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주말 아침, 수도권 외곽의 한 골프장. 첫 티샷을 기다리는 사람들 곁으로 살랑거리는 바람이 스친다. 깎인 잔디는 정갈하고, 멀리 펼쳐진 페어웨이는 눈부시게 푸르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여유를 찾는 이 순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지금 평화롭다고...”
하지만 잠시 눈을 감고 7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이 골프장이 놓인 자리는 어쩌면 참호였고, 누군가의 피가 스며든 야전 병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총성과 포성이 하늘을 찢던 그 시절,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가족은 갈라졌으며, 꽃같이 아름답던 청춘들은 산화해갔다. 그런 고통과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을 산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작고, 인구 밀도가 높은데다 심지어 산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골프장이 많다. 면적 대비 골프장 수는 아시아에서 손꼽히고, 이용자 수도 우리 인구의 3배인 일본보다 많다. 스포츠로서의 골프는 물론, 산업과 고용 면에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용한 여가의 풍경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묻는다.
“이 작은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는가?”
그 대답은 분명하다. 누군가 목숨 걸고 지켰기 때문이다. 한 치의 땅, 하나의 고지, 하나의 마을을 놓고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그 중 상당수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쓰러졌다. 어떤 이는 겨우 스무 살을 넘겼고, 어떤 이는 고향 한 번 다시 가보지도 못한 채 산하에 묻혔다. 그들의 희생 없이는 지금 이 잔디 위의 여유도, 깃발 위로 펄럭이는 바람도 존재할 수 없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이들을 기억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그러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점차 우리 곁을 떠나고 있고, 청년 세대에게 국방은 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평화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지켜지는 것이다.
오늘의 골프장이 내일도 계속해서 ‘평화의 공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마음으로 이 땅을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 페어웨이를 걸을 때마다 그 땅 밑에 잠든 이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보훈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우리나라는 좁다, 자원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가장 귀한 자원은 바로 ‘지켜낸 땅’이다. 작지만 빼앗기지 않은 국토, 그것이 우리에게 골프장 개발을 가능하게 했고 문화와 산업을 꽃피우게 했다. 이 땅의 가치는 면적이 아니라 지켜낸 역사로 매겨져야 한다.
티샷을 날리며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 적어도 6월만큼은 스코어보다 더 귀한 가치를 생각해보자.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가 피로 지켜낸 나라 위에 우리는 지금을 살고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걷는 이 녹색 페어웨이 역시, 바로 그들의 피 위에 피어난 자유의 길임을 잊지 말자.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지켜낸 기적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글 / 윤희종 한국골프장경영협회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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