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가치를 위해 싸운다?
“죽어가는 건 의사가 아니라 국민”
파시스트 정권 뭔지도 모르면서
지난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국무회의에서 “보건의료 분야를 안보·치안 등 국가 본질 기능과 같은 반열에 두고 과감한 재정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가 ‘국가 본질 기능’이라는 점은, 계속되고 있는 의료대란으로 재확인됐다. 당연히 재정투자가 적극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료계의 책임성도 강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가 제공하는 면허를 자신들의 이익확보 및 확대를 위해 악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가 따라야 한다.
무리를 지어 병원을 떠나버린 전공의들, 이들을 직간접적으로 부추기고 있는 의사단체와 의대교수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의사들이 가치를 위해 싸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위중증 환자들까지 팽개치고 싸운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한 가치가 달리 있다고 여기는가? 솔직하게 말하자. 의대 정원의 대폭적 증원으로 의사들의 밥그릇이 줄어들고, 사회적 위상이 저하될 것 같아서 집단으로 병원을 이탈한 것 아닌가?
정부가 표를 얻기 위해 일을 저질렀다는 건 또 뭔가? 정부가 정당한 권한을 행사한 것이 ‘일을 저지른 것’인지 알아듣게 설명해 주면 좋겠다.
그는 이처럼 마음껏 정부를 조롱하면서 ‘의사의 힘’을 과시했다.
이에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과 비공개 간담회를 했다. 그 직후 윤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당과 협의하여 유연한 처리 방안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의 강경 입장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를 놓치지 않고 노 전 의협회장은 “내가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정부는 의사를 못 이긴다고”라며 기세를 올린 것이다.
그의 인식대로라면 정부는 의사들을 상대로 무모하게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부 쪽의 패색이 짙어졌다. 정말 그렇게 믿는가? 하긴 의사들이 환자를 돌보지 않겠다면 현실적으로 다른 수단이 없다. 기대할 것은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켜내겠다는 의사들의 소명의식이다. 그걸 위해 의사들이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발휘해줄 때만 이 ‘대란’은 종식될 수 있다. 그런데 가만 봐하니 전공의들의 집단 파업,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을 동업자 집단의 유력자들이 부추기고 있다. “걱정 마, 우리는 이길 수 있어”라고 응원하면서.
“죽어가는 건 의사가 아니라 국민”
그래서 묻고 싶어진다. 정부가 의사집단의 실력행사에 굴복해서 의대증원을 백지화하면 정말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가? 특정 이익집단의 압박이 정부의 정책적 결정을 백지화할 수 있다면 그건 ‘무정부 상태’를 뜻한다. 의사들은 나라를 그 지경으로 몰아가면서까지 밥그릇 투쟁을 계속할 것인지 스스로 양심에 물어볼 일이다.
의대 입학생 증원 효과는 빨라야 10년 후부터 나타난다. 부족한 교육 시설 장비 등을 갖출 시간도 3년이나 남았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시간을 앞당겨 의사직과 교수직을 내던지고 있다. 의사들을 건드리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지를 뼈저리게 깨닫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을러대면서―.
이처럼 정부에 대해서는 막무가내 아무 말이나 하는 노 전 회장이 ‘사회의 윤리적 요구’를 말했다니 별일이다. 그는 의협 회장에 출마한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의 비윤리성을 공격했다. 그는 주 위원장의 음주사망사고 전과를 겨냥, 특가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는 중대범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반 시민들의 통념이 그러할진대 대한의사협회를 대표하는 자리에 대한 사회의 윤리적 요구는 더욱 높다”고 역설했다.
옳은 말이긴 한데 노 전 회장의 말로는 좀 뜨악하다. 생사의 갈림길에 처한 위급환자, 중환자들을 외면하고 집단 파업을 한 달이 넘도록 계속하고 있는 의사들의 윤리의식엔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가? 음주사망사고를 내고, 그것을 의협 회장 선거 후보자 등록서류에 기재하지 않은 것은 ‘사회의 윤리적 요구’에 반하는 행위지만 의사들의 집단 파업,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은 대단히 윤리적인 행위라고 믿는다는 건가?
주 위원장도 정부 공격에는 노 전 회장과 난형난제(難兄難弟)다. 그는 25일, 정부와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못 박았다.
파시스트 정권 뭔지도 모르면서
야당이 아주 즐겨 쓰는 ‘농단’이 의사 사회에까지 번진 듯하다(이러니까 정치 언어의 순화가 절실하다는 거다). ‘국정조사’까지 운위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 사람도 정치꾼이 다 됐다. 26일 실시된 의협회장 선거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에게 패배했던데, 유난스러운 언어적 강경투쟁이 빛을 발하지 못한 듯하다.
임 당선자도 강경파로 알려졌다. “의사들은 파시스트적 윤석열 정부로부터 필수의료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런 정부하에서라면 의사들이 집단적 진료 외면, 대(對)정부 위협 행위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지도 말해야 한다. 임 회장은 파시스트 정권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그런 정부라면 지금과 같이 일전불사의 각오를 공공연히 피력할 수 있을까? 의협 회장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사회적 윤리’에 부합하는 대답을 해줄 일이다.
25일부터는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기 시작했다. 40개에 이르는 의대 대다수에서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는 의사를 길러내는 스승이다. 그들이 애초엔 ‘제자들을 위해서’라더니 결국 ‘밥그릇 지키기 동참’임을 토로하고 있다.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6일 19개 의대 명의의 성명을 냈다. 비대위는 이 성명에서 “교수직을 던지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며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의사면허를 반납한다는 말은 없다. 교수직을 내놔도 개인병원을 차리면 된다는 계산인가? 그 이전에 정부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서 벌이는 유사 자해극은 아닌가? 국가 백년 의료대계를 위해 제자와 후배들을 설득하기는커녕 덩달아 가운을 팽개치는 이 한심한 ‘의사의 스승들’에게 환멸까지 느끼게 된다.
정부가 이번에 다시 의사들의 요구에 굴복하면 의사부족 해소는 영영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명념해야 한다. 의사들 파업·태업, 의대교수들 사직의 충격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내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외국 의사 유치, 외국 의대생 편입을 무제한 허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의사면허 및 의대교육의 폐쇄성이 의료대란의 요인 가운데 하나라면 차제에 제도 개혁을 시도해볼 만하다고 하겠다. 어떻게 하든 환자들이 의사로부터 외면당하는 이 황당한 상황은 극복돼야 하지 않겠는가.
ⓒ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1
2
기사 공유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