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쟁 부문 초청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 초청된 조엘 알폰소 바르가스 감독의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다'(Mad Bills to Pay)는 뉴욕 브롱크스의 도미니카계 미국인 커뮤니티에 뿌리내린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자유로운 여름을 보내던 소년이 연인과의 뜻밖의 동거로 일상의 균열을 겪으며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성장 서사로, 감독의 개인적 배경과 지역 공동체의 삶이 생생히 투영되어 있다.
직접 살아온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시나리오가 구체화됐고, 20분짜리 단편 졸업작품이 시작해 로카르노영화제 초청 및 수상을 계기로 장편으로 확장됐다.
"이번 영화는 뉴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제가 자라온 브롱크스 지역의 현실에서 출발했습니다. 제 부모님도 10대에 부모가 되셨고, 주변에도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지역에서 자라며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구상했고, 코로나 시기에 본격적으로 아이디어를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영화를 들고 이렇게 전주국제영화제까지 오게 된 것이 제게는 무척 특별한 여정이었어요."
감독은 전주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도 예상치 못한 반응을 마주해 흥미를 느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문화적 반응에 놀라움과 즐거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전주에서의 상영과 GV는 정말 따뜻하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예상치 못한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인상 깊었는데요. 예를 들어, 마지막 장면에서 딸 이름을 지을 때 남자 주인공이 ‘삼성으로 하겠다’고 농담하는데, 그 부분에서 한국 관객들이 크게 웃으시더라고요. 저는 그게 웃긴 장면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현지적인 반응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조엘 알폰소 바르가스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과 부제(or Destiny, dile que no soy malo)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현실과 감정, 그리고 세대 간 책임의 무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제목인 'Mad Bills to Pay'은 어떤 래퍼의 노래 가사에서 따온 표현입니다. 전기세나 고지서 같은 현실적인 고난들을 ‘상처’라는 단어로 표현한 곡인데요. 그런 것들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놓인 젊은 세대들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어 부제 역시 도미니카 뮤지션 샤타스의 노래 가사에서 인용했습니다. 이 문장은 주인공이 자신의 어린 연인,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말하는 코멘터리로 작용합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날 '나쁜 아빠라고는 하지 말아줘'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이 부제를 통해 영화의 모호한 결말을 조금 더 풍부하게 감정적으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바르가스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삶을 보다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전문 배우와 비전문 배우를 함께 캐스팅하는 방식을 택했다.
"데스티니 역할의 데스티니 체코(Destiny CHECO)틱톡 영상을 통해 알게 된 친구였고, 주인공 리코를 연기한 배우 후안 콜라도(Juan COLLADO)는 공동체 연극 경험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해변이나 공원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오디션을 본 배우도 있었고, 에이전시를 통해 만난 배우도 있었죠. 그런 방식으로 4주 동안 100명 넘는 배우들을 만났습니다."
조엘 알폰소 바르가스 감독은 시나리오 작법과 연출 방식 모두에서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려 했다.
"스크립트 단계부터 전통적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간략한 아웃라인을 만들고, 장면들을 스냅샷처럼 구성했어요. 레퍼런스도 영화보다는 사진에서 많이 얻었습니다. 특히 제가 존경하는 거리 사진작가 웨인 로렌스(Wayne lawrence)와 브루스 데이비슨(Bruce davidson)의 작업이 큰 영향을 줬어요. 특히 웨인 로렌스는 브롱크스 해변 지역을 다룬 작업을 한 적이 있어 이 영화와 가장 가까운 시각적 언어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바르가스 감독은 카메라 구조 역시 형식적 장치를 최소화하고, 배우들의 즉흥성과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끌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형식적으로는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을 많이 했어요. 카메라는 고정해두고 배우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즉흥 연기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별도의 리딩 시간 없이, 배우들에게 시나리오와 상황 설명만 간단히 전하고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제 역할은 그 배우들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는 일이었죠."
작품은 주인공의 일상을 따라가며, 가족, 젠더, 빈곤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삶 속에 스며든 형태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인물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되는 일, 남성성, 책임감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특히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라난 주인공이 남성으로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사회는 어떤 남성성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직업의 불안정성, 빈곤 같은 문제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영화의 열린 결말은 관객에게도 스스로의 선택을 묻는 질문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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