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법을 잘 모른다고 기만하나
당 대표 경쟁자들 눈물겨운 충성맹세
김민석을 임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 1심 재판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이미 그를 피고인으로 하는 5개 재판 가운데 위증교사 재판,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대장동 재판이 연기된 데 이어 1일 ‘법인카드’ 재판의 족쇄도 풀렸다. 수원지법 형사 11부(재판장 송병훈)는 이날 이 대통령 등 3명의 업무상 배임 혐의 사건 4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기일을 추정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임기 중에는 재판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임기 후에는 재판할까?
더불어민주당은 법원의 잇따른 재판 연기에도 불구하고 재판 중지법은 기어이 처리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은 형사소송법 제306조(공판절차의 정지)에 제6항을 추가, 대통령 선거 후보자로 등록한 경우 개표 종료 시까지,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는 임기종료 시까지 공판이 정지된다고 규정했다. 다만 피고사건에 대하여 무죄, 면소, 형의 면제 또는 공소기각의 재판을 할 것이 명백한 때에는 재판을 계속할 수 있게 했다(중앙일보, 5월 9일 자 참고). 민주당은 이 개정안을 지난달 7일 법사위에서 단독 처리한 후 본회의 처리는 미뤄왔지만, 입법을 포기할 사람들이 아니다.
국민은 법을 잘 모른다고 기만하나
법카 재판을 연기한 재판부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의 재판도 맡고 있다.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22일로 예정돼 있다. 그날이 되면 재판장은 1일에 그랬던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이재명 피고인은 2025년 6월 대통령 선거에 당선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행정 수반임과 동시에 국가 원수로서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 피고인이 대통령으로서 헌법상 직무인 국정 운영의 계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공판기일을 추후 지정하도록 하겠다.”
이미 대선 오래전에, 무죄를 확신할 수 없는 형사 피고인이 돼 있었다. 법치주의의 상식으로는 유력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8개 사건에 12개 혐의로 5개 재판에 넘겨진 형사 피고인을 원내 제1의 거대 정당이 기어이 당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당선만 되면 초법적 존재가 된다고 믿었음이 틀림없다. 이는 민주·법치주의에 대한 우롱이고 모욕이다. 게다가 일은 자기들이 저질러 놓고 뒤처리는 법원에 떠넘겼다. 입법적 협박을 자행해가면서….
법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정치가 법치다. 헌법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는 것은 대통령이 된 사람의 일괄적 면소나 면죄 규정이 아니다.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형사적 다툼을 최소화함으로써 대통령직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하는 제도다. 일개 시민의 법의식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법률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판단은 다르다. 대통령이 되면 재임 중의 행위에 대한 소추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범법행위로 인한 재판까지도 정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면 법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은 쉽게 넘어갈 것이라고 여기는 게 분명하다. 전문성을 가지고 국민을 오도하거나 기만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법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헌법 제84조만으로는 이재명 보호에 한계가 있다고 여긴 듯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면 형사소송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사법부까지도 입법권을 통해 좌지우지하려는 해괴한 발상을 했을 리 없다. 판사들이 헌법의 이 조항을 핑계 삼아 이재명 공판의 무기한 정지를 결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대통령 재임 중 재판 중지’ 결정으로 민주당의 협박에 호응했다. 이런 법 전문가들의 법률 농락을 비전문가이거나 문외한인 국민은 멀거니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가?
당 대표 경쟁자들 눈물겨운 충성맹세
어쨌든 재임 중의 사법적 부담은 일단 면하게 됐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 오만과 교활이 이 대통령을 임기 후까지 책임져줄 것은 아니다. 퇴임 이후의 사법적 족쇄를 풀어버릴 수 있으려면 재임 중에 여러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검찰로 하여금 일괄 공소 취소를 하게 하거나, 유죄판결의 근거를 해당 법률에서 삭제해버리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 구성 요건 가운데 ‘행위’를 삭제해서 이 대통령의 면소판결을 이끌어내려고, 민주당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통과시킨 선거법 개정안이 그 예다. 지금의 국회의석 구도 하에서 민주당이 못 만들 법은 없다.
