않나. 허허허.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