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흐름 타고 환경문제가 기업 활동 Key로
취지 좋지만 기술력과 여건 차이는 진입장벽
오히려 사업기회로 삼은 기업도 다수
요즘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야 중 하나는 ESG(환경·사회·투명 경영)다. 이전에도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강조하곤 했지만 특히 최근에는 탄소중립을 표방하며 쏟아지는 각종 환경보호 조치들이 글로벌 시장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작년에 발효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올해 7월 발효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이 대표적이다. CBAM은 역외산 고탄소 제품이 EU 역내로 들어올 때는 인증서를 구매하여 탄소비용을 내도록 하는 제도이다.
CSDDD는 기업이 공급망 협력업체들과 함께 환경과 인권을 보호하는 경영을 하고 투명하게 그 현황을 공시하라는 제도이다. EU는 이 밖에도 제품의 탄소발자국, 재활용 정보 등을 담도록 하는 '디지털제품여권(DPP)'과 산림이 함부로 벌채되면서 만들어진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산림벌채금지법(EUDR)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자사 공급망 협력사들에게 탄소배출 감축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거나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제품만 납품하도록 하는 요구를 하고 있다. 환경오염을 유발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자사 제품을 글로벌 기업에 공급해야 하는 중소기업들은 그들의 요구에 맞춰 설비를 새로 갖추고 탄소저감 제품과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설사 강제의무 규정이 아니더라도 비즈니스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기업의 생존이 걸린 비용과 시간의 싸움이다.
환경보호를 위한 탄소중립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방향이다. 문제는 관련 기술이 선진국과 개도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CBAM은 사실상 EU 기업들보다 탄소저감 기술수준이 낮은 역외 기업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함으로써 진입장벽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최근 각국이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신에너지 확충, 전기차 보급 확대, 기후공시 의무화 등도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 자국 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EU처럼 탄소배출권 시장이 발달된 곳의 기업들은 탄소저감 기술을 개발하여 투자를 유치하는 등 유리한 점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역외국 기업들은 비용투입만 커진다.
아울러 아프리카 밀림지대를 사들여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했다고 홍보한 어느 기업의 사례처럼 막대한 돈만 쏟아 부으면서 보여주기식 활동만 하는 이른바 ‘그린워싱’도 경계할 사항이다. 하지만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삼은 기업들도 적지 않다.
세계 최대 정유사인 쉘은 석유와 석탄의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및 저탄소 기술에 투자를 집중함으로써 '석유·가스회사' 이미지를 '에너지 전환기업'으로 바꿀 수 있었다. 캐나다의 한 스타트업은 탄소포집 기술을 개발하여 막대한 클린테크 투자자금을 유치했다고 한다.
EU 공급망 실사지침은 기업 활동에 환경 및 인권 관련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내재화하여 이를 평가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수집 관리하며 이를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정한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IT를 통해 전사적 관리 및 평가체계를 갖추는 것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IT 환경에 익숙하고 솔루션 개발능력이 뛰어난 우리 기업들에게는 매우 유리한 점이다.
EU의 기업들도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무역관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유럽의 수입기업 중 상당수가 CBAM 등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공급선을 변경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까다로운 규정을 해석하여 대응체계를 갖추어야 하는 자신들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 줄 수 있는 한국기업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도 늘어난다.
여기에 각국이 탄소중립 산업을 전략화하면서 관련 첨단산업 분야의 소재부품장비 시장이 확대되는 것도 호재이다. 제조업 경쟁력을 갖춘 우리 기업들은 여기에 최적의 파트너로서 가치를 높이는 기회일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산업 전체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글/양은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지역통상조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