게다가 헌법재판소를 장악하면 해당 법률들의 위헌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법관 수를 30명 혹은 100명으로 늘려 그 권위를 추락시키고 대통령의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을 대폭 확대하면 개인 이재명의 전 생애적인 안전장치는 완성된다. 2028년 제23대 총선 이전에! 그게 아니라면 장기 집권 혹은 영구집권을 획책할 수도 있다. 권력의 본질은 폭력이고. 거기에 눈덩이 효과를 더해 주는 것이 관성과 오만과 망상이다.
권력이 너무 커지면 남용의 유혹은 더 부풀어 오르고 제어력은 약화한다. 당 대표 경쟁을 벌이고 있는 4선의 정청래 의원, 3선의 박찬대 의원이 입을 모아 역설하는 게 뭔가?
민주당은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여당 당무에 개입했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공격을 가했었다. 그런데 정 의원과 박 의원은 아예 이재명과 한 몸임을 역설하고 있다. 여당을 대통령에게 헌정하겠다는 것인지 뭔지…. 정 의원의 경우는 지난 2018년 10월 22일 MBN 판도라에 출연해 이재명 지사(당시 경기도 지사)를 “생각하기조차 싫다.……하나하나 입에 올려서 방어하기에 민망한 사항들이 너무 많다”고 비난하던 그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김민석을 임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 두 사람의 대통령에 대한 충성맹세는 이 대통령이 가진 당 장악력의 다른 표현이다. 그 권력을 포기하는 데는 엄청난 절제력이 필요하다. 사심을 버리지 않으면 권력의 흡인력에 맞서기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자기 보호를 위해서라도 권력을 강화하고 영구화까지 추구해야 할 처지다. ‘사법리스크’의 굴레에 법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갇힌 탓이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심각한 도덕적·법적·정치적 흠결을 드러낸 김민석 후보자를 국무총리로 임명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 굴레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서 어떤 이유를 들어 그를 자진 사퇴시키거나 지명 취소할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도 도덕성‧정의감을 주문할 수 없는 인사권자는 민심에 역행하는 인사를 할 개연성이 높다. 유사한 흠결을 가진 사람을 발탁함으로써 위안을 얻으려 할 수도 있다. 인사의 난맥상은 국정을 롤러코스터 궤도에 올려놓고 만다.
물론 윤리·도덕이 정치의 전적인 가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덕목이 개인의 영달과 국가의 발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것보다는 『군주론』(마키아벨리), 『후흑학』(이종오)의 방법론이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대안일지도 모른다. 중국 청나라 말에 태어나 중화민국 시대에 저술 활동을 했던 이종오는, 역사를 통해 영웅호걸이라고 일컬어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뻔뻔하고 음흉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뻔뻔한 것은 천하의 대본(大本: 크고 중요한 근본)이며 음흉한 것은 천하의 달도(達道: 통하는 도)이다. 지극한 후흑의 단계에 이르면 천하가 두려워하고 귀신도 무서워한다”(이종오, 『후흑학』, 신동준 편역).
“중(中)이란 천하의 대본이고 화(和)란 천하의 달도이다. 중화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자리 잡히고 만물이 생육한다.”
『중용』의 이 말에서 끌어낸 후흑학의 요체다. 그는 역사를 돌아보건대 개인과 국가발전의 비결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아니라 면후심흑(面厚心黑: 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새카맣다)이었다며 『후흑학』을 저술하고 전파했다.
그러나 윤리·도덕·정의와 같은 덕목이 추방된 정치에서는 인간도 배제되고 만다. 인간이 없는 정치는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 정치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냉철한 자기성찰과 도덕적 무장이라고 생각된다. 얼굴 두껍고 마음 검은 사람들은 민주정치의 장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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