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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대제철, 직원 '보안테스트 피싱' 논란…미끼는 '정유사 이직'


입력 2024.05.24 10:58 수정 2024.05.24 16:26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SK이노베이션 경력채용' 메일, 알고 보니 현대제철 보안팀 발송

"현대제철 정보보안팀이 SK이노베이션 홍보팀이냐" 비난 잇달아

평균연봉 현대제철 9000만원, SK이노베이션 1억5200만원…상대적 박탈감

사측 "외부 해킹 대응 위한 모의 훈련 일환…'애사심' 시험 의도 없어"

현대제철 직원이 회사 정보보안팀으로부터 'SK이노베이션 이직 제안' 피싱 메일을 받았다며 블라인드에 올린 글. 블라인드 캡처

다수의 현대제철 직원들이 채용 플랫폼 ‘리멤버’를 통해 SK이노베이션으로의 이직 제안 메일을 받은 가운데, 메일을 보낸 곳이 SK이노베이션이 아닌 현대제철 정보보안팀이었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직원들의 보안의식을 점검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 이직’을 미끼로 ‘피싱(낚시)’을 했다는 것이다.


회사측은 ‘외부 해킹에 대응하기 위한 모의 훈련의 일환’이었다며, 직원들의 이직 의향을 파악해 불이익을 줄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회사 정보보안팀으로부터 피싱을 당했다는 현대제철 직원들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정보보안팀이 치졸한 방식으로 직원들의 애사심을 시험했다거나,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비난하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피싱’을 당했다는 현대제철 직원들은 현대자동차그룹 사내 인트라넷 ‘오토웨이’를 통해 SK이노베이션으로의 이직 제안을 담은 메일을 받았다. 이 메일은 경력 채용 플랫폼 ‘리멤버’를 통해 발신됐으나, 사실 현대제철 정보보안팀이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제철에서 근무하는 일반직 매니저’라고 자신을 소개한 직원은 “연차를 사용하고 집에서 쉬던 중, 리멤버 플랫폼에서 SK이노베이션 포지션 제안 메일이 오토웨이 메일함에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리멤버에 가입한지 오래됐으나, 현대제철 메일 주소를 등록한 기억이 없기에 이상하다고 생각돼 메일을 살펴본 뒤 피싱이라고 판단해 동료들에게 공유했고, 피해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리멤버 고객센터에 알리는 등의 노력을 했다”면서 “그런데 뒤늦게 해당 메일이 (현대제철)정보보안팀이 보안의식을 점검한다는 명목 하에 발송됐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허탈해했다.


이 직원은 “보안의식을 점검하고 높이는 게 중요한 사안인 것은 동의하지만, 이 방식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면서 “특히 이직 제안을 미끼로 삼아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이 직장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해온 동료나, 팀과 맞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을 동료들의 걱정과 고뇌를 이용한 치졸한 점검”이라고 비난했다.


다른 직원은 “낚시 메일로 경각심을 주는 건 알겠지만, 타회사 이름으로 채용제안을 보내는 건 선을 넘는 일”이라며 “(피싱 메일을) 보자마자 허접해서 누르지도 않았지만, ‘SK이노베이션 경력채용’ 이런 걸 보내는 게 회사 얼굴에 셀프 똥칠하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대놓고 회사 엿먹임과 직원 엿먹임을 동시에 하느냐, 이직하고 싶은 사람들 놀리는 것도 아니고”라는 비난도 덧붙였다.


이들 외에도 다수의 직원들이 정보보안팀이 회사와 직원 간 신뢰를 무너트리고 현대제철 직원으로서의 자존감을 훼손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한 직원은 블라인드에 “담당자가 누구냐, 음습하고 관음적인 것 같아 온몸이 꿉꿉해지는 것 같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SK이노베이션이 현대제철보다 좋은 직장임을 홍보하는 꼴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전 직원에게 리멤버가 이직 앱이고 현대제철보다 SK이노베이션을 다니라고 홍보만 해준 셈이다”, “정보보안팀 이름을 SK이노베이션 홍보팀으로 바꾸자”, “SK이노베이션 홍보팀에 신고하겠다. 우리의 정보보안시스템 역량과 애사심을 전국민에게 보여주자”는 등이 비난이 잇달았다.


“다들 SK이노베이션(이직 제안 메일을) 보고 마음이 설렜고, 그만큼 실망과 아쉬움이 컸던 걸로 정리합시다”는 자조 섞인 입장을 올린 이도 있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 ⓒ현대제철

현대체철은 국내 3위 대기업집단인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이자, 양대 철강기업 중 하나로, 임금 수준이 높고 복지 등 대우가 좋은 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임금이 높기로 유명한 정유‧에너지 계열사들을 거느린 SK이노베이션과는 임금 격차가 크다. 정유사들은 생산직도 높은 기술력을 갖춘 숙련된 설비 오퍼레이터 위주로 구성돼 있어 생산직 중 최상위 임금 수준을 자랑한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제철 직원 평균 급여는 9000만원인 반면, SK이노베이션은 1억5200만원에 달한다. 남자 직원으로만 한정하면 SK이노베이션의 평균 급여는 1억7200만원까지 치솟는다.


이른바 ‘SK이노베이션 이직 제안’ 메일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같은 두 회사의 임금 격차가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회사측은 이번 사태에 대해 사내 인트라넷에 대한 외부 해킹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모의 훈련이었으며, 직원들의 애사심을 테스트하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외부 해킹에 대응하기 위한 모의 훈련 차원에서 진행한 것으로, 다른 기업들도 사내 인트라넷에 대한 보안 점검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직과 관련된 개인 의사에 회사가 어떻게 개입하겠느냐”면서 “다만 이직 관련 의사 교환은 개인 메일로 해야되는데 이걸 회사 메일을 통해 진행할 경우 외부 해킹에 노출될 수 있다. 실제, 중국 기업들이 국내 기업 기밀을 빼내기 위해 다른 기업의 명의를 도용해 회사 메일로 이직 제안을 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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