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가보니
2006년 개관 후 2023년 기준 누적 방문객 1천만명
연면적 1만6500㎡, 9층 규모…160대 車 시대순으로
당대 자동차에 대한 불신 넘어선 벤츠 역사·기술 전시
“나는 말을 믿는다. 자동차는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찾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관람은 실물 크기 백마 아래 새겨진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1905년,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2세가 남긴 이 발언은 당시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자동차에 대한 불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바로 그 회의의 문장 아래에서 벤츠는 전시를 시작한다. 자동차를 전면 부정하던 역사적 지점에서 출발해 곧바로 기술의 진화를 펼쳐 보이는 이 구조는 단순한 연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벤츠가 그 불신을 어떻게 극복했고 나아가 지금의 자동차 문명을 이끈 주체였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설계다.
타임머신을 타고 1886년으로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은 200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개관한 이후 브랜드의 기술사와 산업 유산을 집약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단순한 자동차 전시장이 아니라 독일과 유럽의 산업문화를 대표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고 2023년 기준 누적 방문객 수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이날 박물관은 일반 관람객의 출입이 끝난 뒤, 기자단을 위한 단독 투어를 운영했다. 일부 차량은 특별히 도어를 열고 실내를 공개했으며 평소엔 볼 수 없는 차량 내부 구조까지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를 제공했다.
마르쿠스 브라이트슈베어트 메르세데스-벤츠 헤리티지 최고경영자(CEO)는 웰컴 스피치에서 “이곳은 자동차, 오토바이, 모터보트가 처음으로 발명된 장소"라며 "슈투트가르트는 개인 모빌리티의 요람이며, 메르세데스-벤츠는 그 자체와도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박물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세계 모빌리티 산업의 출발점이자 벤츠 브랜드의 기원을 상징하는 장소라고 강조했다. 박물관이 자리한 슈투트가르트의 역사성은 곧 벤츠의 헤리티지와 맞닿아 있으며 이곳에서 시작되는 전시 구성은 벤츠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시각화한 구조라는 설명이다.
박물관은 연면적 1만6500㎡, 9층 규모로 조성돼 있으며 160대 차량과 1500개 전시물이 시대순으로 배치돼 있다.
이곳의 전시 관람법은 독특하다. 1층의 타임머신 콘셉트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8층에 내리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전시물이 바로 백마다. 이후 1층까지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관람객은 마차에서 전기차까지 이어지는 기술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된다.
전시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돼 있다. ‘레전드(Legend)’ 전시실은 메르세데스-벤츠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 브랜드가 지나온 기술사와 시대적 맥락을 연대기 흐름에 따라 소개한다. 자동차의 발명부터 브랜드의 탄생, 디젤과 슈퍼차저의 시대, 전후 복구와 기술 다양화, 안전과 환경, 새로운 이동성, 레이싱 헤리티지(실버 애로우)까지 총 7개 시기로 구분된다.
반면 ‘컬렉션(Collection)’ 전시실은 차량의 쓰임새에 따라 구분된다. 택시, 버스, 구급차, 소방차 등 상업용 차량부터 특장차, VIP 의전차, 콘셉트카, 유명인 소유차량까지 주제별로 실차가 전시돼 있으며, 특정 시대가 아닌 목적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로 기록된 '메르세데스-벤츠 300 SLR 울렌하우트 쿠페(Uhlenhaut Coupé)' 중 한 대도 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955년 단 2대만 제작된 이 차량은 2022년 한 비공개 경매에서 약 1억4300만 달러(약 1950억원)에 낙찰돼 전 세계 자동차 경매가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 가운데 1대는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이 보관하고 있으며, 벤츠 헤리티지의 상징이자 자동차 역사의 정점으로 여겨진다.
“나는 말을 믿는다”는 회의는 자동차의 미래를 부정하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벤츠는 그 회의를 마력으로 돌파했고 기술로 시대를 바꿨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은 그런 변화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과거는 전시돼 있지만 멈춰 있지 않다. 기술은 지금도 진화 중이며 그 흐름이 여전히 미래를 향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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