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시장은 양질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관람 문화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공연 중 미동조차 없이 정적인 자세로 관람하는 ‘시체 관객’ 논쟁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관람 문화가 타인에게 방해를 주지 않으려는 성숙한 태도로 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작품에 대한 몰입과 감흥의 표현을 지나치게 억제함으로써 공연 예술 본연의 가치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흥미롭게도 ‘시체 관극’이라는 국내의 자성적 비판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을 찾은 해외 아티스트 및 프로덕션 관계자들은 한국 관객들의 열정과 적극성에 대해 놀라움과 만족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형성된 일반적인 인식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7월 내한 공연을 앞둔 뮤지컬 ‘위키드’의 제작진은 한국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음악을 총괄하는 뮤지컬 슈퍼바이저 데이비드 영은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사람에게 좋은 기억이 남았다”며 “2012년 당시 마지막 공연을 잊지 못한다. 출연자 출입구에 축구 팬들 만큼 많은 관객이 모여 넘버인 ‘포 굿’을 불러줬다. 그 광경에서 느낀 열정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관객들이 그렇게 해주시길 바란다”며 웃었다.
처음 한국을 찾은 글린다 역의 몬스마와 엘파바 역의 아담스는 설렘을 드러냈다. 몬스마는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 신이 났다”고, 아담스는 “한국 관객들이 열정적이고 뮤지컬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들었다. 많은 분이 반겨주고 계신데, 이런 관심과 사랑에 좋은 공연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원스’의 코너 핸래티 협력연출 역시 “한국 관객들이 조용하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달랐다. 따뜻하게, 적극적으로 작품을 즐겨줬다”면서 “작품 속 농담이나 리듬을 통해 관객들이 웃어줄 때 호흡이 잘 살아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19년 만에 내한했던 프랑스 뮤지컬 ‘돈주앙’의 극본과 음악을 담당한 펠릭스 그레이는 “2006년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 매 회차 열광해주시는 관객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한국에 오면 절대 무대를 보지 않고 관객분들을 본다. 관객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신기하고 감격스럽다”고 회상했다.
물론, 이러한 해외 제작진의 긍정적인 평가만으로 ‘시체 관극’이라는 현상이 실체가 없거나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특정 공연이나 관객층에서는 과도한 정숙함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는 공연의 특성, 극장의 환경, 혹은 개인의 관람 성향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한 프로덕션들의 경험은 한국 뮤지컬 관람 문화가 결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글로벌 스탠다드의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나 유명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공연의 일부로서 참여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국 관객들이 다양한 공연 문화를 접하면서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점차 유연성과 개방성을 갖추어 가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 공연 관계자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접하고, 그로 인해 한국 뮤지컬 팬들이 스스로 ‘시체관극’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문화에서 비롯되는 부정적 요인들을 체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획일적인 관람 형태에서 벗어나 작품의 성격과 분위기에 맞춰 때로는 뜨겁게 환호하고, 때로는 숨죽여 몰입하는 다층적 관람 문화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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