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랗게 뻗어 있는 산줄기에 우뚝 솟은 백운봉은 마치 세월을 품은 거인의 어깨처럼 든든해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라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듯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세월이 훌쩍 흘렀다. 어느 날, 저 산에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에 몸이 먼저 달려갔다. 번개 치듯 다가오는 태도가 달갑지 않았는지, 산은 길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퇴직 후 흙 내음 가득한 전원에서 여유를 즐겨볼까 하여 텃밭을 마련해 두었다. 동네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아 앞이 탁 트인 시야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삼각형 모양으로 뾰쪽하게 솟아 있는 백운봉의 자태는 날마다 내 마음을 흔들었다. 용문산 남쪽 능선에서 가장 높은 940미터의 봉우리다. 구름이 허리를 감싼 체 신비롭게 떠 있고, 때로는 눈부신 설경으로 알프스의 한 자락을 닮아 성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 언젠가는 저 산정에 서리라 마음먹었지만,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 십오 년이 지났다. 일주일에 한 번 농원에 들리면서도 잡초와 싸우느라 산에 오를 틈이 없었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었건만 내 손길이 닿지 못한 책장 위엔 먼지만 쌓여갔다. 주말농장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11월 중순 어느 날 잔디밭에 서서 백운봉을 바라보던 내 가슴이 일렁거렸다. ‘올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산 정상에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농장에 있는 작업화와 집에서 가져다 놓은 등산화를 신고 작업복 차림으로 아내와 함께 자동차에 올랐다. 어디로 올라가야 할지 몰라 네이버 지도로 검색했더니 용문면 연수리 쪽으로 안내한다. 30여 분을 달려 산길을 따라 자동차가 갈 수 있는 끝까지 올라갔더니 교회 수도원이 나타났다. 상수도 보호구역이고 사유지라는 표지판이 길을 막는다. 바쁘게 달려왔는데 이렇게 난감할 수가 있나. 확인도 해 보지 않고 인터넷만 믿고 나선 결과가 아니겠는가.
동네 주민에게 전화로 물었더니 백운봉 자연휴양림 입구 쪽으로 올라가란다. 왔다 갔다 하며 한 시간 정도 허비한 후에야 휴양림 안내소 옆 간이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울 수 있었다. 10여 분을 올랐을까 휴대전화가 울린다. 산림욕장 관리원이다. “주차한 곳은 산림욕장 이용객이 주차하는 곳이므로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주세요”라고 한다.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어 다시 내려가 이동 주차하고 올라오는데 청바지에 두꺼운 남방을 입은 상태라 땀이 뻘뻘 흐른다. ‘괜찮겠지!’ 하고 주차한 것이 결국 30분의 시간 허비와 허탈한 숨을 몰아쉬는 결과를 낳았다. 시간이 늦은 것을 만회하려고 원칙을 벗어나 행동한 것이 결국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정도가 최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예정에 없던 출발, 준비 없이 서둘렀던 산행이었다. 등산 스틱도, 수건도 없이 일할 때 쓰던 모자만 걸치고 옷소매로 땀을 훔치며 올라갔다. 가파른 돌계단과 자갈길이 발목을 잡았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중간쯤 갔을 때 벌써 등산객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던 중 아내의 등산화가 입을 벌렸다. 오랫동안 신지 않고 보관해 둔 탓에 신발 밑창 앞부분이 떨어진 것이다. 신발 끈으로 밑바닥을 한번 둘러 묶었지만, 돌계단을 오를 때마다 신발이 걸려 넘어질까 조마조마했다.
뒤에 따라오던 등산객들이 지나쳐 올라간다. 큼직한 배낭을 멘 남자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오르는 모습을 보자 문득 젊은 날이 떠올랐다. 큰 배낭 위에 가득 담긴 물통을 얹고도 대청봉 등산길을 힘들지 않고 올라갔는데 지금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버겁기만 하다. 세월은 마치 가랑비처럼 스며들어 내 몸의 힘을 빼고 있었다.
내려오는 등산객들에게 정상까지는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보자 애처로운 눈길로 ”한참을 올라가야 합니다”라는 말에 사지에 힘이 쭉 빠진다. 신발이 불편한 아내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등에 진 조그만 가방에는 물 한 병과 귤 몇 개뿐이다. 오후 2시경이 되어서야 2/3 지점에 있는 헬기장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식혀주자 속이 후련해진다. 정상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더 올라가는 것은 무리였다. 시간도 체력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아쉬움을 삼키며 내려가는 돌계단에서 혹여라도 넘어질까 봐 아내와 손을 맞잡고 한발 한발 내디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땀에 젖은 손의 온기를 느끼며 걷는 것도 처음이다. 평소에는 내가 앞서고 아내는 몇 걸음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아내는 ”어린 시절 장에 갈 때 아버지가 먼저 가서 읍내 단골 어물전에서 기다리면 어머니는 한참 뒤에 도착하곤 했는데, 한 세대가 지난 우리도 그와 똑같다”라며 잔소리를 하곤 한다. 경상도 촌놈의 피가 흘러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헬기장에서 올려다본 백운봉 정상은 손에 닿을 듯했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고개만 들면 마주하는 산이라 쉽게 생각했다. 뒷산 가듯이 가볍게 여겼던 것이 문제였다. 오늘의 결과는 얕잡아보고 소홀하게 나선 것에 대한 대가가 아니겠는가. “준비하지 않는 자는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라는 ‘벤저민 프랭클린’ 말이 떠올랐다. 등산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사전 계획이 없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즉흥적으로 떠난 등산으로 인해 정상을 밟지는 못했지만, 이번 산행이 준 깨달음은 무엇보다도 값지다.
산은 도망가지 않는다. 우리를 조용히 지켜보며 다시 오라 손짓하고 있을 터였다. 이번 산행에서는 함께하는 생의 위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나란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산길에서 흘린 땀방울은 허투루 흩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봄에 다시 도전하여 정상을 밟는다면 지난날의 시행착오가 더욱 빛나지 않을까.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