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경매차익 활용한 보증금 회수 기대하지만…
‘부실채권 매입’ 대부업체 권리 행사시 ‘무용지물’
국토부 “채권자 입찰 막을 순 없어…LH과 대응책 지속 논의”
#서울의 한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인 A씨는 같은 빌라 세입자들과 함께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피해주택 매입 신청을 하고 경매 개시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 A씨는 해당 빌라 등기부등본을 열람하고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선순위 근저당권자인 은행이 빌라의 근저당권을 대부업체로 넘겼기 때문이다. 대부업체는 이 채권을 담보로 추가 대출까지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채권자가 여럿 이름을 올렸다. 임차인들 사이에선 경매에서 대부업체가 LH 입찰 기준선보다 높은 금액으로 방어 입찰해 LH가 입찰을 포기하게 할 거란 흉흉한 괴담까지 돈다. 경매차익이 적거나 없으면 그만큼 피해 임차인에게 돌아갈 몫도 줄어든다. 자칫 대부업체를 통해 채권자가 직접 빌라를 낙찰받을 경우, 임차인들은 꼼짝없이 쫓겨날지도 모른다. 특히 후순위인 A씨는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될까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에 따른 LH의 피해주택 매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채권이 대부업체에 넘어가게 되면 피해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별법이 연장됐음에도 피해자 구제에 빈틈이 있다는 지적이다.
2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기준 LH에 접수된 피해지원 신청 사전협의 건수는 1만1733가구에 이른다. 국토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2만9859명의 40% 수준이다.
경매차익을 통한 전세사기 피해보증금 회복률은 약 78%로 피해 임차인들의 평균 회복금액은 6500만원 정도다. 일부 피해자는 100% 보증금 전액 회수하기도 했다.
후순위 임차인의 경우, 기존 경·공매 절차로는 평균 37.9% 회수하는 데 그쳤으나 경매차익 지원이 이뤄지면서 73%까지 보증금을 돌려받는 사례도 등장했다. 피해 임차인들 사이에선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아 LH 경매차익으로 보증금 일부라도 보전 받는 방안이 한 줄기 빛인 셈이다.
하지만 A씨의 사례처럼 은행권에서 피해주택에 대한 근저당권을 대부업체 등으로 넘기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부실채권(NPL) 경매가 이뤄지는 경우다.
NPL 경매는 금융기관에서 회수하지 못한 부실채권을 매입해 경매 등 법적 절차를 통해 채권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실현하는 투자 방식이다.
한 차례 특별법 개정 전에도 피해주택에 NPL 업체들이 유입되는 데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개선된 게 없는 모습이다.
통상 대부업체는 채권 회수에 목적이 있어 경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경매에서 낙찰가가 근저당 설정액보다 낮아지면 회수할 수 있는 채권액 역시 줄어들어 최대한 높은 금액에 낙찰되도록 방어 입찰에 나설 수 있다.
채권자가 직접 낙찰 받아 소유권을 확보한 뒤 재매각 및 임대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물건의 가치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채권액 이상으로 낙찰될 가능성이 크다면 채권자들이 매입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낮은 금액에 낙찰돼 손실이 발생하게 되면 채권자들도 방어 입찰에 나서는 등 골탕을 먹인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피해 임차인 입장에선 LH 경매 차익이 커야 그만큼 보증금 회수 비중도 늘어난다. 하지만 NPL 업체의 견제로 LH가 피해물건에 대해 상한선까지 낙찰가액을 높이게 되면 지급되는 금액은 미미하거나 없을 수 있다.
특히 권리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다가구주택의 후순위 임차인이라면 실질적인 보증금 회수에 기대를 걸기 힘들다. 어렵게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아도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A씨는 “빌라 내에서 그나마 몇 명이라도 피해자 인정을 받아서 LH 경매가 이뤄지면 이제 어느 정도 일상 회복이 가능할 거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또 날벼락을 맞았다”며 “경매차익이 적어도 문제, 대부업체나 다른 채권자가 빌라를 낙찰받겠다고 입찰에 뛰어들어도 문제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은 또 피해자들이 알아서 찾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또 “특별법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보호 받기 위해서 어떻게든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려 아등바등해야 한다”며 “할 수 있는 걸 다 해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데 이렇게 유명무실한 구제책이 어디 있냐”고 꼬집었다.
업계에선 이미 금융권에서 손실을 털기 위해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대한 채권을 대부업체 등 NPL 매입업체로 넘기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경매업계 한 관계자는 “세입자 보증금도 내주지 못하는 집주인이라면 대출도 제때 갚지 못하는 등 부채를 떠안은 상황이 대부분일 거라 앞으로 대부업체로 넘어가는 집들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궁극적으로 임차인들이 원하는 건 내 돈을 돌려받는 것일텐데 대부업체가 껴서 방해해 버리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적어도 전세사기 피해자로 법이 보호하는 약자라면 보증금 한 푼 회수하지 못하고 살던 집에서 내몰리지 않도록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도 특별법 개정 당시부터 관련 리스크는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 두드러진 피해 사례가 나타나지 않은 데다 시장경제 논리에서 봤을 때 법적으로 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견해다.
국토부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대부업체에 근저당권을 매각하는 건) 통상적인 일”이라며 “NPL 업체들의 견제가 들어올 수는 있지만 이들도 입찰에 참여하면 입찰 보증금을 내고 낙찰 시 잔금을 치러야 하는 등 리스크가 적지 않아 모든 피해주택에 대해서 그렇게 권리를 행사할 정도로 유리하진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경매차익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라면 LH도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된다”며 “방어 입찰에 나서는 건 대부업체뿐만 아니라 선순위 피해자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경매 입찰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긴 곤란하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주택에 NPL 업체들이 껴서 경매 교란 요인을 발생시키는 것에 대해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LH와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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