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사 전체 사업 중 MD사업 수익성 가장 높아
가격 거품 논란·품질 저하 등 팬들 불만 잇따라
'굿즈 갑질'에 공정위 시정명령·과태료 부과하기도
#20대 초반의 직장인 A씨는 한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의 열성 팬을 자처하며 수많은 굿즈를 모아왔다. 그런데 소속사를 두곤 “팬을 볼모로 잡고있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굿즈는 연예인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상품 세부 페이지가 너무 부실하다. 심지어 실사가 없는 굿즈도 많다. 여기에 배송은 한 달 뒤에라도 오면 다행인 수준이고, 반품이나 환불도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일반 쇼핑몰이라면 생각도 하지 못할 횡포”라며 “더구나 요즘은 로켓배송으로 바로 다음 날 물건을 받는 세상 아닌가. 팬들은 어이없는 가격과 품질에도,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으로 굿즈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기획사들은 ‘어차피 살 거니까’라는 생각으로 단순히 수익에만 집중한 판매 방식을 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케이팝(K-POP) 아이돌 굿즈는 코어 팬덤(Core Fandom)의 강력한 구매력에 힘입어 매해 그 규모를 키우고 있다. 사실상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소비를 아끼지 않는 이들이 팬덤 산업의 몸집을 부풀리도록 돕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팬덤의 불만이 쏟아지는 등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케이팝 4대 엔터테인먼트사의 코어 팬덤 규모는 약 342만명으로 추정된다. 하이브가 160만명으로 가장 많고, SM(76만명), JYP(64만명), YG(42만명)가 그 뒤를 잇는다. 돈을 쓰는 코어 팬덤이 많을수록 엔터사 매출도 증가하는 구조다. 이를 기반으로 한 전체 팬덤 산업의 규모는 약 8조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아티스트 IP를 활용해 2차 저작물이나 응원봉 등 굿즈 등을 기획해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MD 사업은 엔터사 전체 사업 중 수익성이 가장 높은 사업부문으로도 꼽힌다. 대표적으로 하이브는 올해 1분기 MD 및 라이선싱, 콘텐츠, 팬클럽 매출 등의 간접 참여형 매출 178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매출(5006억원) 중 약 36%의 비중을 보였다. 특히 간접참여형 매출 중 가장 큰 비중을 보인 MD 및 라이선싱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607억원에서 이번 분기 약 1064억원으로 75% 증가했다. 지난 한 해 2조원을 넘는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데에도 해당 분야의 판매 호조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MD 및 라이선싱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29.1% 증가한 4200억원이었다.
때문에 기획사들은 MD 사업을 확대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하이브는 공연 기획상품 외에도 상시 MD를 확대하며 MD 매출 비중을 2024년 18.6%에서 2025년 20.3%로 확대할 계획을 밝혔고, 에스파 등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는 2022년 1200억원 수준인 2차 IP 매출을 2025년까지 3000억원까지 키울 것을 목표로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화려하게 성장하는 아이돌 굿즈 시장의 이면엔 ‘팬심’을 담보로 한 기획사의 상술 논란이 계속해서 제기된다. 팬덤의 강력한 구매력은 굿즈 시장 성장의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일부 기획사들에게는 이를 이용하여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려는 유혹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장 빈번하게 지적되는 문제가 바로 ‘가격 거품’ 논란이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굿즈를 구매하는데, 기획사들은 이러한 팬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원가나 일반적인 시장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순한 문구류나 액세서리, 기본적인 의류 등이 아티스트의 로고나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수 배 이상의 가격에 판매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앨범이나 굿즈 패키지에 포함된 포토 카드 등을 랜덤으로 제공해 불필요하게 중복 구매를 유도하는 판매 방식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격 문제와 더불어 끊임없이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품질 저하’다. 비싼 돈도 기꺼이 지불하는 팬들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품질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팬심을 이용해 높은 가격을 받으면서도 최소한의 품질조차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굿즈 시장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로막는 심각한 요인이다.
지난해에는 공정위가 하이브와 SM, YG, JYP 등 이른바 ‘4대 연예기획사’의 ‘굿즈 갑질’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태료 총 1050만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4대 기획사는 자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굿즈를 판매하면서 임의로 청약 철회 기간과 요건을 설정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전자상거래법상 소비자는 단순 변심의 경우 상품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상품에 결함이 있을 경우 3개월 이내에 청약 철회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하이브의 쇼핑몰 위버스샵을 운영하는 위버스는 “분실 혹은 반송의 경우 출고일 기준 1달이 경과하면 보상이 어렵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또 소비자가 상품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포장을 개봉한 경우에도 청약철회가 가능함에도, 하이브는 “변심 반품 시 상품 포장 개봉 상태의 경우 반품접수 불가” “상품 박스 및 포장 제거 등으로 새 상품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반품접수 불가”라고 공지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하이브 측이 낸 과태료 300만원은 굿즈 판매로 번 천문학적인 매출액의 0.000025%에 불과하다”며 “솜방망이 처분에 ‘굿즈 갑질’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팬심’을 볼모로 한 배짱 영업을 제재할 방안에 대해 국감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케이팝 엔터 관계자는 이 같은 과도한 가격 책정, 품질 저하 등의 문제를 ‘기획사의 책임감 부재’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기업의 입장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팬덤 기반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단순히 이익 극대화를 넘어선 윤리적 책임도 요구된다”며 “팬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아티스트와 함께 성장하고 케이팝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파트너다. 기획사는 팬들의 애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팬심을 단기적인 수익 창출의 도구로만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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