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오후 함열성당을 다시 찾았다.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흐르니, 무채색이던 세상이 고운 색으로 갈아입어 기분을 편안하게 한다. 지난번 방문 때에는 코로나 19로 성당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내부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작은 창을 통하여 간신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침 그날 성당 내부를 수리한다고 문을 열어두었다. 사다리에 올라 성당을 수리하는 사람을 보며 문이 닫히기 전에 성당 안을 얼른 둘러보고 나오려고 서둘렀다. 그러다가 수녀님을 만났다. "사진 찍으시려고요? 제대에 불을 켜면 더 아름다워요" 하시며 제대에 불을 켜 주신다. 성당 문이 열려있을 때 마침 잘 왔다고 하신다. 수녀님의 따스한 말씀에 기쁨과 감동이 두 배가 된다.
함열성당은 제대 형태가 독특하고 아름답다. 성당의 주보이신 그리스도왕이 제대 높은 곳에 있고, 감실 양쪽에 촛대가 3개씩 총 여섯 개의 촛대가 있으며, 촛대 곁에는 두 천사가 양쪽을 지키고 있다.
제대 앞에는 가시관 아래 보랏빛 천이 감겨 있는 십자고상이 놓여 있어 성주간임을 알리고 있었고, 스테인드글라스는 따사로운 빛을 투영시키고 있었다.
성당 정면의 모습이 아름답다. 전주의 전동성당을 보는 듯하였다. 성당의 정면 중앙에는 12각의 돔을 올린 종탑이 있고 양쪽으로 비슷한 형태의 돔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성당 앞마당에는 커다란 십자가 아래 피에타상이 있다.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님의 아픔이 느껴진다. 성당 좌측으로 사제관이 있고 반대쪽에는 언제 심었는지 커다란 벚나무가 고목이 되어 성당을 지키고 있다.
조선 시대 신자들은 박해를 피하여 전라도까지 내려와 모여 살게 되는데, 여기 익산지역도 마찬가지였다. 1878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블랑 신부가 이곳으로 피신을 오면서 전교가 시작되었고, 1910년 전라북도 용안군(익산시에 편입) 용안면 안대동에 본당이 설립된다. 안대동성당은 전라도 천주교 역사에서 유서 깊은 성당이었지만, 1959년 1월에 본당을 익산군 함열읍으로 이전하면서 함열성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안대동성당은 건물 골조만 남아 있다고 한다. 함열성당은 교육 사업 목적으로 1961년 함열여자중학교를 개교하였고, 1971년 한센인 정착촌인 상지원공소 건물을 준공했으며, 1994년에는 ‘성심어린이집’을 설립하였다. 현재도 한쪽 마당에 함열성심어린이집이 있어 어린이 교육에 힘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하던 시절 성직자들은 민중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하여 계몽시키고, 더 나은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직자는 성당을 지은 후에는 학교와 유치원을 지어 교육 사업에 힘써 왔다. 함열성당뿐 아니라 그 밖의 오래된 성당을 보면 늘 어린이집이 함께 있음을 볼 수 있다.
봄의 시작이다. 목련은 이미 꽃잎이 떨어지고, 마당에 있는 커다란 벚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계절적으로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었고, 전례적으로는 곧 부활절이 다가오니, 기쁨과 환희의 시간을 맞이하는 때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수녀님은 한 어린이의 손을 잡고 성당으로 들어가시고, 성전 앞 성모상 위에는 비둘기 한 마리가 한가로이 앉아 있다. 평화로운 시간이다.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 익산대로 1825
전화 : 063-861-7181
주변 가 볼 만한 곳 : 아가페정원, 고스락, 미륵사지, 보석박물관
홍덕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