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전유물? ‘머글’도 홀리는 아이돌 굿즈 [이게 굿즈라고?①]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5.08 14:12  수정 2025.05.08 14:12

아이돌 굿즈 시장 규모 약 8조원 추산

'상징성' 넘어 '실용성'까지 겸비

아이돌 굿즈는 단순한 기념품이나 팬 활동의 보조 도구를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자 팬덤 문화를 상징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2022년 기준, 약 8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시장의 크기는 아이돌 굿즈가 더 이상 소수의 팬만을 위한 상품이 아님은 보여주는 수치다.


ⓒtvN

1세대 아이돌 시대, 굿즈는 주로 앨범을 구매하면 함께 제공되는 부록 형태가 주를 이뤘다. 멤버들의 사진이 담긴 포토 카드와 브로마이드, 스티커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굿즈는 아이돌과 팬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상징적 의미가 강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굿즈를 소유함으로써 소속감을 느끼고 팬덤 활동에 대한 만족감을 얻는 식이다. 즉 실용성보다는 ‘상징성’이 우선시되는 시대였다.


이후 아이돌 산업이 성장하고, 팬덤 문화가 발전하면서 굿즈의 형태도 진화했다. 2세대, 3세대 아이돌의 등장 이후 굿즈는 단순한 ‘상징성’을 넘어 하나의 독립적인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됐다. 가장 큰 변화는 공연 문화의 활성화로 기존 ‘풍선’에서 ‘응원봉’이라는 굿즈 문화를 탄생한 사례다. 단순한 응원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던 풍선이, 그룹의 정체성을 담고 콘서트에선 하나의 연출 도구로서 활용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아이돌의 로고나 상징을 활용한 문구류, 슬로건 타월, 의류, 액세서리 등 품목이 눈에 띄게 다양화됐다. 여전히 팬덤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 등장하며 실용성이 강조되는 굿즈가 속속 출시됐다. 자신의 팬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일상에서 아이돌과의 유대감을 유지하고자 하는 팬덤의 니즈가 반영된 변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아이돌 굿즈 시장은 또 한 번의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4세대, 5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주도하는 현 굿즈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탈(脫)팬덤화’와 ‘일상성 강화’로 볼 수 있다. 타 그룹의 팬덤, 그리고 팬이 아닌 일반 대중을 일컫는 소위 ‘머글’(Muggle)들조차 매력을 느낄 만한 상품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라이즈나 뉴진스의 키링, 에스파의 CD플레이어, 태연의 향수 등 가수(그룹)의 색깔을 감각적으로 담아내면서도 디자인 자체만으로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아이템들이 대표적이다.


BTS 제이홉(왼쪽)과 에스파 굿즈 ⓒ하이브, SM

제이홉은 북미 투어를 기념해 패션 브랜드의 룩북을 보는 듯한 감각적인 아이템을 굿즈로 선보였다. 데일리 룩으로 활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서 인기다. 에스파는 ‘쇠맛’ 걸그룹이라는 별칭에 맞게 이들의 히트곡 ‘위플래시’를 연상케 하는 은색 키링 형태의 이어폰 케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머그컵, 텀블러, 휴대폰 케이스, 가방, 심지어는 주방용품까지 실용성을 겸비한 다양한 굿즈가 쏟아지고 있다.


팬덤을 상징하는 요소를 은근하게 드러내면서도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완성도가 높아, 아이돌에게 큰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액세서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아이돌 그룹 팬인 A씨(21)는 “엑스디너리히어로즈의 비공식 굿즈인 키링이 예뻐서 팬이 아님에도 구매했고, 실제 가방에 매달고 다닌다”며 “(엑스디너리히어로즈의) 팬들은 굿즈인 걸 알겠지만, 일반 친구들이라면 그저 하나의 액세서리로 느낄 만큼 활용성이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이돌 팬 B씨(24)는 “어차피 사야 했던 생활용품인데 좋아하는 가수가 담긴 물건을 살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굿즈의 기획 및 제작 방식의 고도화가 있다. 과거에는 소속사가 주도하여 일방적으로 굿즈를 생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전문 MD(Merchandiser)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디자인 전문성 또한 강화됐다. 뿐만 아니라 아이돌 산업에 몸집을 키우면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패션, 뷰티, 식음료, IT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들이 한정판 굿즈나,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케이팝(K-POP)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아이돌 굿즈는 팬덤만의 문화가 아닌, 동시대의 소비 트렌드와 디자인 감각을 반영하는 하나의 중요한 문화 현상이 됐다”면서 “팬들의 니즈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여 상품 기획 단계부터 심혈을 기울인다. 아이돌의 세계관이나 콘셉트를 세련되게 녹여내면서도 높은 품질과 디자인 완성도를 갖춘 굿즈를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분야와의 협업을 통한 굿즈의 경우 아이돌에게는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일 기회를 제공하고, 브랜드에게는 강력한 팬덤의 구매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고 화제성을 창출하는 ‘윈윈 전략’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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