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퇴진' 주장 한동훈, '탄핵 찬성' 선회?
표면적 '탄핵 반대' 친윤계와 정치셈법 얽혀
계파 갈등에 '탄핵 표결 통과' 가능성 높아져
일각 "당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비판도
윤석열 대통령이 하야에 뜻이 없다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민의힘이 격랑 속에 휘말리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생각이 사실이라면 이틀 앞으로 다가온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할지가 미지수라는 관측이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동훈 대표는 오는 14일로 예정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참석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7일 첫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에 앞서 국민의힘은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했지만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 등 3명이 표결에 참석하면서 파열음이 일어난 바 있다. 이후 민주당이 오는 14일 두 번째 탄핵안 표결을 예고하자 권영진·김소희·김재섭·박정훈·배현진·유용원·진종오 의원 등이 잇달아 표결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찬반 입장을 아직 밝히지는 않은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한 대표의 '표결 참석 발언'은 단순히 의원들의 자유행동을 막지 않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몇 차례 회동을 거치면서 '질서 있는 퇴진'을 약속받았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한 대표는 '정국안정화TF'를 띄우고 수차례 의원총회에 참석해 의원들의 의견을 경청해왔다. 이에 내년 '2월 또는 3월 퇴진'과 '4월 또는 5월 대선'이라는 초안까지 도출해내는데 성공했지만 당내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으면서 최종 로드맵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와중에 대통령실이 하야보다는 탄핵소추를 감수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여당 일각에 전했다는 말이 나왔다. 당장 두 달 뒤 하야하느니 탄핵 변론을 통해 최대한 시간을 버는 편이 더 유리하다는 취지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검찰 선배였던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을 변호인으로 선임하기 위한 움직임에 돌입한 상황이다.
이에 친윤계 중진의원들 역시 '조기 하야보다는 탄핵이 낫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는 모양새다. 2~3개월 안에 하야하는 것보다 대선까지 최장 8개월의 시간을 더 벌 수 있는 탄핵이 낫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헌법재판소는 180일 이내 심판을 내려야 하고, 탄핵이 인용된다면 선고 이후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한다.
다만 친윤계는 공개적으로는 '탄핵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당론으로 결정된 '탄핵 반대' 주장을 고수해, 실제 탄핵이 통과될 경우 한 대표를 압박해 당권을 쥐는 시나리오를 준비 중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당 내 이탈표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한 대표에게 책임을 물어 사퇴를 압박해 한 대표가 물러난다면,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서열 2위인 원내대표가 대표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12일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에는 친윤계인 권성동 의원이 출마한 상태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탄핵이 낫다는 것보단 한동훈 대표가 주장해왔던 조기 퇴진 로드맵을 받을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데 그만큼 한 대표가 싫다는 것"이라며 "탄핵을 빌미 삼아 한 대표를 끌어내리면 당권을 쥘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12일 치러질 원내대표 경선이 현 상황의 결정적인 변곡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권성동 의원과 김태호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가운데, 누가 선출되는지에 따라 당론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김 의원은 탄핵 찬·반 여부는 밝히지 않았으나 표결 방식과 관련해서는 자유투표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한 대표 입장에선 윤 대통령이 떼를 쓰고 있는데다, 민심이 악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남은 선택지가 탄핵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만약 탄핵이 사실상 확정되는 흐름으로 간다면 한 대표가 당내 의원들을 몇 명이나 포섭하느냐가 중요해질텐데 제일 중요한 게 원내대표를 김태호 의원으로 만드느냐 여부"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당내 상황에 대한 푸념도 나온다. 또 다른 국민의힘 한 의원은 "오늘 본회의장에 도저히 앉아있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지금 대통령의 퇴진을 놓고 싸우는 당의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라 일단 민심을 수습하고 정도를 걷는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